posted by 렉스 trex 2018. 4. 29. 22:40

한동안 송강호의 포스터 속 미소는 슬픔의 양만큼 등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통상 웃는 송강호는 아버지의 표정을 표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재 시절 말을 하는 입을 닫는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아빠-효자동 이발사, 지리멸렬한 밥벌이의 조폭-우아한 인생 등등. 그렇다면 아버지 뿐만 아니라 나라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 조선의 왕이 된 사도 속 송강호는 어떤가. 그는 웃지 않으며(웃기는 한다), 이미 모든 것의 파국이 지난 후에서야 운다.

좋지 않은 부자 관계를 넘어 애초부터 연을 맺지 말았어야 할 두 단독자가 만나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 안의 비극을 형성한다. 여기서의 송강호 역시 언제나 그렇듯 훌륭하다. 분장의 미숙함을 넘어 일그러진 눈매와 쇳소리만으로도 그는 노후와 호령을 모두 소화해낸다.

여기에 호각을 보여야 할 애호박도 제몫을 아무튼 해내고 있고, 너무나도 완강한 아버지의 율법 아래서 조선의 공기에 눌린 채로 개성을 말살 당한 여성들조차도 배우들의 호연으로 살아숨쉰다. 문제는 역사가 그 모양 그 꼴이라는 점이겠죠.

그런데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에서도 그러더니 어쨌거나 에필로그 대목에서는 필요 이상의 여운과 자르지 못한 꼬리를 남기는 습성이 있는 듯하다. 굳이?


- 넷플릭스에서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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