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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고감상정리

[공동정범]

trex 2019. 2. 20. 21:27

[공동정범]의 초반에 있는 영상 중 하나는 살랑이는 바람에 아스라이 흔들리다 일어나는 수풀의 움직임이다. 이것은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에서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말하는 배우의 나래이션과 함께 나오는 그 수풀과도 닮았고, 정성일의 [백두 번째 구름]이 담은 자연의 모습과도 좀 닮아있다. 이 산란하고도 적적한 녹색 황량함의 장면은 영화 도입부 자료화면 속의 외면하기 힘든 농성 진압 장면과도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다큐가 진행되고 후반부가 돼서야 알아챈다. 그곳이 바로 2009120일 경찰의 용산 철거민의 망루 농성을 진압하고 화재 발생 후 벌어진 참극 이후의 현장, 수년간 그렇게나 세운다고 한 거대 빌딩이 들어서지 않는 녹색 황량한 용산 바로 그곳이었음을. 공동 연출을 맡은 이혁상 감독이 그토록 공을 들였다는 사운드와 함께 보정된 색감으로 이 수풀은 녹색을 띠다 황색에서 적색으로 점차 물들어가는 연출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그렇게 수년간 비극의 진상을 묻은 채 일부 주차장 용도로 쓰이다 표현 그대로 아무 용도도 아니다가최근 다시 시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수년간의 침묵 속에 피해자와 가해자, 사망자와 권력자들의 시간 역시 마치 굳은 밀랍처럼 좀체 움직이지 않고 박제화가 되었음은 사실이다.

 

 

얼어붙은 새벽의 시간대, 자욱한 최루가스, 공세 일변도의 물 뿌리기, 그리고 참극의 결과를 보여준 인화물질에 의한 화재, 그렇게 경찰 병력 1명을 포함 총 6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공동 연출을 맡은 김일란 감독의 전작 [두 개의 문] 역시 이 사건이 낳은 작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카메라와 기록의 수집과 편집, 인터뷰 등의 후속 작업인 [공동정범]은 왜 또 한 번 더 용산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실제 진상 규명의 노력을 비웃듯이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었고, 부러져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다리, 암세포가 자리 잡은 가족의 몸, 환청을 죽이기 위해 귓구멍으로 살포한 에프킬러에 병들어버린 고막 등으로 대변되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 무엇보다 복원하기 힘든 연대 후의 상흔은 근본적인 일상으로의 복원을 봉쇄한 2차 국가폭력의 양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처음 이 일에 카메라와 녹음 기능을 내민 대상은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 씨였(다고 한). 하지만 연출자들의 촉은 이 일이 단순한 상처 받은 사람들, 진상 규명에 여전히 매달릴 피해자의 풍경이 아닌 예상외의 균열이 있음을 감지한 모양이다. ‘용산 싸움이 아닌 연대 싸움이라고 이전과 이후의 일을 설명하는 타 시민단체 지역 위원의 말은 용산에서의 일이 운동권 인권 지키자 / 국가권력의 하수 나쁜 놈들!” 이렇게 말하기만 쉬운 몇몇 규정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윤리적 질문과 원천적이고 집요한 국가 폭력 이후의 정신적 징후를 다룬 복잡한 일임을 감상 동안 실감하게 한다.

 

 

참으로 본의 아니게 각자 선명한 캐릭터성을 가진 공동정범 안의 다섯 인물들은 자신들이 상대를 향해 직접적으로 입힌 상처가 아님에도 나는 그때 현장에서 가장 먼저 뛰쳐나간 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 그런데 말은 못 하지’, ‘어머니께서 내게 말은 직접 못 하셔도 아버지 홀로 현장에 남아 그렇게 된 것이... 마음에 남으실 거다.’ 등의 발화로 좀체 껴내기 힘든 진실과 진심을 병든 채 안고 있다. 극화가 아님에도 최소한의 선택과 집중, 일부의 개입으로 다큐는 마무리에 이들 관계의 국면 변화를 살며시 보여준다. 덕분에 탄핵 정국 이후 정권 교체 전 나온 100여분이 넘는 버전에 비해 작품은 희망의 일면을 조금씩 내비친다. 그것은 안도를 띄게는 하지만, 여전히 다난하고 어쩌면 결국 풀지 못할지도 모를 진실 규명의 과정,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녹이 슬어버린 사건 대목대목의 퇴색한 디테일들은 무거운 마음을 안겨준다. 마치 우리에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정도는 마음의 짐으로 최소 그램량으로 안고 가라는 주문처럼.

 

 

 

+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씨가 수초 간의 침묵 후 눈물을 보이는 장면에서 연출진은 딱 티슈 두 장을 내밀어준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드라이하게 접근하려나 하는 생각의 찰나에 결국 그 내미는 티슈가 카메라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는데, 난 딱 그 정도가 이 다큐 안에서의 개입의 두께라고 생각하고 있/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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