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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고감상정리

[마약왕]

trex 2019. 2. 25. 21:39

송강호는 부침이 없는 사람이다.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 반론의 이유가 ‘너무 자주 나와서’라는 매너리즘의 영역이라면, 당신이 오히려 송강호가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권역대 안에서만 영화를 봐온 것이 아닌가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리멸렬하다고 손을 저어도 막상 접하는 작품 속 송강호의 모습은 초 단위의 이상한 저릿함과 감명을 줄 때가 있다. 지울 수 없는 영남 방어체를 써도 대놓고 영남 방어체를 써도 그가 울어도 그가 웃어도 그가 화를 내어도 그가 말을 제대로 맺질 못하고 단어를 뚝뚝 발바닥 밑으로 흘려도 그는 같은 순간을 만들 생각이 애초에 없는 사람인양 이번에도 무적을 발휘한다.


[변호인], [밀정], 지금 잠시 말하려는 [마약왕] 모두 부족함이 하나씩 이상 있는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송강호는 물리적 또는 심적 울렁거림을 낳는 순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연출자의 부족한 잉여를 채우는 송강호는 그 두꺼워 보이는 몸으로 보는 이의 지층을 흔들며 설득력이니 감동이니 등 뭔가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그리하여 [택시운전사] 등을 보러 극장을 향했을 것이다. [마약왕]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도 캐스팅을 확정했을 때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송강호를 낚았다니! 이미 반 이상은 성공한 기분이었을 테다. 슈퍼마리오 엔딩이 보고 싶다는 미취학 아들이 있는데, 실력이 받쳐주질 못하는 똥손 아빠가 치트키를 획득했을 때 그런 마음과 비슷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마약왕]이 흥행에 참패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될 무대는 수년 뒤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낳을 그곳이며, 그곳 부산은 현대화가 진행된 이후로 수많은 밀수 범죄자들만 생산해낸 ‘못난 아비들’ 원산지로 보인다. 다 아는 이야기의 프리퀄 같은 [마약왕]은 윤종빈이 [범죄와의 전쟁] 같은 재미를 재현하지 못한다. 돈 가진 놈들의 환락 묘사에 가장 출중한 감각을 가진 것에 과신한 듯한 감독은 마치 대가를 치루 듯 흐느적대며 지루한 이야길 반복하다. 하긴 그 윤종빈도 [범죄와의 전쟁] 이후 [군도]로 그런 식으로 지루해졌다. 양측 모두 전작의 자잘한 성공을 같이 한 조연급 동료들을 다시 데리고 와서 관객들에게 기시감과 반가움을 주지만, 이들도 지루함에 동참하고야 만다.


송강호는 이번에도 열심히 한다. 이번에는 마약 중독 연기에도 도전! 산산조각 난 정신머리와 예의 그 두꺼운 육신을 휘청거리며 한국 현대사의 명멸 아래 쓰러지는 인물을 다룬다. 그냥 그런 시나리오에 희생된 것이 명백한 배두나와 그냥 딱 그 역할일 조정석에 비해 잘 챙길 수 있는 대목이 언제나 산재한 역할이기에 잘 챙겨가는 연기를 한다. 이 지루하고 기복 없는 작품 안에서 유일하게 혼자서 스펙터클한 사람은 역시나 송강호일 것이다. 조정석이 맡은 배역의 내레이션으로 작품 서두엔 ‘우리가 사랑했고 미워했던 누구’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감독 자신이 깊이 정성을 넣었을 대상에게 그렇게 사랑에 빠질 생각이 없는 나 같은 관객에겐 흡입력 없는 서두이기에 오히려 역효과였다. 인물의 기복보다 송강호 연기의 진경이 이번에 유독 더 구경거리일 뿐이다.


송강호가 맡은 이 마약왕의 절규는 실상 감독 자신이 힘을 넣었을 연출의 변과 맞닿으리라 짐작한다. 한국 현대사의 뒤틀린 흐름 안에서 기죽고 살기 싫었던 한 남성(부권)의 고함으로 대변되는 클라이맥스. 그리고 ‘잘해먹던‘ 박정희(시대)의 퇴장과 ‘또 새롭게 해먹을‘ 전두환(시대)의 개막이 보여주는 알레고리와 이 나라에서의 먹고살기에 대한 한숨 토로. 이 음울한 비전 안에서도 실은 연출이 숨기질 못한다. 무엇을. 당대의 음악들의 흥겨움에 실려오는 유혈 낭자한 폭력과 바람결에 후두두 날리는 돈다발의 힘찬 장맛비 같은 힘을, 그 마초적인 매혹을 버리지도 거기에 빡- 톤을 실어주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다. 그리고 영화는 참패했다.


+ 넷플릭스에서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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