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19. 6. 3. 12:48

[기생충]의 초반은 봉준호의 복귀작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이한 한국영화 속의 광경처럼 보인다. 관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는 와이파이 신호 잡기 장면과 비롯한 가벼운 웃음을 나오게 하는 장면들의 유머들이 그렇게 타율이 좋진 않았고, 박서준이 등장할 땐 내가 한국 영상물에서 느끼는 따분함이 극도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던 작품은 가족 하나둘이 조여정과 이선균의 집안에 슬슬 틈입하던 대목들에서 슬슬 [플란다스의 개] 당시의 리듬을 상기시켰다. 데뷔 시절부터 꾸준하게 한국 사회의 권태로움에 균열을 내며 자신만의 리듬감으로 세상없던 광경들을 만들던 그 재능의 시대 말이다. [괴물]의 뉴스 장면에 나온 감염 위험성 경고처럼 송강호 가족들은 위태롭게 계급의 주제조차 망각한 채 ‘선을 감히 넘어 들기’ 시작했고, 이는 예견된 파국을 실현하고야 만다.

이제 이어지는 문제의 ‘지하실’ 장면에서 봉준호는 야심의 연출을 보여주는데, 그가 영화 경력 내내 천착해 온 ‘어두운 터널과 지하실’([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의 악몽을 재현한다. 결코 마주치기 쉽지 않은 일그러진 얼굴과 분간가지 않는 언어가 뒤섞인 사람이 등장하고,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상승을 위해 짚고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는 서울 시민의 고민에서 [설국열차]에서 열차의 동력을 위해 희생하는 다국적 아이들까지 국제적 고민으로 확장하던 그 다운 질문이다. 빈곤과 계급의 고착화, 물신의 강대함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진행되어도 결코 이뤄낼 수 없는 해피엔딩. 최소한의 화합의 가능성까지 밀어내는 것은 반지하 거주지를 흙탕물과 오물 덩어리로 잠기게 하는 폭력적인 권능이다. 

이렇게하여 칸 현장에서 감독은 수많은 박수와 수상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다. 그런데 [옥자] 당시 ‘고기 대량 생산하면 환경 나빠지고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어요.’로 보여준 단순 명료한 현실 인식에서 [기생충]이 가난함이라는 주제를 두고 크게 발전했는지는 앞으로 고민해야 할 대목 같다. [플란다스의 개] 이후 꾸준하게 봉준호 감독의 작품 안에서 여성들의 처우는 온당하다고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망 후 옥상 위에 전시된 [마더]의 여학생, 사망으로 극에 퇴장된 후 추모만 당하는 딸들의 처지([괴물], [기생충]), 서스펜스의 위험에 투입되는 여성들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살인의 추억] 등의 경우를 보자면 당혹스럽기도 하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고작 ‘만질 수 있는 육체’ 대접밖에 할 수 없나 싶기도 하고 불편하다. 

[기생충]으로 감독은 어떤 장르의 화법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연출자임을 훌륭하게 입증했다. 여기에 한국적 현실 안에서 가장 자신있게 불편함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자 2위권을 입증하였다. 참조로 그 1위는 박찬욱의 [복수의 나의 것] 당시의 연출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작품 안에서도 물 위에 변사체 상태로 둥둥 떠있는 소녀의 모습이라는 비주얼을 포기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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