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20. 4. 26. 15:42

이제 판은 조리돌림의 시간이 [사냥의 시간]에게 주어진 모양이다. 가혹하다. 그렇게까지 못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감독의 전작 [파수꾼]의 2인조 이제훈과 박정민의 관계성을 다시 연장시키는 대목들이 있다. 죄책감과 망자의 귀환, 이로 인해 환기시키는 목소리 그리고 예정된 파국, 조성하의 캐스팅 역시 전작의 잔영을 결코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어떤 의미에선 그게 노골적이라 아직 [파수꾼]의 존재가 감독의 성취에 대한 자긍심 같아 보여 좀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문제는 어디서 발생한 걸까. 사운드와 플롯 곳곳에 넣은 긴장의 장치는 출중한데, 이야기의 중심 얼개의 난도가 높지 않았다. 누구나 실패할 것이 명백하리라 판단할 예상된 앞날. 그럼에도 그 길을 뚝심 있게 걷는 등장인물의 행보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저 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를 향해 날아가는 나방 4마리를 보는 게 편한 마음이 아니었다 비틀거나 변주하는 방법도 굳이 쓰지 않고, 예상된 행로로 인물들은 걷고 총탄에 픽픽 쓰러진다. 왜 그럴까요. 한의 배경과 동기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는 항변은 별 필요가 없는 듯하다. 그 모호함과 불친절의 길은 애초부터 택한 듯하니 말이다. 다만 딱히 매력적인 장치가 아니었을 뿐이다.

[파수꾼]에서도 훌륭했던 '마음 흔들리고, 흐릿하게 질투하는 남자 아이들'의 위태로운 상태는 여전히 감독의 강점이다. 이런 자신만의 주효한 강점과 경제 환란의 근미래를 다루는 세계를 향한 근심은 한쪽이 잘 살지 못한다. 규모 있는 장르물에도 능수능란한 지휘봉을 휘둘렀다는 상찬에 미처 닿지 못한다. 화면 곳곳을 욱신하게 때리는 사운드와 프라이머리의 팽팽한 사운드트랙, 여기에 애상을 얹는 자전거와 시대를 말하는 노동 쟁의는 연출자가 만들고 싶어 한 다양한 레이어와 속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뿐이다. 모든 것은 짐작일 뿐. 남은 것은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를 연상케 하는 장르물을 햐한 본능적인 촉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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