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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

trex 2021. 11. 4. 10:29

유괴엔 나쁜 유괴가 있고, 착한 유괴가 있어 나뉜다고 말도 없는 소리로 악행의 병분을 대사로 말하던 게 아마도 박찬욱이었던가. 이 엄연한 악행의 세계로 초대(?)하는 [소리도 없이]는 제목 그대로 소리 없는 침묵의 여백을 때론 기이한 블랙 유머와 엇나간 미술로 의도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선호하진 않아도 어쨌거나 제 역할을 잘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기에 현재의 [지옥](공개 예정)에 이르기까지 긍정할 수밖에 없는 유아인의 연기는 이번에도 수훈을 발휘한다. 벼와 밭이 같이 있는 전원의 풍경, 이걸 우리에게 낯설게 하는 영화의 역사가 있다. [살인의 추억]이 그랬고, [행복한 장의사] 등의 영화가 푸름과 농익은 논밭, 자전거 등이 있는 풍경을 곧잘 보여줬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어설프게 재장한 범죄 현장의 주검, 그리고 잔혹한 인간성을 공교롭게 대변하는 충청도 사투리가 얹어졌다. 가장 극단적인 장식은 실상 우리 삶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직장 생활으로서의 범죄 현장의 묘사다. 하청을 받고 직무를 이행하는데 당장의 곤란함과 고충이 있고, 실제 작중의 사건은 슬슬 인물들을 망치고 균열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다. 유괴된 여자아이보다 독자 아들이 더욱 소중한 아비는 돈의 지급을 미루고, 여자아이의 생환을 눈물 흘리며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그저 담임선생 하나다.

작품이 공개된 후 김혜리, 이동진 등의 유수의 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서사가 일종의 별주부전의 변주라고 거론했고,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난 토끼 탈을 보고 이것이 일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여정의 여정을 변주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괴상한 유괴 매트릭스로서의 [소리도 없이], 어쨌거나 근간에 본 한국 영화 중 유니크했고, 자신만의 화법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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