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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우] 들순이에게 남기는 짧은 감상_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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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우] 들순이에게 남기는 짧은 감상_3

trex 2022. 3. 30. 08:01

지난 2번째 편지 - [엔칸토]에 이어 한 장의 편지를 보탠다. (링크 1 / 2) [퍼스트 카우]를 이번에 볼 수 있었어. 그렇지 않아도 작품 속의 튀김 빵을 보며 난 너와 간혹 영화를 보러 갔던 노원구의 더 숲 시네마는 물론 인근의 유명 노점상 <법원앞> 꽈배기 도넛 메뉴들이 떠올랐어 ㅎㅎ 등장인물 쿠키가 팥을 더 추가했다면 그곳의 맛과 유사하지 않았으려나. 작품은 좋았어. 어쨌거나 너와도 함께였고, 이래저래 넷플릭스 등을 통해 나도 나름 대안적/정통? 서부극 서사물을 봐왔더라고. 나름 악랄하고 집요했던 타란티노의 [헤이트 풀 8], [장고 : 분노의 추적자]를 필두로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애]

여기 위에 보탤 수 있을 제인 캠피언의 [파워 오브 도그]도 어쨌거나 서부의 공간과 역사에 대한 언급이나 계보라고도 생각이 들어. 그래서 슬로우 카메라로 유명한 켈리 라이카트의 감독의 이 작품 역시 느슨하게라도 서부로 대변할 수 있는 미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입장으로 보이더라고. 작품의 서두에 등장하는 저 멀리서 잡히는 큼직한 무역선이 처음엔 물물교환의 방식으로 시작된 이 나라 사람들의 경제적 활동이 현대에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차분히 알려주는 듯하더라고. 원주민들도 포함된 이 사람들의 경제 활동이 먹는 것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구체적인 것들을 욕망하게 되었고, 훗날엔 구체적인 자본주의의 생활양식을 만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인간이란 어찌나 욕심도 믾고, 무서운 존재인지. 킹루의 말에 의하면 그를 쫓아오던 러시아 무뢰한들은 킹루의 동료를 해치고 상체부터 하체까지 살을 찢었다고 하지 =_=;; 이런 인간들의 세상이 극 중에 간간히 나오는 총기류를 들고 서부극의 시대를 개막해 골드 러시의 시대에 더욱 많은 주변의 존재를 해치고, 한정 없이 많은 것을 탐하겠지. 이런 식으로 영화들을 보며 미국의 근현대사의 맥락을 보면 재밌겠다 싶으면서도 슬프겠지..,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도 떠오를 거 같고, 나의 경우엔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아버지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결되었어.

아무튼 이렇게 서로 싸우고 그저 죽이기 바쁜 남자들의 주도적인 이야기에 반해 킹루와 쿠키가 택한 삶의 방식은 소박하고 인상적이었어. 작은 집과 소박한 먹거리,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그나마 큰 중범죄가 타인의 소에서 우유를 짜는 도둑질 정도라니... 심지어 이 사람들 사이의 에로틱한 순간마저도 그저 수풀 사이에 누추한 나신으로 숨어 있기나 문틈으로 간혹 비치는 놈 정도라는 점까지. 둘이 훗날 세상에 나올 [브로크백 마운틴]의 선배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싱겁게 웃겼어.

왜 작품의 제목이 퍼스트 카우이고, 서두의 나란히 발견된 두 사람의 유골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감독은 2시간여의 러닝 타임을 통해 차분히 알려주더라. 명확히 그 유골을 두 남자의 것이 맞아-라고 콕콕 찍어주진 않아도, 역사의 흐름이나 맥락으로 그리하여 그렇게 되었더라 끄덕이게 하더라. 소리 없는 사람들이 누워 자리한 영토 위에 수많은 정복과 힘 있는 자들의 역사가 짓밟으며 지나갈 것이고 - 극 중에 나왔던 원주민 소녀와 노인, 청년들은 영토 바깥으로 쫓겨날 것이고, 태초에 그럴싸한 베이커리 빵맛을 만든 소들은 웅장한 농장에서 도륙당한 후 [헤이트 풀 8]의 놈팽이들이 먹을 스튜 요리의 재료가 되겠지. 으... 징그러운 역사의 장이여.

이렇게 난 예상은 모했지만 [퍼스트 카우]는 내 생각보단 제법 슬픈 작품이었어. 홍보를 위해 나왔던 우정의 키워드도 이해가 될만하고 애초부터 도입부에 나왔던 윌리엄 블레이크 영시의 인용구 - 새에겐 둥지, 거미에겐 거미집, 인간에겐 우정 - 의 맥락에도 일단은 이해는 되었으나, 내겐 진하게 우려낸 홍차의 색상처럼 정서상 슬픈 여운이 있던 작품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