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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trex 2022. 8. 15. 12:13

풀리지 않는 범죄, 그 사건의 내막을 숨기고 풀지 않는 매혹적인 일종의 팜므파탈의 존재까지 생각하면 영락없이 영화계 선배들의 유산 중 하나인 필름 누아르를 계승한 박찬욱의 신작으로 읽힌다. 그게 박찬욱이라서 낙지와 문어에 이어 손가락을 물고 놓지 않는 자라의 존재, 상대적으로 덜 잔혹하지만 여전히 사람에게 생채기를 낼 수 없는 공작용 가위 등의 오브제들이 있어 그의 자꾸만 되짚고 싶은 공통 화소에 대한 관찰을 준다. 그의 신작엔 [친절한 금자씨] 속 백선생의 급하게 용무를 치르는 듯한 후배위 대신에 해준과 정안의 의무적인 섹스가 있고, 각자의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로서의 상대가 한층 더 가혹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내게 [헤어질 결심]은 여러 면에서 흡혈귀 태주와의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점멸하는 파국을 자처하는 신부의 운명을 보여준 [박쥐]와 좀 닮아 보였다.

[헤어질 결심]을 가지고 감독 본인이나 주변에서 천만명 관객에 당도 못한, 미흡한 성취를 아쉬워하는 입장을 보았다. 관객의 입장에선 미안하지만 얼토당토 않은 기대로 보였다. 창작자 본인이 보여주는 뒤틀린 감각의 설정이나 - 그는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관객들이 볼 수 있는 편안하고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안배했다고 생각했으나, 그 작품에서조차 낯섦 자체로 승부수를 건 듯했다는 점을 기억한다 - 각본을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들이 정성스럽게 배치한 복선과 여러 치밀함 속엔 쉽사리 접근이 힘든 어떤 밀도가 있다. 자신과 너무 잘 맞는 기가 막힌 상대와의 만남, 그로 인해 파생되는 그 흔한 연애감정 그리고 연인이라면 흔히들 자연스레 경험하는 그런 감정선의 훼손까지 작품 자체가 헤어질 마음속 결심의 경로를 세세하게 짚는다. 

IOS 기기 여러 개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박찬욱의 애플 프로젝트 [일장춘몽]을 통한 인연이 매개가 된게 아닌가 하는 짐작을 했는데, SIRI의 음성 비서 서비스나 보이스 번역 서비스 등은 현시대에서 영화를 만드는 개인으로서의 시스템에 대한 완숙도를 반영하는 것은 물론 동북아시아 구성원으로서의 나름의 코멘트 같다는 생각도 했다. 특히나 박해일 배우의 전작 중 하나가 장률 감독의 [경주] 속 북한 정치학 교수라는 설정이 본작에서의 캐릭터 관계에서 간접적인 연상을 줬었다. [경주]에서도 상대방 여성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의 소유자였던 그의 캐릭터에선 다만 한 가지 심상치 않은 '죽음'의 기운이 드리우고 있었다.(덕분에 영상자료원 상영을 통해 정성일 평론가의 GV이 수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라는 게 이토록 마라톤에 버금가는 체력이 필요한 일임을 덕분에 알게 되었다.)

[경주]와 관련은 없으나 [헤어질 결심]에도 아무튼 죽음의 문제가 적잖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 종결은 슬프게도 그런 방향으로 이어진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하얀 아이스크림, 칼로 능숙하게 베는 고등어의 몸통, 어설프게 흉내내어 요리한 중화식 볶음밥, 기도수의 사체를 조금씩 뜯어먹는 개미 등 먹고 사 먹는 생의 감각과 죽은 유기물의 부질없음들에 대해 지금도 감상을 적으며 되뇐다. 이 모든 것이 총화 되는 후반부의 바다와 로케에 이르면 작은 탄식과 슬픔을 한데 느낀다. 그 바다 속 여인은 아무튼 그렇게 생애 내내 온당하게 대접받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고... 딱 한 명의 상대를 만나 짧은 구원을 느꼈구나 싶다. 아이고 사랑, 안개처럼 앞길 보이지도 않고 명료하지도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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