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본문
올해 본 작품 중 드뷔시의 <달빛>이 나오던 경우가 2번째였다. [비상선언]에 이어 이번 [에브리씽-]이 그랬는데, 미안하게도 전자에 흐르던 <달빛>은 가히 시몬스 침대 TVCF 속 음악에 가깝게 들렸다. 감독이 자신이 한국의 축소판 속에 여러 구성원들의 충돌과 모순을 한데 수렴해 넣었다는 어떤 오만한 자신감이 느껴졌고, 그만큼 음악의 여운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A24의 로고가 익숙하게 박힌 초반과 쿠왕- 박히는 사운드의 임팩트와 더불어 [에브리씽-]의 인상은 강하다. [문라이트], [그린 나이트], [애프터 양]과 함께 아트무비 한길의 A24 품질은 당연히 기대만큼이고, 무엇보다 요즘의 동향인 멀티버스 세계관 빌딩에 따른 '한정된 자원과 제한된 표현' 안에서도 가급적 수북한 이야길 담으려는 노력은 표가 난다. 과잉으로 인한 패착을 겁내지 않는 신나는 작품. 아무튼 나는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 [로키]로 인해 일부분 이해를 포기하고 나가떨어졌던 멀티버스 서사의 맥락을 이번 기회 덕에 조금 정리할 수 있었다.
옛날 옛적 선택지 고르기 서사의 학습 만화책과 유사한 멀티버스의 화법을 여러 다양한 인생의 가능성을 품었음에도 현실의 이유로 접었던, 중년 여성의 후련한 어드벤처로 풀었다는 점이 굉장히 유효하게 설득력 있는 전개로 보였다. 그걸 풀어내면서 배우 양자경의 필모는 물론 재키 찬 무비의 요소를 빌려 왔다는 것도, 왕가위 무비의 작법을 인용했다는 점도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요소였다. 헐리우드 속 성공한 아시아 여배우의 이미지, 그를 중심으로 한 주변 장르의 클리셰가 춤, [라따뚜이] 언급 등을 통해 싱겁게, 그러나 오밀조밀하게 박혔다. 큼직한 핫도그 소시지 손가락 같은 부분은 본작에 그새 물들어 혼절한 정신 상태론 아마도 쉽게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서사 전체의 거대한 암흑을 형성하는, 총제적인 빌런의 실체에 관련해 이 작품이 들려주는 주된 이야기의 결론은 바로 개인 인생의 대한 드라마틱한 긍정과 가족의 문제라는 점이다. 가족의 독립과 그가 열어갈 삶의 행보를 긍정하는 과정에서의 '인정'과 '응원'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교훈. 물론 이런 전제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봐온 (디즈니산?) 휴먼 드라마에서 익숙했던 것이다.(여기서 흐르는 드뷔시의 <달빛>의 청명한 연주...)
여느 작품이 그렇듯 배우들의 수훈이 중요한 작품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 [샹치] MCU 목록에서 배우의 역량 이하의 비중만 할당받았던 양자경, 할리우드 언저리를 벗어나 무술 감독의 자리 이상의 매력을 발산할 기회를 얻은 키 호이 콴, 유효한 배역을 획득한 스테파니 수까지 그들 개개인의 피력이자 반란극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