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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고감상정리

[헌트]

trex 2022. 12. 18. 14:00

이랜드 계열의 캐주얼 패션 브랜드들이 이랜드-브렌따노-언더우드-헌트의 순서로 줄을 서있던 시절이 지나고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이 존재했고, 이정재-정우성이라는 상징적인 듀오가 탄생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형성하는 비주얼로 인해  팬픽은 자연스러운 붐을 소비했고, 당사자 모두 이 사실을 아는 것으로 보였다. [헌트]는 이런 현실의 연장선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감독으로 입봉한 이정재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표현 그대로 계단을 데굴데굴 구르는 몸싸움 배틀이 벌어지고, [쉬리]의 탄생 이후 한층 발전한 총기류 액션이 극 전반을 수놓는다. 일본과 방콩 등지에 안기부 국내파/해외파의 대립은 물론 남/북 간의 총격은 실상 이제 한국영화가 국제적 민폐도 가차없이 묘사하는구나라는 싱거운 실감을 안겨준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여전히 [히트(heat)]에 대한 콤플렉스를 토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지만... 어쨌거나 양복 부대의 출현에 있어서 자국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는 '싸나이 픽처스' 제작의 노선은 여전하거니와 의외로 이 한길도 나름 소득을 보여주는구나라는 탄식을 남긴다.

이정재와 정우성 양편의 필모그래피 목록의 출연진들이 즐비한 카메오를 보면 다소 어이가 없을 정도. 주지훈과 김남길이 대사 하나 배정 없이 휙휙 장했다가 이내 퇴장하기 바쁘고, 박성웅과 황정민, 조우진 정도는 대사나마 한두마디 주어져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 하나 간격 두고 경력 내내 대립각/우정의 구도를 형성하는 두 남자의 드라마틱한 풍경이다. 덕분에 팬들의 입장에선 어떤 대사가 나오든 피식피식 미소를 숨기기 힘들 듯하다. 둘의 선명한 대립을 빌어 데리고 온 주된 구조는 바로 남북의 분단과 독재로 얼룩진 우리네 현대사의 순간이다. 

이게 영미권의 스파이 장르를 빌려와 소위 한남 조폭물, 우정의 톤을 믹스한 듯한 분위기이다. 우군과 적의 규정을 판단하기 어려운 서스펜스의 재미, 한국 현대사 배경의 유사 장르물의 목록을 소환시킨다. 물론 여기에 전두환 시절을 소환한 [서울대작전]의 예시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겠다.(못 만들었으니까...) '동림'이라는 이름으로 내부부터 균열과 위기를 조장하는 공동의 적은 정체의 표면을 차차 드러내 파국을 야기하는데, 이 존재는 등장인물로 하여금 북이나 남이나 독재와 학살의 역사로 공동체의 공멸을 야기하지 않냐는 자문을 유도한다. 

결국 감독 이정재는 생각보다 직접적인 톤으로 역사의 문제와 우리 공동체의 과제를 언급한다. 이게 나름 이 작품이 안겨준 의외의 성취였다. 나름 청춘 영화의 아이콘이 현재의 시점에선 이런 연출자가 되었구나라는 뜻밖의 발견. 이전부터 정우성도 연출을 희망했고 자신의 작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 역시 어떤 작품으로 등장할지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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