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본문
매해 성탄 시즌이 오면 넷플릭스에서 뭐라도 한편 챙겨볼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올해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덕에 나름의 목적을 충족시켰는데, 기대만큼 좋은 작품이었다. 개봉 당시 관람하다 기겁했던 - 나 본인보다 앞 좌석의 모녀가 경악했었다 - [판의 미로]와 공교롭게 가장 닮은 작품이기도 했다. 전체주의의 압제 아래서 억압당하던 [판의 미로] 속 등장인물들은 여기에선 무솔리니의 통치를 통해 무의미한 전쟁의 포화에 내던져진 소년들로 대치되는데, 전자엔 소녀의 죽음이 있었다면 후자엔 소년의 죽음으로 이야길 연다.
이탈리아의 덩화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작품을 원안으로 최근의 디즈니 플러스 실사에 이르기까지 목공 제페토와 목각 인형 피노키오의 이야긴 이 나라에도 친숙한데, 내겐 요즘 들어 [애프터 양]과 함께 포스트 휴먼 서사로 인식이 되더라. 실상 영락없는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변주로 보일 지경. 곱씹을수록 기괴하고도 다채로운 이야기의 질감은 기예르모 델토로의 이름에도 걸맞는다고 느낀다. 어떻게 손을 대어도 결코 예쁘고 매끄러운 느낌과는 거리가 있는 외형은 그의 전작들([크로노스], [헬보이], [셰이프 오브 워터] 등)을 충실히 잇는 계보를 보여주고, 이번에 공을 들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의 완성을 보여준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성취도는 나무랄 수 없는 수준인데, 근 몇년 안에 나왔던 웨스 앤더슨의 [개들의 섬] 같은 전례는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해당 작품이 보여준 일본 문화권에 대한 매혹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피노키오]가 들려주는 이야긴 "거짓말하면 안 돼요-."라는 교훈을 넘는 밀도가 있는데, 그건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보여준 영속과 영원 회귀의 아득한 기운이 예외 없이 서려 있다. 극 중 제페토 아저씨가 교회를 위해 다듬는 예수 상의 비유에서 보여주듯 이건 일종의 죽음과 부활의 순환을 담은 엄숙한 이야기가 전달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헛되게 전장에서 숨을 거둔 현대사 속 생명들을 달래는 것은 물론, 가족이라는 현대 사회 최소 단위 공동체의 윤리까지 보듬는 좋은 이야기였다. 그걸 당시 읽은 동화책 시절엔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알게 되서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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