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굴림체 기억들] 2008년 한국대중음악계의 다섯가지 풍경. 본문

음악듣고문장나옴

[굴림체 기억들] 2008년 한국대중음악계의 다섯가지 풍경.

trex 2008. 12. 30. 00:26
+ 음악취향Y 업데이트 : http://cafe.naver.com/musicy/7061

12월초의 개인 결산과 12월 중반의 음악취향Y 결산에 동참한 후 남은 연말, 이제 할 일은 이거 하나 남았습니다. DSLR이 아닌 똑딱이 렌즈를 지닌 저의 시선으로 탐색하는 2008년의 대중음악계. 그 풍경을 다시금 되새기고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5개의 항목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공감과 비공감이 가로지르는 글입니다. 당신의 2008년과 나의 2008년이 얼마나 닮아 있겠습니까. 우리 사이다 한잔 하며 추스리고 이야길 나눠 보자구요. 그리고 다시 각자의 09년을 맞이합시다.



1. 아이돌 24시 : 당신의 아이돌은 안녕하십니까?


사실 그 전조는 작년부터 있었죠. 동방신기 VS SS501이라는 대결 구도가 소싯적 모 대결 구도를 연상하는 듯 해서 심드렁하게 육포를 씹으며 관전할 때 즈음, 소녀들의 발차기와 디스코 리듬이 우리를 제각각 휘감았고 대한민국 아이돌 밴드史에 등재될 궁극의 트랙 '거짓말'이 전국을 넉다운 시켰습니다. 이후 1년 뒤 08년은 아이돌 포화 상태의 대한민국입니다.


한번 검색의 힘을 발휘해 볼까요. 동방신기는 즐비한 일본발 싱글을 제외하고서라도 정규작 [미러틱]이 A/B/C버전과 C버전의 클린 버전까지 장대하게 출시되었습니다. SS501은 싱글 [Deja Vu]을 필두로 2개의 디지털 싱글, 스페셜 미니 앨범 [Find], [U r Man]까지... 빅뱅은 정규 2집이 나오기까지 일본발 앨범과 3번째 미니 앨범 등등, 원더걸스는 3번째, 4번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So Hot], [The Wonder Years - Trilogy]... 비단 이건 주요 인기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의 관심망에 있었을지도 모를 브라운 아이드 걸스, FT 아일랜드, 카라 등이 보여준 이 땀방울 나오는 디스코그래피(리패키지까지 합치면 부지기수!)는 심지어 건즈 앤 로지스의 [Use Your Illusion 1 & 2] 당시의 풍성함을 연상케 합니다.


비단 이건 디스코그래피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열성적인 디스코그래피의 누적은 '나오면 사준다!'라는 팬덤 문화 특유의 프로세스 덕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아이돌의 24시는 앨범 홍보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아 물론 이건 홍보의 연장선일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근심의 이유는 왕성한 포화 상태의 스케쥴 때문입니다. [패밀리의 떳다]의 빅뱅/대성(뮤지컬까지 소화해야 하는!), [소년소녀가요백서], [가족이 필요해]의 카라/한승연, [원더 베이커리]의 원더걸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우리 결혼할까요]의 슈퍼주니어/강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 [좋아서]의 슈퍼주니어/김희철, [좋아서]의 FT 아일랜드/이홍기 등등 아이돌은 예능 안에서도 그들의 재능을 입증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09년까지도 이어질 조짐입니다. 무비컬 [과속스캔들]에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진 (다른 의미로서의 아이돌이지만) 윤하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건 작금의 아이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1세대' 아이돌 신화 소속의 전진이 [무한도전], [야심만만2 : 예능선수촌]에서 앨범을 벗어난 활동으로 대중에게 새롭게 각인되는 과정을 보자면 묘한 쌉쌀함도 드는게 사실입니다. 이런 각박한 스케쥴 속에서 당신의 아이돌은 안녕하신지요?



2. 장기하와 '홍대의' 얼굴들


'말달리자'과 '부비부비'로 각인되었던 홍대를 대중들이 새롭게 인식하게된 계기는 장기하로 인해 가능하였습니다. 장기하의 구구절절한 가사와 미미 시스터즈의 몸짓은 청춘의 화려함보다 누추함과 얄궂음을 도드라 보이게 하며 실업시대의 젊음들을 설득시켰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의도적인 면이라기 보다는 시대와 맞아 들어가는 면 - 이 또한 얄궂음이라 하겠는데 - 덕일텐데 장기하(또는 밴드)로서는 이제 숨고르기를 하며 앞으로 입증해야 할 일들의 무거움이 실감할 타이밍이 아닌가 합니다.


과연 장기하와 '잠시 다시' 홍대를 목도하는 시선들을 질기게 설득할 정규작이 나올 것인가. 정규작이 나올 시점에 장기하를 말할 때 거론되는 산울림과 배철수의 계보는 오롯하게 도드라질 것인가. 그런데 가장 얄궂은 것은 장기하의 캐릭터와 음악은 이런 책임감과 무거움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책임감을 대중에게 돌리는게 나을려나요. 장기하의 노래로 08년을 기억하는 당신들은 그 지지를 꽉 쥐고 계실텐가요. 이 또한 합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중의 변덕과 씬의 가변성을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다만 그저 출렁이는 물살의 가변성에 맡기기엔 이 모처럼의 반가운 즐거움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작년부터 있었던 '홍대 미녀 묶기'의 마케팅적 장치도 다소 다른 문제지만, 비슷한 고민을 안겨 줍니다. 이들을 듣는 청자들은 뎁이 스튜디오에서 분투한 흔적을, 오지은의 가내수공업이라고 '잘못 알려진' 음악들의 공정 과정, 한희정의 '푸른 새벽' 시대를 읽을 수 있을까요. 얄팍한 호기심 이상의 예의, 이들의 목소리를 장기적으로 들을 수 있는 안정적인 장치 등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이래서 결국 문제는 '음악' 자체로 돌아옵니다.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음악은 어떤 모습일려나요.



3. 디지털 싱글, 미니 앨범 전성(?) 시대


싱글반 제도는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안정된 음반시장 구조를 위해 가수 당사자와 소비자들에 의해 필요성이 부각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소매상들의 싱글 앨범 가격 책정의 '양보 없음' 덕에 가수 당사자만 소비자에게 빈축을 사는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 숱한 디지털 싱글들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음반시장 구조가 싱글-정규반 양립 구조의 안정적인 형태로 완성되어서가 아닙니다. 단타형 싱글이 이통사와 기획사를 쉽게 살찌울수 있는 모바일 음원(배경음악/컬러링/벨소리)으로 부가효과를 낼 수 있는 시장구조로 바뀌게 된 덕분이죠. 이 과정에서 MC몽 같은 일부 싱어들이 음반 판매 활황 시대의 스타들과 다른 의미의 스타로 자리잡게 됩니다.


모바일 음원 시장은 그 크기만큼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으로 현재 이 나라 음반시장의 모양새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건 선이니 악이니 하는 차원을 넘어선 사실입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이것을 애써 부정한다고 음반시장의 틀이 과거처럼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 디지털 싱글들은 공백기 가수들의 생존 신고를 위한 기능을 하거나(예 : 타이푼 출신의 솔비, 샤크라 출신의 황보 등) 쉴 틈 없는 아이돌 계열의 젊은 가수(예 : 이현지 등)들이 한 줄기 물총처럼 쏴대는 존재 각인용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장기적 안목보다는 단타성이 짙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칭하는 '국민형' 디지털 싱글의 도래는 내년엔 가능할런지요.


이에 반해 미니 앨범(실은 EP라고 부르는게 합당할) 물건들은 역시나 아이돌 계열들이 흔히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관록의 뮤지션들이 요즘 뜻하지 않게 선호하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여젼히 믿고 싶지 않은)정규작 발매 철회를 말한 이승환의 경우도 그렇지만, 3부작이라는 구상으로 첫 미니 앨범을 발매한 신승훈, 산울림이라는 이름 대신 그래도 음악이라는 자전거(또는 오토바이?)를 택한 김창완 등 위축한 음반 시장 안에서 나름 앞날을 도모해보며 호흡을 가르는 뮤지션들이 많습니다.  셀죽하게 나온 입으로 그래도 정규작으로 답해주세요라고 말하기엔 지반이 흔들린 음반 시장의 위기 속에선 투정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EP들은 인디와 주류를 가리지 않고 더욱 자주 나올 듯 합니다. 인디 시장의 생래상 EP가 좋은 소통로인 것은 명확하지만, 주류 시장의 EP 활성은 허약해진 오프라인 기반 시장구조의 사정을 노출하는 작은 비명 같기도 합니다.



4. 빠삐놈과 저작권법


올 한해 블로그계는 흉흉 했습니다. 법무사무소들의 저작권법 적용에 따른 단속과 블로거들의 잦은 출두들이 그랬죠. 07년 저작권법을 쥔 단체들은 P2P 서비스 단속에 이어 08년 개인 공간 단속에 주력했습니다. 내년엔 개인간 전송 단속에 주력할 듯한 이 움직임은 완화는커녕 더욱 드세질 것입니다. 창작자 자신보다 통신사에게 상당간의 이익이 주어지는 음원 판매 수익 구조는 현재 음반 시장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모든 철퇴는 '불법 다운로더'라는 이름 아래 한묶음으로 매도된 개인들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 옳은 일인지 정당한지는 지금도 갸우뚱입니다.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유포와 곡의 파급력에 대한 홍보라는 선의는 사실 구분하기 힘듭니다. 그것을 가를만한 잣대는 사실 마련되어 있지 않죠. 말들은 한결 같습니다. '아무튼' '일체' 올리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를 여전히 개인들을 뚫고, 미끄러지며 심지어 즐기고 있습니다. '빠삐놈'의 리믹스 트랙들에 제공된 원전 트랙들은 아무리봐도 '오픈 소스'가 아닙니다. 엄정화와 탑군의 래핑과 이효리, 전진 등의 넘버들이 한데 뒤엉키는 이 진풍경은 제도 따위 아랑곳 않는 네티즌들의 유희가 프로와 아마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재의 풍토를 반영합니다. 물론 궁극의 리믹스 트랙을 만든 이는 준프로, 아니 이미 프로라고 해도 무관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트랙들이 전파되고 유사 리믹스 트랙들이 생산되는 과정을 보면 생산자-소비자 / 프로 - 아마 / 라이센스 - 오픈 소스의 경계는 가벼이 누르는 유희 정신이 넷의 세상에 이미 만연했음을 보여줍니다.


단속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입니다. 아니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재능있는 개인들은 제도를 비웃으며(정치적으로 의식한 의도보다는 근본적인 유희 정신이라고 봅니다) 이 아슬아슬한 놀이를 즐길 것입니다. 가수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창작곡과 댄스 기믹을 패러디한 UCC 영상을 검색하는 작금에 이런 일들은 흥미로운 논쟁거리인 듯 합니다.



5. 자 마지막입니다.


이 란은 여러분들을 비워 두겠습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놓친게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본 올해 대중음악계의 풍경 중 말하고 싶은 대목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당신의 이야길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