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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검고 물컹이는 강물.

trex 2010. 5. 15. 12:41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검고 물컹이는 강물이 나즈막히 흐른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걸 어디서 본 듯 하다. 스필버그는 [우주전쟁]에서 그 위에 수많은 주검을 싣은 채 무심히 흐르게 하였고, 봉준호는 [괴물]에서 괴물의 성장기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이창동 역시 그 흐르는 강물 위에 처연하게 무언가를 싣어 나른다. 그리고 묻는다.


이제 다 된거냐고. 이렇게 다 해결이 된거냐고.


부동산 남자는 잇속이 서린 밝은 표정으로 잘 해결이 될거라고 말한다. 이창동이 그려내는 세상은 점점 무서워져 간다. [오아시스]엔 코끼리와 인도 무희가 난데없이 거실에 들어서는 환타지라도 있었고, [밀양]엔 누추하게 흐르는 가늘디 가는 물과 바닥에 착 달라붙은 햇볕이라도 있었다. 낮은 세상의 사람들과 막막함, 그리고 이어지는 불투명한 삶이 있었다.


[시]에선 상당수의 사람들이 시를 쓰기 위한 감수성을 말하고, 뱉어내기 위해 추억을 실토하고 희망을 말하고 불륜을 고백하고 음담으로 소일한다.(그리고 결국 그중 아무도 제대로 시 한편 내보이지 못한다.) 예술이 삶에 부착되지 못하고, 도덕의 뿌리가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의 방관으로 파헤쳐진 세상. 검고 물컹이는 강물 위에 미자의 하얀 모자가 시야 밖으로 사라지려 한다. 미자의 말에 의하면 하얀 색은 '순결'이라고 한다.


여전히 똑같은 교복을 입히고 똑같은 영어 단어를 발음하게 하는 훈육은 이어지고, 세상 모르는 아이들은 훌라후프를 돌리며 꺄르륵 웃고, 버스를 따라 잡지도 못할 벅찬 달음박질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함박 웃는다.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수많은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넌지시 바라보는 노인들과 순환할 준비를 하며, 때론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흘러간다. 그 순간 뒤를 돌아보는, 시를 낭독한 여자(들)이 묻는다. 당신과 나의 세상이 이렇게 되어도 맞는 것이냐고. 말없이. 말없이 시로.


[마더]에서 윤리를 초월한 극단의 길을 택한 엄마와 달리 [시]의 미자는 도덕과 망각한 언어, 곡절깊은 시어를 택한다. 그녀가 바라본 물컹이는 강물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강물 안엔 괴물이 자라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괴물을 당도한 후의 숱한 죽음만이 흐르고 있는걸까.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 그 물길을 파헤치는 손길은 내부에 이미 성장하고 있었던 괴물일까. 바깥에서 괴물을 키워온 것일까. 누가 진짜 괴물일까.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정말 이래도 되는걸까.

감독 이창동 (2010 / 한국)
출연 윤정희, 이다윗, 김희라, 안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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