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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별로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없었던 [영화는 영화다]에 이어, 분단이라는 현실을 유사 의형제물-BL로 풀었던 [의형제], 분단이라는 역사를 마치 할리우드 작가주의풍으로 풀었던 [고지전] 등 색채 있고 굵은 작품을 만들었던 장훈 감독. 그런데 입을 떼는 순간부터 무게감에 질식할 수밖에 없는 5.18의 기억을 실화 소재로 빚어낸 [택시운전사]는 배우들의 호연과 현실적인 무게를 지닌 디테일로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설명하기 쉬운 설정의 우려되던 부분을 실현하는 듯하며 다소 하락하였다. 캐릭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울컥함이라는 요소를 연기하는 가장 최상의 이 시대의 비스트로 자리매김한 송상호는 이번에도 여전하지만, 정말 객석과 시청자를 눈물짓게 만들지만, 그렇지만... [택시운전사]가 지금 시대의 사람에게 남..
한재림은 [우아한 세계] 이후 눈물을 짓는 부성의 대표 상징으로 송강호 이외의 대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관상]을 포함, [효자동 이발사] 등에서 울먹이고 시대의 뒤안길에서 울컥하는 부성을 상징하기엔 송강호만한 적자가 없는 모양이다. 그게 어디 한재림 감독만의 공감대는 아닌 모양. 이준익 역시 영남권 어투를 쓰는 기이한 이 씨 조선 영조 역에 송강호를 쓴 것을 보면 송강호 자체가 믿음직한 치트키인 것은 분명하다. 근 몇 년간 [관상]과 유사한 역사와 개인의 딜레마를 표현해 온 송강호에겐 어쩌면 [사도], [택시운전사], [밀정] 등은 - 여기에 심지어 [기생충]까지? - 유사한 맥락의 연속이었을지도? 그래도 모든 작품에서 비슷한 송강호를 반복하는 매너리즘이 분명 존재함에도 한편으로는 그런 매너리..
지금 시점에서 넷플릭스로 우아한 세계를 보는 것은 빛바랜 감이 있다. 오달수의 연기를 봐야하는 일부의 당혹감이 있고, 여성주의 담론이 흘러간 21세기의 풍경 속에서 가부장의 비명을 보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말미의 "씨발 내가 뭐 그렇게 잘못했는데..." 눈물을 참지 못하고 뱉고 삼키는 송강호의 모습은 참 보기에도 면목이 없지만, 차라리 솔직한 편이 나은 것 같다는 착각도 잠시 준다. 물론 이 가부장의 헌신은 단순히 아빠 노릇에 대한 응원이나 조폭 및 바닥인생에 대한 얕은 천 드리운 정당화보다는 한국사회란 피곤한 영토 안에서의 보편적 삶에 대한 토로와 은유/직유에 가까운 것이다. 인생의 그 어떤 대목을 택하든 베스트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적 삶에서의 피로는 누적되고, 때론 원하지 않는 파..
송강호는 부침이 없는 사람이다.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 반론의 이유가 ‘너무 자주 나와서’라는 매너리즘의 영역이라면, 당신이 오히려 송강호가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권역대 안에서만 영화를 봐온 것이 아닌가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리멸렬하다고 손을 저어도 막상 접하는 작품 속 송강호의 모습은 초 단위의 이상한 저릿함과 감명을 줄 때가 있다. 지울 수 없는 영남 방어체를 써도 대놓고 영남 방어체를 써도 그가 울어도 그가 웃어도 그가 화를 내어도 그가 말을 제대로 맺질 못하고 단어를 뚝뚝 발바닥 밑으로 흘려도 그는 같은 순간을 만들 생각이 애초에 없는 사람인양 이번에도 무적을 발휘한다. [변호인], [밀정], 지금 잠시 말하려는 [마약왕] 모두 부족함이 하나씩 이상 있는..
한동안 송강호의 포스터 속 미소는 슬픔의 양만큼 등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통상 웃는 송강호는 아버지의 표정을 표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재 시절 말을 하는 입을 닫는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아빠-효자동 이발사, 지리멸렬한 밥벌이의 조폭-우아한 인생 등등. 그렇다면 아버지 뿐만 아니라 나라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 조선의 왕이 된 사도 속 송강호는 어떤가. 그는 웃지 않으며(웃기는 한다), 이미 모든 것의 파국이 지난 후에서야 운다. 좋지 않은 부자 관계를 넘어 애초부터 연을 맺지 말았어야 할 두 단독자가 만나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 안의 비극을 형성한다. 여기서의 송강호 역시 언제나 그렇듯 훌륭하다. 분장의 미숙함을 넘어 일그러진 눈매와 쇳소리만으로도 그는 노후와 호령을 모두 소화해낸다. 여기에 ..
영화의 전반부는 김지운이 이런 시대와 소재를 가지고 만들었다면 딱 예상한 그 톤이다. ([놈놈놈]의 경우엔 만주-웨스턴이라는 의도를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으니) 쿨한 톤을 견지하고 주목을 요하게 한다. 최동훈이 [암살]에서 오달수 치트키를 사용한 것 등으로 소나무 진액처럼 찐득한 기분을 주었다면, [밀정]의 초반엔 그런게 없다. 그래서 좀 더 취향인데... 다만 암살엔 안옥윤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지만, 밀정의 한지민에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세간의 표현을 빌자면 송강호 홀로 하드캐리하느라 바쁘고, 중후반부터는 이 쿨한 장르를 시대가 어쩔 수 없이 누르게 된다. 느와르처럼 폼 잡을 시간이 없다. 일본인들이 저지른 일들에 의분을 감추기 힘들고, 영화가 그렇게 분노를 휘감고 관객들이 바라는 방향..
연출의 목적이 없었던 분이 본의 아니게 연출까지 잡게 된 경우여서일까. (가장 나쁜 경우가 [26년]인 셈인가) 덜컹거림은 있지만 미숙함은 보이지 않는다. 노련함도 있고 좋은 작품, 나쁜 작품의 얄팍한 이분법으로 재자면 좋은 영화이다. 잘 만든 영화다. 연출을 쥔 감독은 계속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전기적 기술을 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보인 듯 했지만,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실패한 듯 하다. 계속 환기되고, 중요한 디테일들은 실존 인물을 - 그의 지지자들로 하여금 -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배우들의 호연이 좋다. [설국열차] 때보다 훨씬 나아보이는 송강호는 물론이고 곽도원도 좋고 이성민도 좋다. 반면 어쩔 수 없이 TV드라마 풍을 연상시키는 조민기 등은 아쉬운 대목이다. 출연 결정 자체가 쉽..
강동원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몇몇 장면이 있다.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볼 때 서늘한 눈빛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섬뜩한 청년. 잘 빚은 인간이다. 송강호야 말할 나위가 없고. 궁시렁거리는 대사 처리를 하면서 명확하게 잘 들리는 발성을 지닌 배우가 송강호 말고 누구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영화는 영화다]를 케이블로 본 적이 있긴 하지만 묵음으로 봤다. 묵음으로 보니 대사 잠시 치고 주먹질 하고 대사 잠시 치고 주먹질 또 하고... 그런 구조였는데, 그래도 묵직한 구조가 있겠지려니 했다. 아무튼 장훈 감독은 좋겠다. 이 정도라면 3번째 장편을 찍는데는 거의 아무 무리가 없지 싶다. 특히 이 영화는 초반부가 꽤나 좋다. 이런 호흡이라면 다음 영화도 기대된다. 이념과 분단이라는 배경은 사실 영화를 무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