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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넷플릭스 덕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지브리 작품 봐서 좋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 취향이 반영된 반전 메시지와 비행체에 대한 애정이 문득 묻어 있는 장면과 연출이 출중하다 비행의 활공과 비상 등이 보여주는 성실함과 설렘은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여성 공동 노동에 대한 예찬은 [원령공주]에도 충실히 이어질 텐데 새삼 놀랍고 좋았다. 이러던 입장이 [바람이 분다]에 들어서 왜 그렇게 확연히 퇴보했는지 알 도리는 없다. 그저 사람의 역량은 최선과 최적의 시기가 있을 테고, 그것 또한 그 너비와 크기엔 한계점이 있는 듯하다. 그저 그리 짐작할 뿐이다.
신문 4컷 만화 시리즈가 지브리의 극장판에 올라온 것이 이례적이고, 그림체 역시 지브리 하면 언뜻 떠올릴 것이 아니다. 저 간략한 그림체와 4컷에 기반한 단순 명쾌한 서사에도 놀랍게도 100% 디지털 작업이라 제작비의 물량은 놀라울 수준이고 그 완성도도 보기와는 다르다. 딱딱 끊어지는 움직임이 아닌 애니메이션 본연의 쾌감과 운동의 활기가 느껴지고, 들려두는 이야긴 언뜻 가족물 [아따맘마]를 연상케도 하는데, 당연히 결과적으로 아주 다른 작품이 되었다. 참 얄궂게도 지브리 =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등식은 남의 탓을 하기도 힘들 정도로 디렉터 본인의 탓이 크기도 하다. [모노노케 히메] 작품 자체를 넘어서 '살아라'라는 문구는 지브리를 대표하는 일종의 생태주의, 인류학 본연의 상징이 되었고 그 자체가 시대의 ..
리카코 같은 인간관계 참 힘들지. 하지만 주인공은 그 힘겨움에도 그걸 감안하고 그 아이를 좋아하고 의지를 가지고 대화하며 대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 의지엔 단순히 우리가 첫사랑에 대한 찬사 이상의 진심이 있고, 일본 대중문화 속 첫사랑 특유의 징그러움이 분명히 있... 그래 있다. 있어. 그리고 작품이 만들어졌을 당시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니 뜻하지 않은 레트로 무드의 시티팝 취향이 곁들여졌다. 그래서 참 의외의 힙함이 느껴지는 작품이 되었다. 당대엔 지브리 내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괜한 미움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론 뜻밖의 성취를 얻은 작품이 되었다. 하.
예전 지브리 작품들에겐 어떤 축제같음이 있었다. [붉은 돼지] 같은 대표작은 물론이거니와 [원령공주] 같은 스산한 작품에서조차도 이상한 축제의 흥분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지브리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추억의 마니]엔 파티라는 부수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징한 실패작인)[바람이 분다]를 연상케하는 지나간 것의 쓸쓸한 정서가 있다. 이것이 한 사춘기 소녀의 성장담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나에게 마니는 한낱 유령이나 실재감을 가진 애착의 대상의 의미를 넘어선, 사춘기까지의 성장에서 야기된 결여의 총본산이다. 이 총본산급 결여는 나중에 하나의 스포일러를 품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자매애 감정과 이야기 본연의 미스테리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체가 담고 있는 극복과 배려의 구성 자체이기도 하다.(게..
작화, 배색, 무엇보다 모션과 연출, 인물의 생동감은 이루 말할데가 없다. 마루 바닥을 다다다 달리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한 사운드도 일품이었다. 이걸 왜색이라고 부른다면, 그 무식함을 탓할 곳을 찾는게 좋을거다. 자국의 민속, 자연과 인간에 대한 철학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그것이 재산임을 아는 토양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부러운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제 지브리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벼랑 위의 포뇨]는 기이해도 따라가고 싶은 매력이 남아있던 작품이었다. 이젠 좀 보폭이 맞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섬세하다. 비행에 대한 환상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아예 백일몽처럼 현실과 겹쳐버린다. 여기에 지속적으로 "살아라. 당신은 살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쯤되면 은퇴선언이 허언이 아닌거 같다. 아주 작정하고 만들어서 던져 보이는 듯 하다. 그럼에도 가슴저림을 목표로 한 듯한 헌신적인 순애보도, 비행기체에 대한 열의와 전쟁 시대 사이의 번민도 부족하다. 역사적 사실 보다는 유럽풍 풍경에 대한 경도에 더욱 공을 들인 탓인지, 지진의 묘사나 시대 속 사람을 그린 정성이 와닿지 않는다.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공인된 은퇴작으로선 쌉쌀한 기억으로 남을 듯.
마지막 주 월요일 휴무, 오전 11시 개관, 아마도 9월 22일까지일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틀답게 컬러로 된 아트워크 같은거 없습니다. 이런 테마도 모르고 방문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 하군요. 카메라 촬영 금지인데 틈나는대로 사진을 공략하려는 열의있는 멍청한 학부모도 종종 보이던데 그러지 마시죠. TV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부터 근작 극장판 장편 [코쿠리코 언덕에서]까지의 작업물들이 수북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자료는 너무 많아서 탈(?)이고, [온 유어 마크] 같은 작품은 아무래도 서너장 분량...(눈물) [관람 후 방문객 낙서 코너...] 바람의 속도감, 비행, 활공, 하강의 이미지가 주조를 이루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중반기 작품들과 달리 다카하타 이사오 작품 사이드..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말을 아끼며 다부지게 가족을 이끄는 아버지, 안락한 삶의 영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머니, 그리고 호기심 많은 14살 딸. 지브리에서 그려내는 가족의 풍경은 언제나 일정 수준의 온기가 있다. 가족 구성원 한명의 실수도 껴안는 관용과 진심의 반성, 그리고 삶은 지속된다는 근면한 다짐. 어째 내겐 무슨 소릴 하는지 도무리 알 도리가 없었던 [원령공주]보다 이쪽의 '살아라'가 더 와닿았다.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위태롭게 공존하는 수많은 생명체들, 인간, 고양이, 너구리, 귀뚜라미, 바퀴벌레, 꼽등이, 그리고 소인들... 그럼에도 여전히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의 지브리는 걱정된다. 여전히 감탄을 자아내는 그림과 디테일을 자랑하지만, 환상 이상의 감수성을 심어주던 당시는 아직도 재현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