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16. 1. 6. 12:15

김광석을 추모할 수 있는 더 좋은 문장가들은 많겠지만 아무튼 기회가 닿았습니다. 추모의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이해되길 바랍니다. 제목은 편집부 쪽에서 달았는데, 전 큰 불만은 없습니다. 편집도 잘해주셨고... 오리지널 원고는 하단과 같습니다.


[오마이뉴스 링크 : (바로 가기)]




김광석, 노래, 기억의 다섯 순간들.


김광석에 대해 적는다는 것은 심호흡이 필요한 일이다.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음반을 통해 첫 세상 밖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알린 후, 살아생전 1,000회가 넘는 무대에 섰으며 1996년 홀연 세상 위 하늘로 발길을 돌린 남자. 그래도 목소리와 서정을 남기며 민들레 홀씨처럼 음악 듣는 이들의 가슴마다 다른 모양의 뿌리를 내리며 기억된 이기에, 어떤 식으로 적어도 흡족한 기록이 되기엔 부족할 것이다. 이 글 역시 그 부족함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세상 수많은 이들 안에서 그의 20주기를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의 하나로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첫 번째, 동물원 <2집 - 동물원 두번째 노래모음>(1988) ‘흐린 하늘 아래 편지를 써’


스트리밍으로 음원 시장의 구도가 개편된 것은 바다 건너 닥터 드레(Dr.Dre) 사장님도 알고 음악 장사도 열심이신 통신사 사장님도 아실 일이지만, 콤팩트 디스크(CD) 세대 이전과 전축으로 LP 듣는 세대 사이엔 ‘영어 회화 공부’를 핑계로 한 카세트테이프 세대가 있었다. 녹음용 카세트테이프로 마음에 드는 FM 방송 주파수를 맞추며 마음에 드는 선곡이 나올라치면 ‘REC’ 버튼을 누르던 카세트 데크 놀이가 익숙한 나이였다. 글 쓰는 이는 당시 라디오 방송용 가요답지 않게 3분 30초의 벽을 넘으며 후반부 코러스가 터지며, 메인 보컬의 목울대가 심상치 않게 울리던 이 노래의 처음 한방에 넋이 나갔었다. 조용필의 ‘모나리자’ 정도 아니면 팝보단 가요가 후지다고 뻗대던 연원 불명의 자존심을 보유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녹음용 카세트테이프 안에 포획했던 이 4분 이상의 곡이 가진 매력은 참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김광석의 목소리를 처음 본격적으로 인식한 당시였다.




두 번째, 김광석 <1집 - 김광석 1> (1989) ‘아스팔트 열기 속으로’


동네 음반 매장에서 2,700 ~ 3,300원이라는 가격대로 학생 용돈으론 무리이던 카세트테이프 구매. 좋은 음반의 조건이란 무릇 “한 곡도 소흘하게 뺄 대목이 없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큰댁 사촌 누나의 방에 있던 음반 라이브러리엔 이 곡이 나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는 이 곡의 원곡은 ‘사랑하기에’라는 발라드곡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이정석의 데뷔반에 실린 수록곡이었다. 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음악인 연석원씨가 작곡/작사를 맡았던 이 곡은 이정석의 음반에 이어 김광석의 목소리로 다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연석원씨는 한국 록 역사의 중요한 이름 중 하나인 밴드 ‘데블스’의 출신이기도 하다) 도심 위의 지글거리는 아스팔트의 열기 안에서 관조적 자세로 자신을 되묻는 청춘의 화자를 내포한 가사는, 내성적인 이정석의 목소리와는 또다른 김광석의 목소리로 다소 외향적으로 표현된다. 한국 가요를 들으며 희미하게나마 서로 간의 관계도를 그려보며 계보를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재미를 느끼던 초입이었다.




세 번째, 김광석 <다시 부르기 1> (1993) - ‘이등병의 편지’


삼수했다는 그 형은 예상대로 학과에 쉽게 적응하진 못했다. 특별히 위축된 부분도 모난 구석도 없었지만, 어느 쪽이 주체이냐를 떠나서 ‘배제’의 규칙이 흐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 어느 날이었다. 성숙의 지표라는 대학생의 나잇대에서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1년이 지나기 전 같은 학번의 남학생 중 가장 먼저 입대를 택한 것은 역시나 그 형이었다. 그러다 형이 첫 군 휴가를 나왔다. 잘해준 적도, 정 한번 제대로 내준 적 없었던 캠퍼스에 형은 그래도 뭐가 좋아 그리워 찾아왔고 그 휴가의 하루를 나와의 시간으로 탕진하였다. 술 한 잔 기울이는 멋조차도 몸이 받아주질 못하는 나와의 시간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래도 한사코 그는 노래방에 가자고 했고 마이크를 직접 들었다. 휴가 나온 사병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가 가진 궁상맞음과 비극 사이의 풍경은 어떻게 듣기에도 마음 편한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그가 편지로도 적어내질 못할 문장이었을,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마음속 광경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이등병의 편지’는 그 알듯도 하고 전혀 모를 듯도 한 수수께끼로 내게 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겨레의 노래> 1집 음반(1990)에 실린 전인권의 목소리 버전도 참으로 좋아한다. 




네 번째,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1995) - ‘변해가네’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시리즈 카세트테이프는 학교 앞 자취방의 스테디셀러였다. 기적 같은 김건모의 ‘백만 장 전설’도 피어나던 시절이었고, 룰라의 엉덩이춤도 있었고 듀스의 마지막 음반도 있었고, 신해철과 넥스트의 이력이 황금시대를 개막하던 때이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김광석은 은밀하고도 진실한 자취촌의 송가였다. 박노해의 시집과 황지우의 실험시 시집이 동시에 놓인 책장, 사적 취향과 젊은 고민이 거미줄처럼 엉킨 어떤 소산의 결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변해가네’는 원래는 동물원의 곡이었다. 기억하겠지만 김광석은 동물원 멤버들과 노선 차이를 실감하며 독립하였고, 이후 살아있는 가객이 되었고 무대의 전설이 되어갔다. 동물원의 키보드를 맡으며 보컬을 맡기도 한 박기영씨의 원곡은 연정의 대상이 생긴 화자가 겪는, 변화의 징후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서툴고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곡이었다. 김광석이 다시 꺼내 들어 부른 ‘변해가네’는 변화의 징후조차도 껴안을 기세의 어떤 씩씩함이 서려 있다. 어떻게 보면 김광석이 생전에 사랑했다는 바이크 같은 기세도 느껴지기도 한다. 이 쾌청한 기세가 반갑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이 유작의 일부라는 생각을 들면 아득한 기분이 되는 것은 한편으론 슬픈 일이다.








다섯 번째, 김광석 <Anthology 1> (2000) - ‘그날들’


이 곡을 위시한 음반의 수록곡들은 그의 동료 음악인들이 같이한 듀엣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고인의 목소리에 현존 가수의 목소리를 겹치는 방식, 이는 음반 녹음 기술의 수혜 탓일 것이다. 김광석과 생전의 관계에 있어 복잡한 심사의 동료였을 안치환의 목소리도 이 곡에 함께 하고 있다. 안치환의 ‘울부짖으며 들끓는 목소리’와 김광석의 예의 그 목소리는 곡 안에서 공명하며 작품이 가진 호소력을 배가하는 데 서로 공헌하고 있다. 이 음반을 선물해준 것은 졸업 후 다시 서울에서 연락하게 된 후배였다. 좋은 선물을 해준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아무튼 어느 순간 그래도 된다고 판단하여 서툰 고백을 뱉었다. 서툰 고백엔 당연히 ‘상대의 거부’가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불을 발을 차게 될 일 하나를 추가하였다. 그렇게 나의 서울생활의 서두 대목은 시작되었다. 공기는 나빴고, 사람들은 좀 더 나빴다. 나도 더불어 그 사이에서 예전보다 조금 나빠진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후배와는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기게 되었고, 그래도 끈질기게 이렇게 추억을 상기할 수 있는 노래와 몇몇 대목이 남아 안도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더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정신무장과 함께, 음악을 남긴 이에게 마음속 인사는 보낼 줄은 알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소양만큼은 견지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다. 



20주기,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 더 많은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160105]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5. 1. 9. 13:32

* 웹진에서 신해철 타계 이후, 추모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그리고 오늘 마무리 되었다. [링크] 기존 정규 디스코그래피를 비롯, 몇몇 아티클로 구성중이며 나는 그중 3꼭지 정도를 적었다. [안녕, 마왕] 운운하는 타이틀은 나도 맘에 안 들지만, 아무튼 시리즈 전체 잘 읽어주시길...




[안녕, 魔王 : Epilogue] 굿바이, 미스터 트러블



그 날은 월요일 저녁 9시가 넘어서였습니다. 머릿속을 짓누르는 걱정이 있었지만, 당신에 대한 지분은 크지 않았습니다. 원래 일상을 부둥켜안고 산다는 게 그러하듯이, 보람과 기쁨 한 숟가락과 걱정 한 포대가 공존하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에 지인에게 받은 문자 한 통으로 아연한 실감은 공포가 되어 다가왔습니다.



당신이 이제는 더이상 세상에 없다고 합니다. 육신의 흔적들은 아직 남아 있되 음악 하는 당신, 입담을 푸는 당신, 병석에서 아파하는 당신, 회복되어 온건한 당신은 이제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과 100 사이가 오가며 가능성과 실망감이 교차하던 당신과 우리 사이의 현세는 이렇게 0으로 마지막 파국을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방문한 영안실 건물 1층에서 당신의 모습이 실린 안내 사진을 보는 순간, 전 그 0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BGM



10대에서부터 곧 40대에 진입하는 지금의 나에게, 당신의 음악은 어쨌거나 인생의 배경음악이었습니다. 「Turn off the T.V」(1992)의 “세계 최고 동양 최대”는 교실 학우들과의 우스개 신호에 불과했지만, 대학 1학년 홀로 자취방의 카세트로 처음 들었던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1994)에서부터 사정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 친구들과 경쟁하며” 중 1/3만 실천해 온 학창 시절이었지만, 이 가사가 제 심중을 겨냥해 발사한 본격적인 신호탄은 대학 생활 초입에 ‘늦은 중2병’의 후유증을 앓게 했습니다.



입대 후 야간 탄약고 경계근무를 마치고 들어온 조용한 밤, 내무반에서 선임들이 잠에서 깰세라 최소한의 음량으로 들었던 「절망에 관하여」(1996)가 안겨준 실감나는 절망감은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 곡 하나가 남은 군 생활을 버티게 된 힘이 되었다는 거짓말을 적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명백히 고통은 고통일 뿐이고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입니다. 다만 그 곡(과 함께 병장 시절 본, 넥스트 해체 기자 회견 같은 일들)이 남긴 그 시절의 명징한 기억은 아마 인생의 끝까지 안고 갈 끈덕진 유산일 것입니다.



   

연극 속(또는 바깥)에서


 

그런데 당신의 음악은 날이 갈수록 직접적이 되어 갔습니다. 「The Pressure (압박)」(2000)에서“나가 뒤져 버리든 말든 / 네가 죽을 용기가 있냐?”라고 묻던 당신은 「개한민국」(2004)에서 “남편은 애 엄마를 패고 선생은 학생들을 패고 / 의원님은 지들끼리 패고 패라 패라 뒤질 때까지”의 영역까지 나가더군요. 전 그런 당신이 싫지 않았습니다. 매미와 민물장어로 대표되던 개인과 세계 사이의 긴장감은 이후 ‘껍질을 파괴’한 후, 성난 분노를 외벽으로 감싸고 돌진하는 극단의 전형을 보여주더군요.



당신의 솔로 2집에 있던 「The Greatest Beginning」(1991)를 처음 들었을 때 흡사 그렘린처럼 변조된 다이얼로그를 들으며 당시 저는 웃었습니다. 그 ‘시퀀스 하는 아이돌’은 미소와 대본을 강요하던 환경과 세계의 압력에서 벗어나려 노력해 왔고, 어느샌가 이 땅을 「현세지옥(現世地獄)」(2004)이라 명명하는 개인적 주체로서의 어른이 되어 있었지요.


  

당신은 그 가운데서도 부인을 떠올리며 만든 노래라며, 발라드를 만들기도 했고 (「Last Love Song」) 부인과 가족도 모두 편히 들을 수 있는 음반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The Songs For The One』) 하지만 당신이 극히 개인적인 음악으로 숨통을 틀 때, 저는 잠시 반감을 품기도 했습니다. 연극 무대로 비유되는 거대한 세상과 그 내부에서 벗어나려는 탈주하는 개인으로서의 긴장감을 연출할 때, 당신이 가장 빛났다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었을지요. 그런 ‘가혹한 왕관’을 팬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머리 위에 굳이 씌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문득 생각해 봅니다.


  


굿바이, 미스터 트러블


 

한편, 당신은 자신의 숨통을 음악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틔기도 했습니다. 밤의 DJ로서 당신은 남녀노소의 음침한, 하지만 화통한 친구이기도 했고 토론 프로그램 패널로서의 당신은 ‘지적 능력이 광대 노릇을 압도’하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도, 지지한 당선자에게 실망감을 숨기지 않고 1인 시위를 자처한 것도 한 사람의 언행 안에서 나온 파격이었습니다. 공교육 붕괴를 말하였으며, 입시학원의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세상과 불화하는 순간들이 출몰하였고, 불화를 겁내지 않고 일일이 무언가를 답해가며 태도를 밝혀 왔습니다. 그 순간마다 팬이자 음악 듣는 사람인 저는 찬성하기도 했고, 반대하기도 했고, 당신이 일으키는 불화들을 괜히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불화를 반기거나 그에 중독되었거나 불화를 위한 불화에 탐닉해오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선대에 대한 존중을 숨기지 않았으며 - 부활, 신대철, 정태춘 등등 - 후진들을 걱정해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음악 만들기의 감각이 둔중해지는 것을 최근엔 다행스럽게도 경계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의욕을 자주 피력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0이 되었으나, 저는 그 0이 주는 황망함을 당분간 힘든 과제인양 풀지 못할 듯합니다. 인생의 BGM을 순간순간 부여하던 사람, 새로운 음악이 줄 흥분감과 실망 또는 상념의 허탈 중 어느 쪽도 예측하지 못하게 된 이 마당엔 더더욱 말이죠. 그것은 일종의 애증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론 당당히 실망감을 피력할 수도 없는 이 무기력함은 거대한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남은 일은 당신이 해왔던 일을 떠올리며, 사적이든 공적이든 반추하는 길 외엔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보낸 헌정곡의 제목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와 저의 입으로 곱씹게 되었습니다. Good bye. Mr. Trouble 신해철. 명복을 빕니다.


  

당신 같은 사람을 남은 인생 어떤 순간에도 다시는 만날 순 없을 것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백태클 2015.01.10 04:02  Addr  Edit/Del  Reply

    이 글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0000 2021.02.25 17:23  Addr  Edit/Del  Reply

    좋은글 잘 봤습니다.

posted by 렉스 trex 2014. 2. 25. 16:52

+ 음악취향Y의 루 리드 추모 특집 시리즈의 일환으로 적은 것입니다 : http://cafe.naver.com/musicy/18368





Lou Reed & Metallica 『LULU』

Vertigo / 2011년 10월 현지 발매



CD 1

01. Brandenburg Gate

02. The View

03. Pumping Blood

04. Mistress Dread

05. Iced Honey

06. Cheat on Me


CD 2

01. Frustration

02. Little Dog

03. Dragon

04. Junior Dad



로큰롤 명예의 전당 25주년을 기념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2009년 10월), 메탈리카가 연주를 마치고 제임스 햇필드가 루 리드를 소개하는 순간 관객들의 함성 사이에 야유가 끼어든다. 무슨 연유인가. 이미 본 추모 특집편시리즈를 통해 여러분들은 뉴욕파 아방가르드 거장의 풍모는 맛보았을 터이다. 전위와 실험, 그에 걸맞은 부침 많은 디스코그래피 상의 이력의 보유자, 이 루 리드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야유와 함성은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루 리드 본인이 19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라온 거장이거늘)



당시 메탈리카와 루 리드가 협연한 트랙은 「Sweet Jane」였는데, 예상하시는 바대로 두툼한 메탈리카의 배킹 연주에 루 리드의 걸쭉하고 달콤한(?) 보컬과 이에 달갑지 않은 제임스 햇필드의 추임새까지 재밌는 부조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게 재밌다기보다는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이라는 생각이 강했는지, 몇몇 이들에겐 야유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나 보다. 어쩌면 이들은 이 무대 이후 나올 결과물을 예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이건 몰랐을 거다. 이 곡에서 메탈리카가 들려준 배킹 연주가 앞으로의 콜라주 음반에 실릴 묵직함의 강도보단 나름의 '힘 조절'을 한 편이라는 것을.



『LULU』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이 있던 2009년의 2년 뒤 발매되었다.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보다도 일단 루 리드와 메탈리카의 본격적인 조우라는 점에서 화제성이 클 수밖에 없었고, 명반 가뭄의 시대에 '혹시나'하는 기대감이 팬들의 귀를 쫑긋 세웠다. 게다가 기대작이라는 이름에 들어맞는 볼륨감으로 무장한 본작은 2CD라는 방식으로 10여 분대가 넘는 대곡(?)들을 한산하게 담았다. 음반커버를 비롯하여 구체적으로 뭘 보여주려는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야심만은 확실히 서려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결과물은...





『Garage Inc.』풍 도입부에 '비교적 노래를 부르는' 루 리드의 보컬이 한 소절 마무리 될쯤, 탕탕거리는 메탈리카의 배킹이 이어지는 「Brandenburg Gate」는 그럭저럭 괜찮다. 다른 두 팀이 만나면 이런 광경이 벌어지겠다 싶은 예상치를 딱히 배신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두 번째 곡이자 첫 싱글인 「The View」에서부터 슬슬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에 가까운 루 리드의 작법과 맹진하는 메탈리카의 만남이 걸맞지 않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S & M』에서부터 최근 그래미 무대에서의 랑랑과의 협연이 보여주듯, 메탈리카는 스래쉬 메탈이 한 시대의 대중음악으로서 당당한 자리매김을 했음을 스스로 전설됨으로 증명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이 강성 '메탈리즘'이 루 리드의 '반골리즘'을 만나니 불협화음이 시작된다.



『St. Anger』, 『Death Magnetic』 등 일련의 작업에서 일렉 악기의 타격감을 유난히 강조하던 메탈리카의 이력이 루 리드와의 만남에서 실책을 거듭하는 것이다. 후드를 뒤집어쓴 사자의 언어를 반복하는 듯한 루 리드의 관조를 방해하는 메탈리카식의 비장함이 「Pumping Blood」를 소음으로 만들고, 「Mistress Dread」는 마치 10일여간 음반을 만들면 이런 나쁜 참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의보 같다. 「Cheat On Me」는 음반을 듣는 내 시간 10여 분과 공간에 대한 숙고를 안겨준다. 제 할 일만을 충실히 해내고 내빼는 리듬 기타와 드러밍의 무정함은 상기할수록 왠지 풋하는 웃음을 유도한다. 그나마 『Garage Inc.』의 곡들을 좀 닮아있는 「Iced Honey」가 양호한 편이나 끼어드는 제임스 햇필드의 목소리마저 막진 못했다.



음반 발매 후 2년 뒤인 2013년 10월 27일, 루 리드는 오랫동안 앓아온 간 질환을 이유로 타계했다. 결과적으로 『LULU』는 그의 유작이 되었는데, 이는 B급 액션영화 [스트리트 파이터]가 유작이 된 배우 라울 줄리아의 운명과 비슷한 불명예(?)인 셈이다. 다행이게도 『LULU』가 큼지막한 볼륨 안에 패착 덩어리만 담은 것은 아니었거니와, 마지막 곡 「Junior Dad」가 들려주는 여운은 그에 반해 또 만만찮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메탈리카식 음악에서 제일 떨어져 있는 편이며, 루 리드의 관심사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편인 이 곡은 19분의 시간 동안 모던 헤비니스의 경향성과 감성적인 쓸쓸함을 담고 있어 인상적이다. 8분여간 곡과 음반 전체를 마무리하는 앰비언트적 마무리는 일종의 장례의식이 된다.



물론 이 쓸쓸함과 장례의식의 상기는 그의 죽음 사후의 인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으나, 망자를 되뇌는 방법으로 디스크의 곡을 선택하는 것까진 막을 순 없으리라. 남은 씁쓸함과 언짢음은 이 반골리즘의 실험가를 자본이 어떤 방식으로든 '되팔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언제든 그래 왔잖은가. 박스셋과 트리뷰트가 무성의하게 범벅이 된 시시한 시대에 루 리드는 명징하게 그렇게 우릴 떠났다. [20140225]



Produced by Greg Fidelman, Hal Willner

Engineered by Greg Fidelman, Kent Matcke, Dan Monti, Jim Monti

Mixed by  Greg Fidelman

Mastered by Vlado Meller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1. 3. 11. 10:16
+ 한겨레 웹진 HOOK에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23534

만연하는 죽음의 소식들 앞에서 하루하루가 멍해지는 요즘이다. 소급하자면 전직 대통령 두 분의 죽음이 그랬고, 가깝게는 어린 시절 봤던 소년지의 화백들이 세상에 붓을 놓고 떠났을 때도 그랬다. 사상의 스승 리영희 선생님에서부터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까지, 매일 접하는 부고에 내가 기어코 한 세대가 저무는걸 목도하고야 마는구나하는 실감과 앞으로의 아찔한 소식들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트위터 타임라인과 RSS로 구독하는 블로거들의 글들에도 추모의 행렬을 연일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거인과 거장들의 죽음 뒤에 얼마나 더 추모해야 하며, 남아있는 지금의 사람들과 시시하고 하찮은 인생을 공유하고 살아야 할까. 난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요새 문득 하는 고민들이다.

그러던 중 일간지 한겨레의 글 ‘곽병찬 칼럼 – 아주 낯선, 죽음의 풍경들’을 읽게 되었다. 제목에선 아득한 동감이 느껴졌다. 요즘 시대를 다소 비관적으로 설명하자면 ‘거대한 군병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릿한 소독약 내음이 공기를 똘똘 감싸 안은 채, 창백하게 연명하는 수많은 삶의 동지들. 그들과 여행이니 공연이니 하는 즐거움의 단어를 나누지만, 찰나의 즐거움은 잠시. 묵직하게 누르는 삶의 현실 감각은 우리를 어쩔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게끔 한다. 자본주의의 총탄과 포성이 오가는 현장에서 우리는 시가전을 치르고, 그러다 문화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밟고 처세를 획득한다. 그러다 간혹 들리는 동료와 윗 세대들의 부음에 잠시 절망하다 다음날 또 다짐하듯 군장을 꾸린다.

편집인 곽병찬씨의 글은 나와는 다른 구체적 현실 감각에서 나온 것일테다. 그의 문장에도 있듯이 그가 향한 시선은 구제역으로 황폐화된 농가를 망연자실하게 볼 수 밖에 없는 이들의 눈물, 젊은 나이에 노동의 가치를 끝내 확인하지 못한 채 사회적 죽음을 당한 이들, 그리고 가족들의 눈물들에 향해 있다. 그리고 그의 질문은 바로 지금 이 시각, 이 땅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질문이나 할 수 있겠냐는 시대적 근심이다.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한겨레가 일관되게 우리 사회를 향해 물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읽어가던 글에서 나는 이 대목에서 그만 숨이 턱하고 막히고 말았다.



난 여기서 최고은씨의 죽음과 그로 인한 가족과 동료들의 슬픔을 다시 소환하는게 두렵고 심지어 죄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충분히 대변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이고 이미 HOOK을 위시한 수많은 곳에서 그녀의 직간접적인 동료들이 예를 표하고 그녀를 추모하였다. 그럼에도 굳이 저 대목을 인용하며 편집인 곽병찬씨에게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일단 곽병찬씨는 최고은씨의 일에 대해 사회적 죽음이라는 인식이나 공감대가 없는 것일까. 최고은씨의 일 역시 대중문화산업의 층위에서 벌어진 사회적 죽음이자 비극이라는 생각은 없는 것일까. 혹시나 그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보도상의 사실은 서로간의 위계 차이가 있는 것인가. 최고은씨의 일이 그의 글에서 표현된 ‘연예인 명망가의 죽음’ 같은 위계로 취급될만치 다른 더 중요한 이슈들을 가리는 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설마 최고은의 노동과 그가 비통해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구별되는 것인가. 최고은의 일을 슬퍼한 동료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구제역 농민들과 투쟁 노동자들을 근심하지 못할 정도로 박약하다고 믿는 것은… 그렇다. 설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슬픔이 그토록 ‘낯선가?’

무엇보다 한 대중문화 노동자가 감당했어야 할 현실적 처우와 건강상의 여러 이유로 극단적 환경에 몰린 사실을 두고, 피자 배달을 운운한 것은 지나쳤다. 곽병찬씨는 농민들의 눈물을 보고, 타협을 거부하는 노동자와 가족들을 보고, 빠듯한 주문에 밀려 오토바이를 몰다 비명횡사한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생에게 ‘차라리 그럴 바엔 다른…’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가?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언론 이곳저곳에 거론되는 과정에서 나온 추모의 언사들이 낯설다고 표현하기 위해, 이런 일이 벌어진 과정에 대해 지나치게 표면적으로만 인식한 것은 아닌가?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일상인으로서의 예의 범주를 벗어나, 그것이 언론인으로서 표명할 수 있는 바른 입장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노파심이나 근심이려니 하겠지만, 곽병찬씨가 혹시나 전언한 노동자들과 최고은씨 같은 대중문화산업 종사자 노동자들을 다른 위계 또는 다른 충위로 보지 않길 바란다. 최고은씨의 일이 그보다 더 중요하고 세상에 시급히 알려야 할 비극적 사건들을 가렸다고 하지 말길 바란다. 그녀의 죽음 역시 우리 앞에 지금 만연한 사회적 죽음, 그것에 다름 아니다. 한 여자 연예인의 죽음이 다시금 소환되어 우리에게 양심과 법의 재단을 묻는 이 때에, 각기 다른 죽음들을 위계에 놓는 것은 지나치게 잔혹해 보인다. 그 서로 다른 죽음들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것이 언론의 참 존재 이유가 아닐런지. 무엇보다 한겨례는 최고은씨의 죽음을 두고 작은 물의(?)를 일으킬만치 독자들에게 인상적인 환기를 시킨 곳이다.

곽병찬씨가 말한 ‘인간의 존엄성, 인간성의 고결함’이 무엇보다 위협받는 이 세태에 더더욱 실감한다. 이 죽음의 풍경 앞에 예의와 외면하지 않는 시선이 동시에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110310]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09. 9. 1. 18:34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것일까...

그저 명복을.








장진영 상세보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컬러링 2009.09.01 18:46 신고  Addr  Edit/Del  Reply

    부디 좋은곳으로...
    왜 이렇게 일찍 떠나야 하는 걸까요.....

  2. BlogIcon SaiB 2009.09.01 20:14  Addr  Edit/Del  Reply

    시절이 너무 수상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3. BlogIcon [버섯돌이] 2009.09.02 00:02 신고  Addr  Edit/Del  Reply

    대체 뭐라 해야 하는 2009년인건지..

  4. BlogIcon daywish 2009.09.02 08:54  Addr  Edit/Del  Reply

    힘든 2009년입니다. 정말로 뒤숭숭한.

posted by 렉스 trex 2009. 8. 18. 15:05



















그저..절망할 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썬더버드 2009.08.18 17:51  Addr  Edit/Del  Reply

    3개월 전처럼 슬프고 화납니다..

  2. BlogIcon 유카 2009.08.18 18:52  Addr  Edit/Del  Reply

    그저 슬퍼하고만 싶은데 그럴수도 없게 만드는 이 상황이 싫어집니다.



    신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뿐이에요.

posted by 렉스 trex 2009. 5. 29. 09:2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05.29 23:08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렉스 trex 2009.05.30 18:28 신고  Addr  Edit/Del

      이제 저를 기다리는건 어제 근무와
      오늘 산행으로 미처 챙겨보지 못한 어제 MBC의
      중계들을 봐야하는 일입니다.

      저는 뭘 기억하게 될까요..

  2. 유카 2009.05.30 00:58  Addr  Edit/Del  Reply

    언제쯤이면 그 분 사진을 봐도 눈물이 안날지 모르겠어요-

    퇴근 후에 시청 다녀왔는데 자발적으로 초 가져와서 나눠주던 여고생들 보고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리고 쓰레기봉투 들고다니면서 청소하는 모습도 이뻤어요.

    그에 비해 길바닥에 난장까고 술먹는 어른들이란 -_-

    • BlogIcon 렉스 trex 2009.05.30 18:29 신고  Addr  Edit/Del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고 밴드 럭스는 불렀는데
      답해줄 현명한 사람은 없겠죠? ^^);

  3. BlogIcon daywish 2009.05.30 09:52 신고  Addr  Edit/Del  Reply

    앞서서 나가셨으니 산 자는 이제 따라야죠.
    슬슬 실감도 나기 시작했고, 그간 미뤄왔던 것들을 해야 할 듯 합니다.

posted by 렉스 trex 2009. 5. 26. 22:43

퇴근 후 강남역까지 부러 가야하나 싶었는데 퇴근 후 퇴마침 동행자와 걷다가 발견한 발산역 부근의 분향소. 담배 한 대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유카 2009.05.27 08:57  Addr  Edit/Del  Reply

    전 월요일에 봉은사로 다녀왔었는데, 줄이 많이 길지는 않았으나 계속해서 사람들은 오더군요

    전 아직도 실감이 않나요;

    • BlogIcon 렉스 trex 2009.05.27 09:09 신고  Addr  Edit/Del

      제 입장에서도 거주지가 강남권이라
      봉은사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퇴근길에 저렇게 할 수 있었지요.
      / 하아. 금요일이 지나도 실감은 안 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