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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2011년, 당신을 위한 앨범 3장 본문
2011년만큼 도처에 음악이 산재했던 년도가 있었을까? 방송 3사도 부족해 케이블에서까지 각종 음악 서바이벌쇼가 포진하였고, 사람들은 가시적으로 드러난 K-POP(케이팝) 열풍에 제법 들뜨곤 했다. 월요일 오전이 되면 [나는 가수다] 탈락자와 각 노래에 대한 품평을 하는 아마추어 평론가들의 수다가 가득했고, 미국 유력 음악 매체 순위에 뚜렷하게 박힌 한국 걸그룹의 존재를 보고 누군가들은 설레어했다. 그럼에도 막상 연말이 되니 공허하다. 상당수의 소위 ‘음악한다’는 사람들은 토크쇼 방석에서 진행자를 의식하며 과거사에 얽힌 농담을 뱉어야 하고, 바닷길 배에 올라타 지역 특산물을 수확하며 함박 웃음을 짓는다. 거기 어느 구석에 대관절 음악이 깃든지는 알 도리는 없고, 사람들은 [나는 가수다] 동영상은 보지만 음반을 정작 구매하진 않는다. 음반 시장의 구도는 진작에 디지털 싱글과 미니 앨범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재편된지 오래고, 일간지와 일부 매체들의 연말 앨범 결산은 남의 일이다.
그럼에도 올해에 난 앨범 3장을 넌지시 독자들에게 밀어본다. 1장도 좋고, 다섯장도 좋고 10장도 좋고, 수십장도 좋겠으나 이 앨범만큼은 이 글을 읽을 몇 사람들에게나마 통했으면 좋겠다. 내가 한 해를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는 당해년도 앨범에 대한 의미부여다. 남에게 통할리는 없겠으나 그래도 소박한 추천으로 받아들여졌음 좋겠다. 소개할 음반의 주인공들은 2명의 솔로 뮤지션과 1팀의 밴드 뮤지션이다.
백현진의 앨범 [찰라의 기초]는 문학적 수사로 보일수도 있고, 철학서적의 한 챕터 같기도 한 오묘한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규 음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은 라이브 음반이다. 그런데 막상 들으면 바삭 마른 사운드와 분위기가 라이브반이 아닌 스튜디오반으로 들릴 지경일 것이다. 객석의 연호도 없고 들뜬 분위기도 없다. 음반을 채우는 것은 간혹 울컥대는 싱어 백현진의 보컬이 조성하는 예측불허의 방향이다.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같은 이은하 원곡의 리메이크에선 농염하고 간절하던 본래 분위기는 없고, 백현진의 일관되게 마구 흘려 부르는 창법만이 가득하다. 세션을 맡은 – 각기 기타와 피아노를 맡은 – 방준석과 계수정의 가세는 음울하고 도발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정규 음반에서도 악명(?)을 떨쳤던 가사를 백현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뱉고 씹을 때, 그가 왜 홍상수의 영화 [북촌방향]에 카메오로 나왔는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쏘맥과 참치 뱃살을 함께 한 여자의 육체를 관음하며 감상을 뱉기도 하고(「여기까지」), 어제 본 여자를 떠올리며 자위로 욕구를 털기도 하고(「목구멍」), 수잔 베가의 노래를 전반부에 무심하게 섞다가 예의 끌어안고 섹스를 하던 시간을 떠올릴듯 말듯 한다(「학수고대했던 날」) 물론 홍상수의 영화는 섹스만을 이야기하진 않지만, 그 끈적한 육체성과 멀쩌기 서있는 시선의 문제는 백현진의 음악과 닮아있다. 이 불편한(!) 뮤지션은 난데없이 [나는 가수다]에 출전한 자우림을 위해 1번의 지원사격을 한 바도 있다. 그의 끓는 보컬은 방송에서도 힘을 발휘했지만, 당연히 이 앨범에 비할 바는 아니다.
두번째 소개할 음반은 문샤이너스의 [푸른 밤의 Beat!]다. 한글로 ‘비트’라고 표기해도 될 것을 굳이 Beat라고 새긴 것을 보면, 문샤이너스는 락큰롤(Rock N’ Roll)의 한국적 변용을 넘어선 원형 구현에 천착하는 듯 하다. 표제작 「푸른밤의 BEAT!」는 영락없이 임하룡춤을 소환해 추고픈 흥겨운 락 넘버다. 문샤이너스로선 이것이 2집인데 기억컨대 1집이 좀 대단했다. 소위 더블 앨범이라고 불리는 ‘2장짜리 음반’이었는데, 재생 시간도 꽉꽉 들어찼고 내용물도 대단했다. 반면 집중력을 희생시킨 탓에 아쉬운 구석도 없진 않았다. 살을 뺀 2집은 훨씬 응집력이 느껴지고 밴드로서의 성장폭을 실감하게 만든다. 살랑이는 소소한 분위기의 「나보다 어리석은 놈, 그 아무도 없구나」가 주는 여유와 성찰도 좋고, 「검은 바다가 부른다」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순간은 락이 세상의 모든 것을 눌렀을 당시의 전성기를 연상케 한다.
[Top밴드] 같은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한 소위 ‘Rock Will Never Die’풍의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락에 대해선 유난히 척박한 이 땅의 풍토’를 개탄하며, 자신이 메신저임을 하나같이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 갸우뚱올시다. 다른 장르도 그렇겠지만, 결국 락은 무대와 음반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듯 하다. 거기에 지나치게 엄숙한 무게감을 부여하면 ‘장르 비타협’ 팬들이 나오긴 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곡을 만들고 생활과 예술간의 긴장 사이에서 전쟁을 치른 뮤지션들의 결과물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존중받아야 마땅한 음반들이 나왔고 개중 [푸른 밤의 Beat!]는 상당히 출중하다. 「마녀의 계절」같은 넘버들은 내년 여름까지도 당신의 몸을 움직일 음악이다. 밴드 노브레인(No Brain)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무엇보다 그 자체가 ‘락큰롤 육체’인 멤버 차승우는 또 한번 문샤이너스로 자신의 성장세를 과시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음반은 시와의 음반 [Down To Earth]다. 앞서 소개한 음반들의 뒤엉킨 욕구와 왁자한 사운드가 부담스러웠다면, 추천할 수 있는 일종의 최후 보루다. 시와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사람 같고, 실제로도 조용한 음악을 한다. 프로젝트 작업인 ‘시와무지개’ 상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솔로 뮤지션으로서는 기타 하나 들고 음악 친구들의 조력을 받으며 낭랑하면서도 결코 무게감이 가볍지 않은 좋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싱어송라이터다. 원래 그이의 1집 음반은 인디 음반의 메카인 신촌 향뮤직에서만 취급되었다. 일종의 독립 제작 방식이었고, 그녀의 목소리를 아는 이들이 한장씩 사듣기 위해 발품을 팔아 향뮤직에 들려야 했다. 2집부터는 환경이 바뀌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 기회가 생겼다. 일단 다행이다.
두번째 음반은 기본적으로 1집을 잇는 듯 하지만 짧아졌되, 그만큼 ‘채움’에 주력하였다. 흔한 표현이지만 ‘관계’에 주력하는 듯 하고 비정치적이지만 바깥 일을 방관하지 않고 손을 내민다. (수록곡 「오래된 사진」은 5.18 다큐멘터리 [오월애]를 위한 오프닝곡으로 만들어졌다) 위로를 건네는 듯한 그이의 목소리와 기타의 숨결은 복잡다난하기 그지없었던 엉망진창의 올해를 마무리하는 ‘나홀로 밤에’를 위한 최적의 요소들이다. 그녀 자신도 「크리스마스엔_거기 말고」의 가사에서 ‘사람 많은 곳은 싫다’며 단 한 사람을 위한 초대의 인사를 보낸다. 이 정도면 다음날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겠단 안도가 든다. 이렇듯 모두 해피 뉴 이어. [111228]
- 한겨레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7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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