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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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21화

trex 2012. 1. 20. 16:52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신해철의 영국행 음반과 서울행 사이, 아버지의 별세가 있었고 나는 살아가며 음악을 들었다. 신해철의 공연을 비트겐슈타인 결성으로 처음으로 봤다.


그게 처음 본 공연이었다. 구미에 살았으니 대구까지 결심을 했다면 공연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음악 테이프를 사는 거 외에 공연이라는 형태로 음악을 듣고 취향을 확인하는 행위에 대해선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급기야 2001년도에 내 돈을 써서 판테라 내한 공연에 간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라면 시작이겠는데, 그 이야기는 일단 차후에. 2000년 늦가을과 겨울 사이에 마를린 맨슨의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가 발매되었다.


'안티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메커니컬 애니멀즈'에 이은 3부작이라고도 할 수 있고, 아니면 '메커니컬 애니멀즈'에 쏟아진 반응에 대한 반동으로 다시 '안티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복귀한 것이라도 할 수 있겠다. 내 입장을 전자 쪽. 결국 이 앨범 안엔 '메커니컬 애니멀즈'에 대한 반동 보다는 그 당시의 음악도 흡수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안티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이미지를 굳혔다고 할까. 조금 게으르게 보이는 창작 과정이 엿보이는 앨범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럼에도 선동적인 넘버들이 곳곳에 박힌 그다운 면모는 그때까지는 적어도 믿음직 했다.


림프 비즈킷과 데프톤즈로 열린 취향의 발로가 지금까지의 취향까지도 어느정도 규정지은 듯 하다. 당시에 쏟아진 뉴 메탈 밴드의 라인업은 지금 생각해도 애틋한 구석이 있었다. Hed(pe), 파워맨5000, 콜 챔버 등등 굉장히 취향과 실력의 기복이 들쑥날쑥한 여러 밴드들이 등장한 시절이었다. 콘이 뭔가 동네짱을 먹는 듯한 기운이 강했지만 사실상 이 밴드는 [Issues] 때부터 슬슬 사람들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하지 않았던가. 다만 '패밀리 밸류' 시리즈 공연으로 인한 시장 선점은 인상적이긴 했다.


나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앨범들을 구매하는 방향이 정해졌다. 경제력이라는 이런 것일까요. 'Butterfly'의 느슨함이 좋았던 크레이지 타운의 [The Gift of Game]이나 장르 장벽이 약한 애송이들에게 쉬이 먹힐만한 공산이 컸던 파파 로취의 [Infest] 앨범이 그런 것들이었다. 또한 한편에는 당시에는 뭐 대단한 것이 들어온양 난리였던 린킨 파크의 [Hybrid Theory]가 있었다. 아주 별로였던걸? 뉴 메탈이 주류가 되더라도 이 밴드가 뭐 대단한 것이라고 앞으로 죽죽 나갈거 같지 않은데? 그런데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게 세상사더라. 람슈타인의 [Mutter]는 '패밀리 밸류' 공연에서 나온 그들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라 이 앨범으로 역순으로 구매했던 경우다.


하지만 제일 강력했던 것은 '로드러너 레코드의 아이돌' 슬립낫이었다. 사실 사람 수가 남아돌 것 같았던 버거운 9명의 라인업과 익스트림 메틀에 뉴 메탈 트렌드를 과다하게 쏟아부은 이 붉은 피조물들은 대단했다. 한국에선 특히나 지구레코드반 라이센스 타이틀이 대단했다. 마이너 시절 음반 [Mate. Feed. Kill. Repeat]의 내용물까지 포함시킨 굉장히 묵직한 러닝 타임의 메이저 1집 [Slipknot]이 나왔다. 소급컨대 이 앨범을 소개한게 당시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락 신보를 소개하던 안홍찬씨였던가. 아마 맞을거다. 그때 듣고 꽂혀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종로 YBM 지하 신나라 매장에서 구매했다. 아 그리고 타워레코드여...


종로 YBM 지하 신나라 매장에서 구매한 또 하나의 타이틀은 툴의 [Lateralus]였다. 세상엔 라디오 에어플레이를 통해 한번도 듣지 않은 앨범을 그냥 믿음이 가고 괜히 끌려서 구매하는 일이 생길수도 있다. 혼동과 묵상, 정렬과 기복, 생명력과 고답적, 모든 것이 융화된 이 앨범 덕에 "아...사람이 만든 앨범이 하나의 별도의 생명체로 인식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에게 [Lateralus]반은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흑표범 - 과 흡사하게 생긴 - 같은 생명체다. 훗날 CD플레이어로 워크맨을 대체할 때 제일 먼저 구매한 CD는 [Lateralus]반이었다.


용산상가에서 구매한 파나소닉이 첫 CD플레이어였다. 굉장히 늦은 구매였다. 아마도 열심히 뮤지션 DB를 수동 입력하던 직장이 사장님의 사망으로 폐업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을 당시의 구매였을 것이다. 주변에서 이젠 CD 사들으라고 충고를 했을 때, 왜그리 귀에 안 들어오던지. 그런데 CD 구매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 아하 이게 또 이런 세계다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취향Y 가입 후 몇년 뒤엔 역으로 워크맨만 고집하는 몇 분들을 보게 되었다. 음악듣기의 묘함이란. 아무튼 이제 '택배 아저씨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심지어 첫 주문은 CD 3장 무료, 다만 1년 사이에 몇장은 의무 구매해야 하는 온라인 사이트도 생겼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당시 CD 구매 사이트의 대표주자는 튜브뮤직이었다. 음악창고도 있었고...


아무튼 어차피 매달 구매하는 앨범이 일정 정도 있으니 사이트 가입해서 첫 주문으로 구매한 무료(아닌 무료) 3장은 조규찬의 [해빙], 자미로꽈이의 [A Funk Odyssey], 인큐버스의 [Make Yourself]였다. 모두 다 처음 구매하는 뮤지션들. 조규찬은 그간은 귀동냥으로 들어온 뮤지션이었고, 자미로꽈이는 하도 소리소문이 좋은 뮤지션이었고(하지만 당시 구매한 이 3장 중 제일 내게 별로였다), 인큐버스는 호기심이었다.(인큐버스를 제일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해빙]을 통해선 조규찬을 파악하기란 힘들었고(당연한 일이겠지), 인큐버스는 이 앨범 덕에 역주행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앨범으론 전작 [S.C.I.E.N.C.E.]가 훵키한 뉴 메탈풍의 넘버들을 담고 있을줄은 몰랐으니까. [120120]

- 22화에 계속 [국내반 이미지 출처 : www.maniadb.co.kr / 사이즈 편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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