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벤 애플렉의 배트맨이 그렇게나 맘에 들지 않는가? 본문
히어로물의 영화화에 대해서 일반 영화팬들이 촉각을 세우게 된 시기는 언제부터였을까. 벤 애플렉의 [맨 오브 스틸] 후속편 캐스팅을 두고 일어난 왈가왈부들을 보아하니 새삼 궁금해졌다. 물론 이런 들썩거림이 작금의 현상만은 아니다.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감독 팀 버튼) 캐스팅도 당시에는 여론의 우려를 낳았고, 니콜라스 케이지판 [수퍼맨](팀 버튼의 프로젝트) 캐스팅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으나 영화의 호평과 더불어 배우의 이미지에 선영향을 끼친 전자의 경우도 있었고 반면에 다행히도(?) 무산되어 역사 속에 사라진 이야기가 된 후자의 경우도 있었다.
이후 헐리우드의 소문난 코믹스 팬이었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게인적 염원(!)이 [고스트 라이더] 시리즈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극장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만이 아는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관람한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릴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은 차마 블루레이로라도 [고스트 라이더]를 여러분의 눈으로 확인하진 마라는 것이다. 차라리 스티븐 도프가 나오는 [블레이드] 1편을 보시라! 이렇듯 히어로물 영화화의 역사는 확실히 영광의 연속이라고 칭하기엔 무리가 있고, 영욕의 역사라 말함이 합당하겠다.
캐스팅이 무슨 죄인가. / 죄가 된 시대가 도래했다.
다시 벤 애플렉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렇다. 히어로물 캐스팅에 대해선 항상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따라 온다. 어울려요 멋져요 라고 반응해주는 경우는 상당히 다행이지만, 대개는 완강한 코믹스팬들의 타박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스폰]의 마이클 제이 화이트의 경우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영화 자체가 블럭버스터 잔치 분위기가 아닌 'B스러움'를 전제로 하고 있었고, 스폰 캐릭터야 얼굴에 철갑 두른양 매번 안티 히어로 거죽 뒤집어쓰고 80분 동안 다녔음 충분했으니 말이다.
이런 가운데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같이 '우려를 딛고' 훌륭히 수행해낸 예시가 탄생하니, 그때부터 캐스팅에 대해서 이런저런 관심과 더불어 이야기들이 따라오게 마련이 되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의 앤드류 가필드가 가진 말쑥한 얼굴에 대해 '루저'의 기운이 도사리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탐탁치 않았던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시대가 그렇게 돼버렸다. 조엘 슈마허가 팀 버튼, 아니 워너브라더스 간부들에게 바톤을 받아 배트맨 캐스팅을 발 킬머로 하다가 조지 클루니로 하다가 우왕좌왕했던 90년대가 더이상 아닌 것이다.
[블레이드]의 웨슬리 스나입스나 [엑스맨], [울버린]에서의 휴 잭맨처럼 기가 막히게 이질감없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물론 휴 잭맨은 원 설정에 비해 키가 상당히 큰 편이다), [수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 같이 반세기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매칭은 캐스팅 담당자 아무에게나 내려지는 복이 아니다. 아 그리고 세상에... 21세기 들어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만 [다크 나이트]로 히어로물 영화화의 위치를 격상시키고야 말았다. 평론가들이 자동반사처럼 놀란의 3부작에 9.11과 월가 문제 같은 현실을 갖다 붙이기 시작햇고, 코믹스팬들은 잭 니콜슨의 조커를 잊고 히스 레저의 무덤에 경의를 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을 통한 성과는 [배트맨 비긴즈] 발탁 이전에 경합(?)을 치루던 후보군들, 가령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배트맨 : 이어 원] 같은 프로젝트들에 대한 미련을 접게 만들었고 워너 간부들에게 [저스티스 리그]를 꿈꿀 수 있는 마법열쇠로 자리잡게 되었다.(하지만 [원더우먼] 프로젝트는 새 코스츔을 발표할 때마다 팬들의 비난을 들어야했고,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 마틴 캠벨 연출의 [그린 랜턴]은 속된 말로 폭망하고 말았다) 마블 진영의 [어벤져스]가 보여준 불꽃 축제와 DC 진영의 놀란 배트맨 3부작이 이룬 작가적 성과는 그야말로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하필 이런 시기에 벤 애플렉은 새 배트맨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니까 놀란 그림자가 문제인 듯 하다.
문제는 놀란의 이름표가 작품의 완성도를 사전에 보장하는 '수표'격으로 시장에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입으로 결정적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언급했음에도, 잭 스나이더 연출의 [맨 오브 스틸]에서 사람들은 애써 놀란식 연출, 놀란식 문제의식, 놀란식 잔영을 확인하려 했고 그게 평가 기준이 되었다. 잭 스나이더라는 이름에 기준점을 맞춘다면 [맨 오브 스틸]은 나쁘지는 않은 작품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에 기준점을 맞춘다면 [맨 오브 스틸]은 앞으로 걱정되는 작품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액션 연출이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인 놀란이지만 이젠 뭔가 프로젝트에 손댄다고 소식이 들리면 이제는 귀추가 주목되는 '입김'의 위치로 격상되었다. 현실이 그렇다. 놀란이 [맨 오브 스틸]의 후속작인 [배트맨 vs 수퍼맨] 제작에 관여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이미 그의 손에 의해 크리스찬 베일이 걸출한 브루스 웨인 캐릭터로 주조된 바 있어 이 작품 역시 '놀란 그림자'의 그늘이 형성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누가 새로운 배트맨을 맡는다고 해도 구설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헨리 카빌(수퍼맨)은 버텼지만, 벤 애플렉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살펴보자. 현재 벤 애플렉의 상승한 입지를 부인하기란 힘들 것이다. 케빈 스미스([점원들], [도그마], [제이 앤 사일런트 밥], [저지 걸] 등)와 친구 먹던 시절이야 '뉴 저지 대표 청춘 바보들'의 일군이었지만, 이제는 어디 그런가. [아르고]로 아카데미 수상 경력을 만든 당당한 연출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코믹스팬들은 브루스 웨인의 어두움과 병리를 표현하기엔 벤 애플렉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듯 하다. 이 부분에서 '연기 고무인간' 크리스찬 베일이 보여준 경지, 놀란의 배트맨 세계관이 축조한 확고함을 코믹스팬들이 재차 상기하는 듯 하다.
못할 거라고 미리 장담하는 이유는 뭘까.
이미 벤 애플렉은 [데어데블]을 통해 히어로물을 경험한 바 있다. 평가는 좋지 않았다. 아마도 배우 개인에게도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을 것이다.(배우자 제니퍼 가너를 만난 인생의 계기는 큰 의미가 있었겠지만) 이런 전력 덕에 1만 8천여명의 사람들이 반대 청원의 지지 서명들을 올린 듯 하다. 보기에 따라선 별 일 아닌 것에 열의를 쏟아붓는다 싶은 일이겠지만, 이런게 팬덤이고 코믹콘 같은 거대한 축제를 벌일 수 있는 대중문화의 저력인 것이다. 무시 못할 일이다. 이런 노이즈가 간부들의 시각에 따라선 마케팅의 일부로 흡수할 수 있겠다 싶어 무릎칠 일 중의 하나고.
그럼에도 벤 애플렉이 어울리지 않는다, 못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온당해 보이진 않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3부작을 통해 만들어낸 고담시와 브루스 웨인은 훌륭했다. 보기에 따라선 완벽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고담시와 브루스 웨인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 한가지의 방법이었을까?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 속 세계관은 '힘을 내보여선 안된다'는 지구인 아버지의 가르침을 '동족을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배반한 이상한 봉합체였다. 어쨌거나 그 곳은 놀란의 세계와 다른 곳이었고, 갈라진 '제작사가 인정한 또다른 정통의 세계관'이다. 잭 스나이더가 결과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후속편 [배트맨 vs 수퍼맨]은 놀란의 비전과 다름을 더욱 확실히 할 것이다.
벤 애플렉은 DC코믹스의 역사 안 배트맨 캐릭터 계보에서 또 한번 이름을 새길 것이다. 마이클 키튼과 크리스찬 베일의 위치만큼 기억되면 좋겠지만, 발 킬머처럼 흐릿해질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장담할 수 없기에 필요 이상의 비난과 우려는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앞으로의 [저스티스 리그] 등의 프로젝트에 연출을 맡는 쪽이 배트맨역 보다는 더 어울리지 않겠냐는 의견도 내보인다. [타운], [아르고]로 보인 연출력 정도는 믿는다는 이야길 것이다. 글쎄? 마크 웹은 [500일의 썸머]로 주목받았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낙점 받았다. 결과는 아직은 절반 정도의 성공이었다. 결국 이게 이거고 저게 저거다 확 등호를 그을 수 만은 없다는게 현실인 듯 하다.
p.s : 이상한 아이러니 - 벤 애플렉은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이라는 흔한(?) 소재를 다룬 영화 [헐리우드랜드]에서 수퍼맨 TV 시리즈의 주연, 즉 수퍼맨을 연기하는 조지 리브스 역으로 분한 바 있다. [1308228]
+ 웹진 다:시 게재 : http://daasi.net/?p=1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