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아시아의 학살자들은 춤을 춘다 : [액트 오브 킬링] 본문
인도네시아엔 안와르 콩고라는 노인네가 있다. 유명한 양반은 아니다. 그래도 자국 내에선 이름이 제법 알려진 모양이다. 일단 그는 손자들에겐 좋은 할아버지다. 다리를 다친 집오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인자함을 지녔다. 지역 외에도 유명한 국가적 영웅이기도 하다. 국영채널 토크쇼에 출연한 그의 함박웃음 가득한 이야길 들은 여성 사회자도 그의 무용담에 이렇게 멘트를 잇는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을 빠르고 인도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고안하셨군요."
안와르 콩고는 1965년 전후에 있었던 자국 내 공산주의자 및 화교 '청소'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이다. 그는 최소 1,000명의 인명을 죽였고, 일의 효율성을 위해 철사로 간략히 생명줄을 끊는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포대에 담은 사체들을 버리기에 바빴던 기억을 말하는 그는 학살의 '추억'을 잊기 위한 여흥과 기억 '청소'를 위한 약물 흡입을 한 이력을 실토하며 허밍과 춤을 곁들인다.
그의 본래 직업은 공무가 아니었다.
안와르 콩고는 군인이 아닌, 당시 헐리우드 상영작을 자주 틀어주던 상영관 앞에서 암표를 거래하던 삐끼 청년이었으며 현재까지도 밀수와 도박, 화교들을 상대로 한 '권리금 걷기' 등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국가적 규모의 자경단 '판차실라 청년회'의 뿌리 격인 어르신이었다. 판차실라(Pancasila)는 인도네시아 불교용어이자 인도네시아의 정치이념을 뜻하는 단어로써 산스크리트 합성어인 셈인데 - 풀어서 말하자면, 다섯가지(판차) 이념(실라)이라 하겠다 - 자경단체의 이름이 되면서 변태적 우경화로 방향을 튼 순혈애국주의의 극단을 보여주게 되었다.
정·재계 유착은 물론이거니와 민간 영역의 착취, 무엇보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로서의 위세를 과시하는 이들은 남성 6명의 정액을 삼킨 여성 농담류로 소일하는 간부 행사 장면 등으로 관객에겐 동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강하게 심어준다.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 그렇다. 안와르 콩고를 포함한 이 학살 역사의 하수인이면서, 육체적 주체였던 이들은 멀지 않는 거리의 아시아 이웃이자 내 모국인 이곳의 근현대사를 끈질기게 환기하게 시킨다.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이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에게 역으로 자신들의 이야길 재현하는 영화화 작업을 제안함으로써 이 다큐만의 개성과 주된 이야기의 틀을 만든다. 그리하여 인도네시아의 풍광과 민속성, 무엇보다 동아시아 헐리우드 키드 일군의 한 조각이었던 안와르 콩고의 영화 취향이 만난 기이한 이야기들이 카메라 안에 담기게 된다. 알 파치노 풍(이라고 안와르가 믿는) 누와르, 서부극, 뮤지컬, 교육받지 못한 엑스트라(시민들)를 동원한 학살 재현극 등의 장치는 가벼운 현기증을 유발한다. 여기엔 자신을 학살해 극락왕생 시켜줘 고맙다는 피해자역 배우에게 금메달을 받는 환상적 연출도 포함돼 있다. (안와르는 이 배우에게 눈을 맞추지 못한다.)
어울리는 짝패들.
안와르에겐 '말 잘 듣는 후배'인 듬직한 체구의 헤르만 코토라는 우군이 있는데, 안와르는 그에게 여전히 동네에 공산주의자들이 있으며 당시였다면 저 녀석의 목도 베었을 것이라 일상어처럼 호언장담한다. 헤르만 코토는 의원직에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그저 화교 상인들을 등쳐먹는 자리에 출석체크를 하는 시정잡배에 불과한 처지다. (판차실라 청년회의 간부급이 아닌 생활인 수만 명은 대개 이런 위치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타는 그의 연기혼은 그들이 만드는 영화 장면 곳곳에 흉물스러운 괴이함을 배가시키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기억될 순간을 남긴다.
실은 이들은 제법 어울리는 짝패들인데, 피해자와 가해자 배역을 교차로 오가는 그들 영화의 작법 안에서 이 둘은 관객의 입장에선 마치 별도의 2인극 배우로 보이기도 한다. 그 괴상한 재미는 불편한 요소들이 한두 군데가 아님에도 이 작품만의 매혹이기도 해 앞으로 이 작품을 대할 이들을 위해 설명을 아끼겠다. 원숭이와 수제로 만든 수제 핏덩어리 주물럭들....
더 중요한 점이 있다면 이 중 안와르는 피해자/가해자 교차 배역을 거듭할수록 자신 안의 최소한의 도덕률에 질문을 던지며 얼굴을 굳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카메라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촬영을 거듭할수록 반성하게 될 것인가? 한낱 원혼과 귀신의 역습이나 두려워하던 토착민 살육자의 육신과 가슴 안에선 역사적 참회를 토로할 씨앗이 심어질까? 과연 이 다큐의 목표는 인본주의일까? 과연 그럴까? 구토의 역사 안에서 한 개인의 구토가 추가될 때 세상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음악 없는 엔딩 크레딧에 익명 스태프들의 이름이 나열될 때 우린 마른 침묵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아시아의 학살자들은 춤을 춘다.
난 구토의 마무리 보다 처음에 자신의 행위를 설명할 때 춤사위를 이어가던 안와르의 모습이 더 상기된다. 반성의 기미가 없었던 영화 시작 지점의 '환한 미소' 상태에 새삼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학살의 하수인이자 육체의 주체였던 개인이 수십년간 역사가 안겨준 죄책감을 누르며 살아온 생의 과정 안에 흥과 노랫가락이 내재될 줄이야. 이것의 아이러니함에 더욱 아연한 것이다. 다시금 이 곳의 근현대사와 겹치며, 이 곳 역사의 한 장 한 장 마다 핏빛 기록을 남긴 가해자들을 떠올린다. 그들도 춤을 추는 방법을 잘 알 것이고, 흥을 돋우며 살았을 것이다. [140416]
+ 이 글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캐릭터, 아디 줄카드리의 굳어서 멈춘 얼굴도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안와르 보다 논리적으로 방어하고 중산층 계급의 수혜를 보다 받은 듯한 그는 반성의 기미조차 보여주지 않지만, 안와르 못지 않게 진심서린 - 그렇게 믿고 싶은 - 순간을 몇군데 보여준다.
+ 인디다큐페스티벌 2014에서 관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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