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안녕, 魔王 #12] 첫 번째, 영국발 안부 편지 - 신해철 『Crom's Techno Works』 본문

음악듣고문장나옴

[안녕, 魔王 #12] 첫 번째, 영국발 안부 편지 - 신해철 『Crom's Techno Works』

trex 2014. 11. 28. 11:07

* 웹진에서 신해철 타계 이후, 추모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링크] 기존 정규 디스코그래피를 비롯, 몇몇 아티클로 구성중이며 나는 그중 3꼭지 정도를 적을 듯 하다. [안녕, 마왕] 운운하는 타이틀은 나도 맘에 안 들지만, 아무튼 시리즈 전체 잘 읽어주시길...



=====


신해철 『Crom's Techno Works』(1998)


“그렇게 무릎이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우면서도 한발 또 한발...“ from 「Letter To Myself」



첫 번째, 영국발 안부 편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라는 말로 밴드 해체 기자회견 후 수많은 음악팬들을 망연하게 만들어놓곤, 영국으로 건너가 두 장짜리 안부 편지를 보낸다. 그것도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와 프로디지(The Prodigy)가 득세하던 씬이 버젓이 존재하던 영국에서 온 일렉트로니카 음반이라니. 웹과 통신의 갑론을박이 이전까진 ‘넥스트 VS 反 넥스트’의 구도였다면, ‘믿는다 신해철 VS 변절자 신해철’의 구도로 바뀌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록/메탈이 차지한 소수 신도의 종교 같은 분위기가 반영된 것일까.) 



하지만 소싯적부터 ‘시퀀스 만지던 아이돌’이었던 신해철에겐 『노땐스』 이후 본작은 이른바 전공 재수강이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으로 구성한 싱글 모음집이자 개인 이력의 재해석본이었다. 훗날 넥스트의 이름으로 발매될 『ReGame』(2006)에 앞서 이런 형식의 첫 시도를 해본 셈이다. 도입부를 여는 「1999」(『내일은 늦으리』, 1992)의 새 버전을 시작으로, 발표 당시 신인 듀오 틱톡(Tick Tock)에게 목소리를 빌렸던 「설레이는 소년처럼」(『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OST, 1993)을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재작업한  「Shy Boy」 등 이른바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까지 차곡차곡 담은 첫 번째 디스크는 흥미롭다. 



「1999」는 밴드 사운드와 테크노 사이의 함량 배분을 고민하던 시절을 잊어도 될 만치 곡의 분위기는 보다 직선적이 되었고, ‘시퀀스 만지는 아이돌’ 시절의 두 대표곡 「Good Bye」와 「Jazz Cafe」는 당시에 표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탐구가 짙어졌다. 『노땐스』에 수록되었던 「Moon Madness」의 경우, 재발굴이라기보다 음산함의 농도가 짙어져 작가의 의도에 더 충실(?)해진 듯했다. 「Letter To Myself」는 원전이 되는 「나에게 쓰는 편지」(『Myself』, 1991)에 ‘나래이션 애호가’ 다운 가사가 배치되어 뭉클함과 간지러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50 Years After」에서 「껍질의 파괴」(『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 1994)의 후렴을 소환해 온 것인데, 어쩌면 이것으로 신해철은 지난 한 시대를 매듭 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국 체류 기간의 가난을 농담처럼 흘리고,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도 능숙한 녹음 작업을 수행하는 게리 무어(Gary Moore)나 영문 사전을 들춰보며 가사를 조합하며 곡 작업을 하는 앙그라(Angra) 같은 음악인들을 ‘현장’에서 본 인상을 토로하는 그의 작업기 또한 넥스트와 다른 방향을 가고 있었다. ‘건국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린 록 밴드의 수장’에서 홈메이킹 작업으로 국외 시장 안에서 한국 국적의 음악인들이 해낼 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한 당시의 신해철에게 훗날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등장은 흐릿하게나마 구상되고 있지 않았을까?



두 번째 디스크의 신곡들이 보여준 일면들도 주목할만하다. 타이틀곡이라 할 수 있을 「일상으로의 초대」는 차가운 사운드 텍스처와 가사 속 온기의 공존으로 이 음악인이 곡 잘 만드는 로맨티스트임을 새삼 확인케 한다. 이 안부 편지 음반 안엔 듣는 이들을 위한 동전의 양면 같은 메시지 역시 공존하고 있는데, “괜찮아요.”라는 격려를 보내는 「It's Alright」 쪽이 앞면이라면, ‘괜찮지’ 못한 세태를 여전한 대작 취향으로 빚어 피력한 「매미의 꿈」 쪽은 뒷면이라 할 수 있겠다. 여전히 신해철은 주제 면에서 개인이 진정 원하는 것을 쥐어야 하는 인생의 당위에 대한 긍정과 고뇌, 반면 이를 억압하며 틀어막는 외부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그의 경력과 몇몇 트랙들에서 이 주제가 이어짐을 예고한다. 



영국발 안부 편지는 이어서 한 장이 더 작성이 될 예정이었다. 보다 심화한 작법으로 그의 이력 중 기억될 한 지점이 될 『Monocrom』이 그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본작의 믹싱을 맡은 음악인이자 모노크롬의 파트너인 크리스 상그리디 Chris Tsangarides와의 인연 또는 악연이 연장되는 셈이다.)





웹진 게재 버전 : http://musicy.kr/?code=review&subp=0101&cidx=&gbn=viewok&sp=&tag=&gp=1&ix=4594 / 별점은 추모 특집이라, 다섯개로 통일하자고 해서 한건데 제 관점에선 3개 반이 적절한 음반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