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16. 1. 6. 12:15

김광석을 추모할 수 있는 더 좋은 문장가들은 많겠지만 아무튼 기회가 닿았습니다. 추모의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이해되길 바랍니다. 제목은 편집부 쪽에서 달았는데, 전 큰 불만은 없습니다. 편집도 잘해주셨고... 오리지널 원고는 하단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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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노래, 기억의 다섯 순간들.


김광석에 대해 적는다는 것은 심호흡이 필요한 일이다.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음반을 통해 첫 세상 밖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알린 후, 살아생전 1,000회가 넘는 무대에 섰으며 1996년 홀연 세상 위 하늘로 발길을 돌린 남자. 그래도 목소리와 서정을 남기며 민들레 홀씨처럼 음악 듣는 이들의 가슴마다 다른 모양의 뿌리를 내리며 기억된 이기에, 어떤 식으로 적어도 흡족한 기록이 되기엔 부족할 것이다. 이 글 역시 그 부족함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세상 수많은 이들 안에서 그의 20주기를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의 하나로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첫 번째, 동물원 <2집 - 동물원 두번째 노래모음>(1988) ‘흐린 하늘 아래 편지를 써’


스트리밍으로 음원 시장의 구도가 개편된 것은 바다 건너 닥터 드레(Dr.Dre) 사장님도 알고 음악 장사도 열심이신 통신사 사장님도 아실 일이지만, 콤팩트 디스크(CD) 세대 이전과 전축으로 LP 듣는 세대 사이엔 ‘영어 회화 공부’를 핑계로 한 카세트테이프 세대가 있었다. 녹음용 카세트테이프로 마음에 드는 FM 방송 주파수를 맞추며 마음에 드는 선곡이 나올라치면 ‘REC’ 버튼을 누르던 카세트 데크 놀이가 익숙한 나이였다. 글 쓰는 이는 당시 라디오 방송용 가요답지 않게 3분 30초의 벽을 넘으며 후반부 코러스가 터지며, 메인 보컬의 목울대가 심상치 않게 울리던 이 노래의 처음 한방에 넋이 나갔었다. 조용필의 ‘모나리자’ 정도 아니면 팝보단 가요가 후지다고 뻗대던 연원 불명의 자존심을 보유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녹음용 카세트테이프 안에 포획했던 이 4분 이상의 곡이 가진 매력은 참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김광석의 목소리를 처음 본격적으로 인식한 당시였다.




두 번째, 김광석 <1집 - 김광석 1> (1989) ‘아스팔트 열기 속으로’


동네 음반 매장에서 2,700 ~ 3,300원이라는 가격대로 학생 용돈으론 무리이던 카세트테이프 구매. 좋은 음반의 조건이란 무릇 “한 곡도 소흘하게 뺄 대목이 없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큰댁 사촌 누나의 방에 있던 음반 라이브러리엔 이 곡이 나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는 이 곡의 원곡은 ‘사랑하기에’라는 발라드곡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이정석의 데뷔반에 실린 수록곡이었다. 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음악인 연석원씨가 작곡/작사를 맡았던 이 곡은 이정석의 음반에 이어 김광석의 목소리로 다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연석원씨는 한국 록 역사의 중요한 이름 중 하나인 밴드 ‘데블스’의 출신이기도 하다) 도심 위의 지글거리는 아스팔트의 열기 안에서 관조적 자세로 자신을 되묻는 청춘의 화자를 내포한 가사는, 내성적인 이정석의 목소리와는 또다른 김광석의 목소리로 다소 외향적으로 표현된다. 한국 가요를 들으며 희미하게나마 서로 간의 관계도를 그려보며 계보를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재미를 느끼던 초입이었다.




세 번째, 김광석 <다시 부르기 1> (1993) - ‘이등병의 편지’


삼수했다는 그 형은 예상대로 학과에 쉽게 적응하진 못했다. 특별히 위축된 부분도 모난 구석도 없었지만, 어느 쪽이 주체이냐를 떠나서 ‘배제’의 규칙이 흐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 어느 날이었다. 성숙의 지표라는 대학생의 나잇대에서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1년이 지나기 전 같은 학번의 남학생 중 가장 먼저 입대를 택한 것은 역시나 그 형이었다. 그러다 형이 첫 군 휴가를 나왔다. 잘해준 적도, 정 한번 제대로 내준 적 없었던 캠퍼스에 형은 그래도 뭐가 좋아 그리워 찾아왔고 그 휴가의 하루를 나와의 시간으로 탕진하였다. 술 한 잔 기울이는 멋조차도 몸이 받아주질 못하는 나와의 시간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래도 한사코 그는 노래방에 가자고 했고 마이크를 직접 들었다. 휴가 나온 사병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가 가진 궁상맞음과 비극 사이의 풍경은 어떻게 듣기에도 마음 편한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그가 편지로도 적어내질 못할 문장이었을,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마음속 광경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이등병의 편지’는 그 알듯도 하고 전혀 모를 듯도 한 수수께끼로 내게 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겨레의 노래> 1집 음반(1990)에 실린 전인권의 목소리 버전도 참으로 좋아한다. 




네 번째,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1995) - ‘변해가네’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시리즈 카세트테이프는 학교 앞 자취방의 스테디셀러였다. 기적 같은 김건모의 ‘백만 장 전설’도 피어나던 시절이었고, 룰라의 엉덩이춤도 있었고 듀스의 마지막 음반도 있었고, 신해철과 넥스트의 이력이 황금시대를 개막하던 때이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김광석은 은밀하고도 진실한 자취촌의 송가였다. 박노해의 시집과 황지우의 실험시 시집이 동시에 놓인 책장, 사적 취향과 젊은 고민이 거미줄처럼 엉킨 어떤 소산의 결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변해가네’는 원래는 동물원의 곡이었다. 기억하겠지만 김광석은 동물원 멤버들과 노선 차이를 실감하며 독립하였고, 이후 살아있는 가객이 되었고 무대의 전설이 되어갔다. 동물원의 키보드를 맡으며 보컬을 맡기도 한 박기영씨의 원곡은 연정의 대상이 생긴 화자가 겪는, 변화의 징후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서툴고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곡이었다. 김광석이 다시 꺼내 들어 부른 ‘변해가네’는 변화의 징후조차도 껴안을 기세의 어떤 씩씩함이 서려 있다. 어떻게 보면 김광석이 생전에 사랑했다는 바이크 같은 기세도 느껴지기도 한다. 이 쾌청한 기세가 반갑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이 유작의 일부라는 생각을 들면 아득한 기분이 되는 것은 한편으론 슬픈 일이다.








다섯 번째, 김광석 <Anthology 1> (2000) - ‘그날들’


이 곡을 위시한 음반의 수록곡들은 그의 동료 음악인들이 같이한 듀엣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고인의 목소리에 현존 가수의 목소리를 겹치는 방식, 이는 음반 녹음 기술의 수혜 탓일 것이다. 김광석과 생전의 관계에 있어 복잡한 심사의 동료였을 안치환의 목소리도 이 곡에 함께 하고 있다. 안치환의 ‘울부짖으며 들끓는 목소리’와 김광석의 예의 그 목소리는 곡 안에서 공명하며 작품이 가진 호소력을 배가하는 데 서로 공헌하고 있다. 이 음반을 선물해준 것은 졸업 후 다시 서울에서 연락하게 된 후배였다. 좋은 선물을 해준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아무튼 어느 순간 그래도 된다고 판단하여 서툰 고백을 뱉었다. 서툰 고백엔 당연히 ‘상대의 거부’가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불을 발을 차게 될 일 하나를 추가하였다. 그렇게 나의 서울생활의 서두 대목은 시작되었다. 공기는 나빴고, 사람들은 좀 더 나빴다. 나도 더불어 그 사이에서 예전보다 조금 나빠진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후배와는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기게 되었고, 그래도 끈질기게 이렇게 추억을 상기할 수 있는 노래와 몇몇 대목이 남아 안도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더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정신무장과 함께, 음악을 남긴 이에게 마음속 인사는 보낼 줄은 알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소양만큼은 견지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다. 



20주기,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 더 많은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1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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