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동주], [박열] : 서로의 결여를 채우며 본문
엔딩 크레디트를 제외하고는 상영 시간을 꽉 채운 흑백 화면과 취급하는 인물에 대한 사적 흐름과 관계없이 작품의 흐름에 꿰맞춰 생전의 윤동주의 시구와 낭독을 깔아주는 연출 등은 소멸한 문예영화의 흐름을 계승하는 듯 보인다. 여기에 보태서 다루는 인물과 이야기 그 자체로 마치 문청들을 위해 준비한 듯한 인물 대비(운동이냐 고결한 예술 정신의 지킴이냐!), 향토와 서슬 퍼런 세상의 대조는 한동안 잃었던 어떤 투명한 영혼을 바라보는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부끄러움, 그렇다 작품 전반이 다루고 있는 윤동주의 마음속 풍경이자 시적 테마의 요체인 그 부끄러움이다. 그 부끄러움의 근본엔 동무가 이룬 성취에 대한 열등이 근원에 자리 잡고 있고, 종내엔 시대 앞에 쟁투해야 할 청춘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고뇌와 파국에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준익은 현명하게 이 상처 입기 쉬운 영혼의 주인공인 윤동주와 동시에 이광수식 계몽과 사회주의 운동 등을 오가며 요동치는 실천을 행해 온 인물 송몽규를 제시하며, 단선적일 수 있는 이야길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극의 설계를 짠다. 마침내 두 인물이 대비되는 행로의 종국에 결국 같은 형무소에서 만나면서도, 끝까지 지장 하나를 찍는 초극의 결단에서 둘이 서로 다른 이였음을 선명히 보여줌으로써 그 비극을 심화시킨다. 매번 주제와 얼개를 들으면 왠지 꺼려지는 이준익 작품이 막상 객석에선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원천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튼 이것은 영리한 연출이다. 정작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차분하고도 진지한 이 문청 취향의 작품이 보여주는 톤의 일부는 예스럽기에 멋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리타분함의 악덕까지 껴안고 있다는 점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솥을 지키고 자식과 부계를 위해 밥을 퍼는 어머니들의 인생을 굳이 피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작품 속 문학청년 옆에 있는 여자들이 가진 창백함은 참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혹독한 세상 속에서도 세상에 분기하여 일어나려는 적극성도 남자의 것이고, 그것과 별개로 곱고 유려한 문장을 지키며 마음의 줄기를 아릿하게 만드는 역할노 남자의 것이니 여성들을 옆에서 감탄하고 지켜봐 주고 응원할 뿐이다. 그것으로 정말 족한 것입니까. [동주]의 도입엔 실제 인물을 이야기하면서도 극적 사항을 제시했음을 알려주는 안내문이 나온다. 그런 묘를 정작 이런 대목에선 발휘하지 않고 그저 문예영화 속 창백한 여성인물들의 관습적인 역할을 배치하는 것으로만 만족해 보인다.
[박열]의 도입부는 [동주]와 달리 실제 인물을 이야기함은 물론 고증에 충실했음을 알리는 안내문이 나온다. 그 결과 극 안엔 놀라운 인물이 배치되는데, 그것은 최희서가 맡은 후미코의 역할이다. 최희서는 앞선 작품 [동주]에서 내가 거론한 그 ‘창백한 여성인물’ 중 하나로 출연한 배우다. 그가 보여준 대목들은 하나같이 강렬한데 후미코라는 실존 인물이 가진 서사가 가진 ‘극적’인 면모와 더불어 배우 최희서라는 인물이 지닌 역량의 덕이라는 말 외엔 설명할 것이 없다. 단순한 항일 항거의 의미를 넘어서 한 명의 아나키스트로서 근대 사회 열망과 천황 부정을 부르짖었던 박열이라는 인물이 당연히 극의 중심이자 마케팅상의 포인트이긴 하나, 작품을 본 이들이라면 단순한 동거인 또는 동참 정도의 동무가 아닌 후미코는 그 자체로 전근대 부정의 주체성을 지닌 인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박열]은 [동주]가 지닌 결여를 마저 채우게 되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제목의 2음절을 차지한 박열 이상의 후미코라는 인물을 제목에 배치하고픈 욕구를 만들게 한다. 인물의 승리, 숨겨진 역사 한 켠의 승리이기도 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는 실패이기도 하다. 영화는 법정 영화로써의 면면을 후반부에 갖추게 되지만 좋은 법정 영화는 되지 못한다. 물론 이는 이 무대가 된 법정의 ‘실패’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매혹적인 남녀의 이야기가 가진 극적인 면모는 실제 역사를 만나 결국 매혹을 이어가지 못했다. 현대사와 인간의 역사가 가진 생리 자체가 그러하다 이해할 뿐이다. 무엇보다 어쨌거나 [박열]은 성격이 다른 [동주]가 흑백 화면으로 보여주는 ‘별 헤는 밤’의 침묵과 아득함을 재현해.... 낼 필요가 애초에 없으므로 그러질 못한다. 서로 그렇게 다른 영화는 서로의 결여를 채워줄 뿐이다. 매반 판단 유보인 이준익의 연출의 성격이 내게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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