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19. 9. 21. 23:56

작품에서 이야기하듯이 1994년 여름, 김일성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폭염이 왔다. 여기서 정지될 사적인 94년의 기억인데 [벌새]의 중반부 이후엔 한국의 역사가 기록할 침통할 기록이 하나 더 추가된다. 그 사건으로 인해 밴드 넥스트가 94년에 발매한 음반, Being은 이듬해, 95년 음반 World의 수록곡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로 확장된다. 사적인 역사의 기록에 대한 나의 감상은 이렇게 추가되었다. 강렬했던 시대였다. 이 참혹한 일들에 결부된 이들에겐 지금도 잊기 힘든 멍을 남겼을 것이다. 

[벌새]는 여기에 대해 공론을 위한 분노 촉발이나 구슬픈 진혼곡의 메들리를 하는 대신, 당시 한 중학생의 시선과 여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주인공 은희는 세상과 외부의 관심과 보듬을 요하며, 지속적으로 호흡하고 관망한다. 그런 은희를 보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차분하고 끈기를 가진 자세로 임한다. 그 관망과 관찰이 결실을 보여주는 마무리가 주는 참으로 말 못 할 감정들을 안겨준다. 이렇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이 차분한 인내는 작품의 미덕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그들이 서로 연루되고, 만들어내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이야기의 질감을 두텁게 만든다.

멍한 표정으로 인내하며 살아가는 엄마 안의 에너지와 알 수 없는 속내, 응축된 감정을 뭉친 실타래처럼 안고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언니, 결코  잠자코 살아가는 것만은 삶의 본질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한문 선생님, 주인공 은희 안에 인연과 한 시절의 사랑이 가진 감정의 편린을 알려주는 주변 사람들 모두 질감을 가지고 생동감을 보여준다. 그것이 [응답하라] 시절과 다른 세상을 비춰준다. 그리고 조의를 표하고 진혼곡을 작사하는 역할 대신 비균질적인 삶 안에 관망과 더불어 한국영화라는 매체가 그간 상실했던 성숙의 지표를 다시금 재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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