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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의 [부부의 세계]

trex 2020. 5. 19. 12:02

부부의 세계를 절반 분량만 시청하였다. 잔잔한 정도라 아니라 '매운맛' 덕에 여러 시청자를 끌어 들었을 시기를 이미 지난 후 7화 이후가 나의 시청 시점이라고 기억한다. 치정극은 SBS가 잘 나간 시절부터 시청자들의 속된 욕구를 채워주는 효자 드라마 소재였는데, JTBC는 아예 영국 드라마의 판권을 구매 후 가져와 씨 육수 잘 쓴 국밥처럼 잘 끓여 출시했다. 흔히들 영드 하면 가지고 있을 고정 이미지, 냉소와 쓴맛 유머의 맛을 깬 것도 인상적이었다. [부부의 세계]엔 비정함과 냉기만큼이나 높은 고열과 매화 펄펄 데운 가마솥 온도가 공존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요. 치정 이야기하는데 차분하고 낮은 온도의 이성보다는 <원초적 본능>의 얼음 깨기용 송곳과 식기 직전의 피의 온도가 차라리 어울리지도요.

아무튼 부부의 세계는 시청자들이 선택한 주말의 매운 맛이었고, 코로나-19 정국이 낳은 '집에서 편히 영상 매체나 보세요' 세태가 맞물린 효능 좋은 오락이었다 나 역시 여자 친구의 추천으로 합류하였고, 예상대로 여느 치정극이 그렇듯 등장인물들의 갈등구조는 한 회만에 쉽게 파악되었다. 오손도손 오가 가는 침대 송사는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였고, 그 덕에 명품 사줄 물주 구하는 자기 존중의 결핍 상태를 욕망씩이나 치장해 표현하는 캐릭터 등은 입속 나의 혀를 열심히 울직였다 (발로 차, 혀를 차. 위 아 더 챔피언) 간혹 한국식 시의성을 반영한 '여자에게 손찌껌 하다 응징당하는 한남'의 등장이 긴장감 양념을 넣다가, 일순 사망으로 퇴장하여 갸우뚱을 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갸우뚱은 [하이에나] 시청 때 매회 반복되던 것이라 그냥 넘어갈 수는 있었다.

다른 이들에겐 그 의미가 크진 않겠지만 내게 부부의 세계가 남긴 인상은 [스카이캐슬]과의 크로스오버할만한 가능성의 에너지였다. '칼로 물 베기'라는 달갑지 않은 관용구로 표상하던, 한국식 부부 갈등의 변주보다는 지리멸렬한 '내 새끼 키우기'의 고단함이 이 드라마의 더 강한 주제로 보였다. 더 군다나 무대가 된 가상의 수도권 신도시 '고산 시'의 풍경은 [스카이캐슬]이 매회 표 나게 보여주던 신도시 중산층의 욕망과 이합을 반복하는 듯 보였다. 열심히 뒷 이야기를 털고, 앞에서도 공격적 언사를 교양의 물엿을 바르며 말하는 화법은 어쩌면 JTBC가 다른 방송국보다 앞서는 신도시 월드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관계의 회복 보단 당장엔 집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은 [스카이캐슬]에 이어 주요 인물의 병세를 짐작케 하는, 이른바 문제의 요체 '모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확연한 계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로 봉준호의 [마더]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때론 내가 평생 동안 가질 일도 없거니와 가지고 싶은 생각을 접은  '자식 걱정'이라는 한국식 기이한 마음. 방송국은 이 기이한 마음에 대한 삼부작을 완성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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