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20. 10. 4. 21:29

한때, 홍상수의 작품 목록에 대해 이 나라 에로 영상물 사업자들의 선호가 뚜렷했던 불편한 시절이 있었다. 불륜이라는 흔한 제재와 술자리와 원나잇으로 이어지는 돌발적 상황이 그들의 말초신경과 사업적 본능을 자극했던 듯하다. [생활의 발견], [극장전], [오! 수정] 속의 노출과 성애 장면이 던져준 영감은 영상물 사업자들의 인용과 패러디 욕구를 건드렸던 것이다.([오! 수정]의 경우는 처녀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이들의 페로몬을 급기야 폭파시켰던 모양. 언급도 부끄러운 타이틀들이 한때 양산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먼 과거를 거치고 오니 [도망친 여자]에선 어떤 분명한 변화는 보인다. 나 혼자만의 짐작이지만 '어쨌거나' 페미니즘이 홍상수에게도 변화의 지점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 표현으로 인해 이땅의 수많은 잠재적 여성 혐오자들의 우려하진 마시라. 너희들은 그런 우려와 달리 홍상수조차도 정치적 올바름에 물들거나 탈피의 완성은 오지 않았다. 여전히 자기 방식 영화 만들기를 좋아하는 이 아저씨의 기조는 여전하다. 반복과 변주의 선율과 리듬이 흐르는 음악으로써의 영화 언어는 여전하고, 매번 워프로 소환된 듯한 익숙한 얼굴의 출연진은 튼튼히 버티고 있다.

그런데 가해자와 뭔가 사과할 일이 있는 당당하지 못한 작품 속 남자들은 매번 뒷모습이 정면보다 더 중요했고, CCTV 속 흐릿한 여성들은 포옹하고 위로한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본 홍상수 작품 속 양성의 입장을 달리 보이게 했다. 여성의 경우엔 여러 짐작 가는 정황과도 별개로 때론 GL 또는 연대의 순간으로 보였다.  그늘에 존재해야 하는 남자들과 여러 입장과 대사의 상황을 서로 퍼즐처럼 조각을 나누고 조합해야 하는 여자들 이야기.

그중 김민희의 존재는 단연 압도적이다. '도망친' 행위의 어떤 짐작되는 분명한 이유를 비밀처럼 품고 있는 김민희는 여기서 아이 같은 천연함과 상실한 청춘의 흔적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데, 대체를 상상하기 힘들 수준의 완성된 캐릭터다. 이 캐릭터의 탄생에 어떤 개인 정황이 연관되어 있겠지만 이런 것에 말초적 호기심을 발설할 필요는 없겠다. 상실의 결과물로 보이는 작품 속 표 나는 탐식의 과정, 여기저기를 오가는 행보가 보여주는 불안감은 작품을 내내 만드는 공기를 보여준다. 그것의 마무리가 당도하는 에무 시네마 속 '말 그대로의' 영화적 공간은 분명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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