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스펜서] 본문
[퍼스널 쇼퍼]를 선택해서 봤던 당시는 [스펜서]가 개봉할 당시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필모를 챙겨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가만히 있던 로버트 패틴슨의 근작 [더 배트맨]의 개봉 시점에 [굿타임]을 봤던 것도 이런 생각의 갈래 덕이었다. 모든 것의 이유였던 [스펜서]를 이제야 볼 수 있었다. 나탈리 포트먼이 출연했던 [재키]에 이어 파블로 라라인의 2번째 여성 실존인물에 대한 팩션이다. 그가 연출했던 [네루다]와 달리 역시나 [재키]에 이어 다이애나 스펜서의 인생 한 챕터를 말했다는 점에서 여성과 그를 둘러싼 삶과 결의 예민한 톤을 말하는 익숙함을 이번에도 보여준다.
실상 우린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익히 알기에 작품이 시작하는 시점부터 작품 속 등장인물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이 쓰이고, 그의 첫째 아들의 심성과 언어에도 눈길이 간다. 이런 나 같은 어리석은 관객에게 감독이 말하는 화법은 의외의 것이다. 스캔들에 대한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묘한 톤으로 전기물로서의 극과는 다른 서사를 택한다. 조니 그린우드가 만든 블래식 풍 실내악이 흐르며 고저를 통해 서로 간의 다른 레이어를 형성하는 현악, 한편으론 스펜서의 온전하지 못한 정신의 균열을 표현한 듯한 관악의 흔들리는 사운드는 예의 기묘하다. 이번에도 조니 그린우드의 역량은 빛이 나는데, 파블로 라라인의 연출 역시 슬픔과 추모라는 예상하기 쉬운 감정 하나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이를 받춰주는 주된 역할은 연기 잘하는 민족의 대영 제국의 위엄이라고 해야 하나. 티모시 스폴, 샘 해리스, 샐리 호킨스 등의 연기자들의 몫이다. 그들은 실존 여부를 떠나 스펜서를 억압하던 왕실의 무게를 대변한 존재들처럼 시시때때로 등장했다가 다시 등장하며 스펜서의 온전하지 못한 상황을 짐작케 한다. 그저 '재미'의 이유로 이어오던 왕실의 체중 재기 전통, 스펜서의 인생 한 시기를 괴롭힌 섭식 장애, 무엇보다 남편과의 골 깊은 불화, 파파라치 언론의 존재와 체면의 명분으로 한 개인을 억누르는 왕실로 인한 갈등 등은 단순한 해법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의 총화를 대변하는 윈저가 왕실의 샌드링엄 영지의 앤 블린의 유령 같은 장치는 이런 식의 환상이 아니면 서사가 힘들다는 입장을 보여주는 듯.
유년기의 좋았던 시기를 말하는 허수아비에 대한 애착, 스펜서 자신에 대입할 수 밖에 없는 사냥 대상의 '풀어놓은 꿩'의 존재 등은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공감이나 해독을 요구한다. 이 갑갑하고 잔혹한 서사는 다행히도 극의 마지막에 어쨌거나 완결의 숨통을 마련한다. 꿩 사냥을 거부하는 자제들을 위한 KFC 드라이브 스루 대목은 고인을 위한 '가상의 시간'으로 마련한 위안 같아 보이기도 하다. 불가능했던 해방, 그 잠시나마의 숨통을 마련한 장치로 읽힌다. 엘튼 존의 노래를 다시 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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