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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매튜 본 감독이 [킥 애스] 1편 이후 [퍼스트 클래스]를 손댔을 때 이렇게 확 저지르고 싶은 것을 애써 프랜차이즈 고려해서 참은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이런게 하고 싶었으면 교회에서 사람들을 묵사발을 만들고 고위층들의 목을 터트리면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오만 정성을 들였겠나. 거의 그 기세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히틀러 얼굴을 걸레로 만들던 타란티노의 기세에 못지 않다. 그럼에도 첩보물 비틀기를 하겠답시고, 공주 엉덩이를 카메라를 비춰줄 때는 영화에 들던 오만정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느껴졌다. 하 하 하.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학창 시절엔 개체별로 계층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인기있는 아이, 장악력 있는 아이, 존재감 없는 아이, 이 수많은 아이들을 학급으로 분류하고 학년으로 분류하는데 어찌 작고 큰 소동이 없을수가 있겠는가. 계층의 상위에 있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을 그만두고 등교를 거부하는 일조차도 몇 학급과 몇 동아리부서를 흔드는 격동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그 영향력과 아무 관련없는 소집단 조용한 아이들에게조차도. 격랑이 지나가면 남은 것은 영화 매체에 대한 불확실한 애정, 그럼에도 뚜렷하게 하고 싶은걸 해야지 않겠냐는 영화 속 어조다. 모든게 뚜렷하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다고, 그래도 되는 나이고 그럴 수 있는 시기라는 토닥거림의 격려.
지아 장 커의 본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무협의 쾌감(?)을 스며들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첫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폭발의 쾌감, 그래 어떤 면에선 서부극의 말미도 담아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가족을 저버린 은둔 무협고수의 이야기로 번안해서 보일수도 있겠다. 세번째 에피소드의 돌변함은 지나치게 무협의 광경을 재현하려는 몸짓 덕에 되려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네번째 에피소드가 제일 무협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어떤 의미에선 '연장' 즉, 연장을 일종의 절대 무기나 비기로 변주해 생각한다면 절대 비기를 습득한 주인공이 선택한 마지막 길이 돌연 파국이라는 점에서 아주 많이 비튼 변주랄까? 무협의 쾌감을 변주했다고 말하기엔 [천주정]에서 보여주는 참극들은 무겁다. 소녀는 홍콩과 타이완에서 온 남..
뜻하지 않은 대목에서 눈물이 한 줄기 새어나왔다. 차가운 연출, 스코틀랜드의 시린 풍광, 자신의 일들에게 퀭하니 집중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교류하는 언어인지 배경을 채우는 잡스러운 소음인지 관객의 서정을 건드리려는 음인지 알 수 없는 교란의 배경음악이 가라앉게 만든다. 그렇게 진행되던 극에서 예상치 못하게 (반)인간적인 대목을 접하고 상처가 벌어지듯 시큰하고 찌릿해졌다. 정작 신체강탈(유도)자로서의 스칼렛 요한슨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이 뭔가 장르 교과서 법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눈물은 더 나오지 않았다. 뒤를 기다리는 광경은 인간의 모습을 띈 신체강탈자가 취하는 우리 입장에서의 낯선 모습, 신체강탈자가 바라보는 그쪽 입장의 인간 행동양상과 자연의 낯섬들. 게다가 상대방을 만지고 육체간의 다름..
두리반 강제철거 집행 후 531일간의 기록. 투쟁이었음은 자명하였으나 누군가에겐 새로운 유희와 문화의 가능성이기도 했다. 아니 투쟁과 희생, 참사, 심지어는 망각의 일로 덮어질뻔한 사태를 두고 벌어진 작은 기적의 발화. 당시 홍대 부근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안에서 문화와 자본 사이의 질식을 예감한 자립 문화 개체들로 인해 가능하였다. 유희는 확산되었고, 잔치는 확대되었고, 영향력은 생각보다 지대해졌다. 그 과정의 기록이면서도 한편 뭉클했던 지점은 가장 중요한 일이 끝나고 난 뒤, 비슷한 사안에 대해 이들이 느꼈던 괴리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짚고 넘어갔다는 점. 사회적 개체로서의 책무감과 현장의 공기, 음악인 자신으로서의 즐거움의 팽팽한 갈등 안에서 이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간다. 분명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
한 남자가 있어. 그는 미국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며 자본과 명예의 금맥을 캐온 집안의 후손이지. 그의 사유지는 그야말로 그만의 궁전이야. 하지만 그것으로 완벽하진 않아. 그는 조류학자이자 우표수집가이자 자본가인데, 가문의 영광을 계승할 감투를 더 가지고 싶어해. 그것은 부재한 아버지의 이름, 누군가의 영웅,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인정받을 그 무엇이야. 어머닌 값비싼 말을 사랑하셔. 영광스러운 수상의 기록들은 집을 장식하고 있지. 남자는 그에 못지 않은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해. 그런 그에게 눈에 띈 것이 레슬링이지. 미국도 1980년대는 묵직하고 음울했나봐. 가난한 자에겐 언제나 그렇듯 더더욱. 남자는 부를 미끼로 미국 레슬링을 건재시킬 아버지의 역할을 자임하고 싶어해. 어머니에겐 넓을 사유지를 뛰어다닐..
경이로운 카메라의 움직임이 잠언을 연상케하는 나래이션 이후, 과시적이지 않게 잠잠하게 유영한다. 가혹하게 거친 바람이 부는 마른 대지, 약한 불과 나무 토막에 의지하는 부녀가 있다. 멸망의 위기 이후의 광경, 또는 멸망을 목전에 둔 징조/징후가 속속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집요한 롱테이크, 종교적인 침묵은 같은 행위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서서히 쇠약해져 가는 말의 체력이 넌지시 암울한 비전을 암시하기 시작한다. 행위는 중첩될수록 변주되며 세상이 잘못 되었음을 말하는 방문자들은 싸움, 미국 같은 단어를 흘리며 창세기/말세기의 비유로써 본작의 이야기를 고민하게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말, 하룻밤새 말라버린 우물, 불이 지펴지지 않는 기름, 하루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6일째 비통한 파국으로 치닫으며 직전까지는..
영화 시간을 상회하는 정성일 평론가와 장률 감독의 GV까지 가고야 말았다. 내 엉덩이와 허리... 피곤하다가도 논조에 동의를 하느냐마느냐를 떠나서 정말 정성일의 집요함과 말하기 자체가 글쓰기가 되는 서사는 놀라운 부분이 있다. 탄복하고 나왔다. 물론 무덤을 무듬으로 발음하는 느릿한 장률 감독의 성실한 답변 등도 좋았고. 물론 풀리는 부분보다 풀리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았다. 평론가나 감독이나 영화가 미로임을 인정한 듯 하다. 영화에 대해선 내가 오해한 듯 했다. 나는 영화가 비교적 친절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아찔했다. 도처에 의심이 들었다. 박해일은 원혼이었을까. 그만이 홀로 원혼으로서 경주 곳곳을 유영하고 있었던걸까. 반대로 박해일이 만난 이들이 원혼이었을까. 현실과 이현실의 구분은 생각보다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