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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이창동의 [시] 도입부엔 물가에 여학생의 사체가 소리없이 떠내려온다. (이창동의 영화 [오아시스]에서 문소리가 맡은 배역 이름도 한공주이다.) 봉준호의 [마더]엔 주택가 옥상에 널린 여학생의 사체가 발견된다. ([한공주]의 두 배우 천우희와 정인선은 봉준호의 작품에 한번씩 출연한 적이 있다.) 이 두 사체는 사체이기에 스스로를 호명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없다. 이창동은 망가진 세상에서 예술이 인간을 구원을 할 수나 있는지 되묻고, 봉준호는 모성이 세상에 대해 근심도 하지만 세상의 질문을 갈아엎는 흉악하고 기이한 원시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공주는 널부러져 있거나 말 없이 물에 떠내려 오지 않는다. 되려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 하고 악귀 같은 세상에서 '딱 25미터'만 자유롭게 침잠하고픈 자유..
- 스포일러 - 유령처럼 따라붙는 비교의 대상은 여전히 샘 레이미의 3부작이다. 그래서 마크 엡의 피터 파커는 우연찮게도 샘 레이미의 피터 파커처럼 [싱 잉 인더 레인] 흉내를 내기도 한다. 반면 마크 웹의 버전에선 '데일리 버글'이란 그저 대사로 호명되는 배경일 뿐이다. 물론 마크 웹의 강점은 여전하다. 그웬 스테이시와의 옥신각신은 뭔가 울퉁불퉁하게 보이지만, 실은 연인들이 완전히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상태에서 저렇게 표류하는 언어들을 뽑아내다 제풀에 지치고 다시 회복하고 그런다. 그렇게 두 남녀는 코믹스의 한 모티브를 향해 비극의 아가리로 힘껏 달려가는 것이다. 이 연애담이라는 축에 피터 파커는 삼촌의 교훈 - 하지만, 2편은 이것을 복기하지 않는다 -을 새기고, 이젠 고인이 된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
인도네시아엔 안와르 콩고라는 노인네가 있다. 유명한 양반은 아니다. 그래도 자국 내에선 이름이 제법 알려진 모양이다. 일단 그는 손자들에겐 좋은 할아버지다. 다리를 다친 집오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인자함을 지녔다. 지역 외에도 유명한 국가적 영웅이기도 하다. 국영채널 토크쇼에 출연한 그의 함박웃음 가득한 이야길 들은 여성 사회자도 그의 무용담에 이렇게 멘트를 잇는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을 빠르고 인도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고안하셨군요." 안와르 콩고는 1965년 전후에 있었던 자국 내 공산주의자 및 화교 '청소'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이다. 그는 최소 1,000명의 인명을 죽였고, 일의 효율성을 위해 철사로 간략히 생명줄을 끊는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포대에 ..
- 최근작들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 [어벤져스]의 스틸컷을 새삼 다시 본다. 링크를 보라. 로키의 창을 회수한 것은 블랙 위도우였다. 바론 본 스트러커가 [윈터 솔져]의 쿠키에서 로키의 창을 획득한 상태라는 것은 익히 짐작되는 사실이지만 쉴드의 이면 자체가 히드라 군단이었으며, 쉴드 연구소의 업적들 상당수는 이미 히드라 잔당에게 흡수되었음을 말한다. 블랙 위도우는 로키의 창을 쉴드에 반환하였고, 불행하게도 쉴드는 이 창을 히드라의 잔당들이 상당간 영향을 끼치는 쉴드 연구소에 보관하였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엔 로키가 등장하지 않지만, - 우주 세계관의 이야긴 [가디언스 오브 더 갤럭시]에서 진행할 참이고 - 로키가 벌인 일들은 어쨌거나 2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물론 [어벤져스 ..
1기를 지나 어벤져스 사가의 2기를 완료 지으려는 마블에게 있어 지상과제는 1기 시절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게 아닐까. 어벤져스라는 마무리 프로젝트를 위해 떡밥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떡밥에 개별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함몰시키지 않기. 그려면서도 어벤져스는 마무리 프로젝트의 매혹에 포섭되게 흡수력 있는 설정으로 장식 하기.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는 그런 면에서는 꽤 괜찮은 작품이다. 1편에 비해 격투 안무가 눈에 띄게 잘 짜여져 개선되었고, 시리즈의 줄기이면서도 [어벤져스] 1편의 액션에 도전장을 내려는 듯 연신 도심 속으로 펑펑 효과적으로 터트린다. '뉴욕 사태'는 토니 스타크에게는 불면증을 주었고, 쉴드에겐 세계의 위기를 선재 방호할 좋은 핑계를 선사하였다. 세계의 위기에 대해 윤리적으로 대..
영화 매체가 매체 자체가 지닌 고유한 역사의 장점으로 예술과 인간의 기억을 설파하고 설득시킨게 한두 예시는 아니었지만, 웨스 앤더슨이 실력을 발휘하니 무섭도록 아름답고 충만하다. 이 아름다움에 고작 '아트버스터'라는 조어 따위를 쓰는 마케팅이라니. 쯧쯧.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노아]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광경보다 SF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의상과 인간들의 문명 수준, 그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신경증적으로 집착하는 감독다운 주인공의 발상들이 그랬다. 무엇보다 감독이 그려내는 창세기는 하나의 원전 보다는 근간의 상상력을 다이제스트화 해낸 모습이라 흥미로웠다.(아무튼 창조론 같은 발상 따윈 없다) 덕분에 알렉스 프로야스의 [노잉]에 나온 말세기적 비전,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에 묘사된 기원, 테렌스 멜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에 나온 고즈넉한 무게감(과 뜻하지 않은 교과서적인 풍경) 등을 상기하게 되었다. 영화는 결론을 얻은 마지막 부분보다 인간 혐오에 부글대는 중반부가 훨씬 흥미로웠다. 이토록 돈을 쏟아붓고도 당당하게 인간..
활기 넘치는 성격과 미모를 자신에게 물려준 것이 틀림없는 매혹의 어머니. 하지만 자신의 유년기에 세상을 등진, 사연모를 미스테리의 어머니. 그 이끌림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게다가 자신이 재능있는 연기자이자 연출자라면 이런저런 수단을 동원하여 인생의 미스테리와 미처 알지 못한 모정의 매혹을 파헤칠 수 있으리라. 사라 폴리는 기끼어 그 길을 택했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의 매력은 이것이 다큐로써 어떤 속임수를 썼는지에 대해 애교스럽게 양심선언을 하고, 이 다큐가 첫 단추에선 제법 표류했음을 토로하는 대목들에서 나온다.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기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대기엔 주저되는 가족들에게 차분한 자세로 다가가는 사라 폴리의 연출력, 잔혹하게 보일수도 있을 진실을 대면하는 대범함 등 미덕이 많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