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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한국 제명은 참 거지 같다. 이제 론 하워드는 '뭘 만들어도 잘 만드는 클럽'에 가입한 듯 하다. '뭘 만들어도 잘 만드는 클럽'의 구성원은 리들리 스콧, 데이빗 핀처 등이다.(내가 맘대로 만든 클럽이다) 마이클 베이가 형님으로 모셔야 할 듯한 촬영과 무엇보다 편집이 좋다. 차량의 몸짓들이 일으키는 서스펜스 보다는 운전하는 이의 심상과 시선 안으로 들어가 파장과 격동을 만들어낸다. 실제로도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는 둘도 없는 라이벌이었지만, 이야기의 뚜렷한 대비를 위해 캐릭터를 선명하게 구분하였다. 가령 니키 라우다는 자동차 공학에 밝고 늦게 뛰어들었지만 노력으로 부각된 천재형 캐릭터, 제임스 헌트는 겁많은 야수이자 결혼과 이혼의 상흔으로 인한 섹스 머신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육체적 캐릭터로 구분되었..
김윤석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처럼 아들 앞의 아버지라는 괴물을 맡았다. 사실상 아버지라는 역할은 다섯 배우에게 나눠져 있으나 균등하지는 않다. 우리는 결국 이 이야기의 결말이 괴물 아들과 괴물 아버지의 대결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전반적인 작품의 색채와 어긋난 듯한 묘한 개그, 간혹 터져나오는 여과없는 충동적 폭력씬들, 그 가운데 인물들을 쓸어주는 온정의 손길까지. 장준환이 아무튼 10년만에 돌아왔다. 여진구의 뒷 모습을 보며 자꾸만 이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 쿠키가 있다.
어느 시절 투니버스 심야에 방영하던 [별의 목소리]를 우연히 시청하고 눈물을 흘렸다. 거기에도 서로간의 대화, 언어가 많았다. 그것이 타임 패러독스를 뛰어넘으며 서로간의 교감을 만들고 두 남녀의 시간 속에 쌓여갔다. [언어의 정원]은 [초속 5센티미터]의 세계관 안에서 언어를 쌓아가는 지구인 두 남녀의 이야기다. 기술적인 성취는 이젠 흠을 잡기가 힘들어졌다. 3D와 셀화가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고 - 사실 어느 정도 경계는 분명이 보였지만, 모른 척 해줄 수 있을 정도 - 도심과 철컹이는 전철, 무엇보다 대지를 적시는 수많은 빗방울들은 감동적이다. 차분한 어조로 서로간의 감정선에 파장을 일으키는 남녀의 이야기가 쌓여가는데, 종극엔 사랑 바보들이 되어설라무네...으하하...이것 참. 여성 캐릭터들을 그려내는..
세 남자들은 선희라는 이름의 회전문을 통과한다. 같은 문, 같은 손잡이를 잡으며 비슷한 인상과 규정의 문장을 말하지만 그들은 뱅글뱅글 돌 뿐, 한 사람의 안팎을 잡지 못한 채 미끄러져 갈 뿐이다. 유연하게 미끄러져 가는 선희의 발걸음이 해원의 발걸음처럼 비극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좋았고, 몸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의 기운 보다 낙엽이 수북한 늦가을의 풍경이라 좋았다.
이 듀오는 어떤 계기로 [몬스터 주식회사] 최강의 팀이 되었나에 대한 기원을 살펴본다. 그런데 그게 궁금한가?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처럼 이번 작품 역시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당시의 픽사를 재현하진 못하다. 도대체 아빠 생선이 아들 생선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도대체 쥐가 요리를 하는 이야기가 뭐가 재밌을까 싶은 관객들에게 혼을 쏙 빼는 재미를 주던 당시의 픽사 말이다. 물론 꼬마부터 대학생인 마이크 와조스키는 걸출하게 귀여운 캐릭터고, 존 굿맨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설리반의 모습도 반갑다. 그럼에도 전작이 준 온기의 수치에도 닿진 못하고, 심지어 본편 이전의 단편 [파란 우산]조차도 다소 싱거워 보인다. [몬스터 대학교]는 여전히 재미있는 픽사의 작품이지만, 그 자체로만 만족하는건 아닌가..
여전히 아름답고 섬세하다. 비행에 대한 환상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아예 백일몽처럼 현실과 겹쳐버린다. 여기에 지속적으로 "살아라. 당신은 살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쯤되면 은퇴선언이 허언이 아닌거 같다. 아주 작정하고 만들어서 던져 보이는 듯 하다. 그럼에도 가슴저림을 목표로 한 듯한 헌신적인 순애보도, 비행기체에 대한 열의와 전쟁 시대 사이의 번민도 부족하다. 역사적 사실 보다는 유럽풍 풍경에 대한 경도에 더욱 공을 들인 탓인지, 지진의 묘사나 시대 속 사람을 그린 정성이 와닿지 않는다.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공인된 은퇴작으로선 쌉쌀한 기억으로 남을 듯.
애쉬튼 커처의 잡스 흉내는 연기라기보다는 예능의 범주 같이 보인다. 특유의 걸음걸이, 목소리를 훌륭하게 흉내내기는 하지만 한 인물의 재현으로 보이진 않는다. 물론 애쉬튼 커처의 노력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를 뒷받침할만한 이야기의 두께 문제인 듯 하다. 물론 인상적인 대목은 다 보여준다. 약하는 젊은 잡스, 딸의 친부임을 거부하는 개새끼 잡스, 쫓겨나는 잡스, 복귀하는 잡스... 좋은 대목도 몇 개는 있다. 매킨토시 프로젝트 시작 대목은 제법 힘이 있다. 별로인 대목도 산재해 있다. 조너선 아이브와의 첫 대면은 생각보단 덜 뭉클하다. 좋은 장면이라기 보다는 더 좋은 장면으로 연출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실현되지 않아 안타까워지는 대목들이다. 극의 흐름을 위해서 과감히 쳐낸 대목들, 가령 픽사 시절 이야기는 언..
닐 블롬캠프는 계급 문제 보다 사실 이젠 [기어스 오브 워]나 [헤일로] 같은 비디오 게임 대작의 영화화에 더욱 어울리는 인물이 되는 듯 하다. [디스트릭트9]에서 요하네스버그의 비유로 SF를 끌어 들였을 때는 탁월했다. 이젠 의료복지라는 보편적 문제로 끌고 오지만, 해결책은 편안하다. 그저 해방의 쾌감, 주인공의 고된 희생이라는 인상적인 두 줄만을 긋는다. 여전히 기계 덩어리들이 파편을 흘리고, 인간의 육편이 여기저기 튀는 장면에는 탁월하다. 이젠 이 길로 가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수려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게토의 척박함을 묘사하는 장면도 여전히 탁월하다. 이번 작품 덕에 헐리우드에서 더욱 안전한 감독으로 안착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벚꽃과 사무라이의 검이 빛나는 장면의 취향은 알 도리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