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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원인모를 일에 의해 삶의 근간을 모두 뺏긴, 얼마 남지 않은 인류. 그런데 이런 위기 상황에서 종족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겠다는 욕구를 분간없이 실천하는 백인 남녀를 뭐 또 어떻게 말리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가족들을 빠짐없이 챙기며 생존의 지혜와 해결의 단초를 남기겠다는 삶의 성실함을 어떻게 또 비난할까 싶다.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는 단단한 서스펜스의 조건이 갖춰져 있음에도 의외로 관람의 숨통을 위해 음악이 제법 배치되었고, 대사도 나름 있다. 무엇보다 남녀의 역할 분담에 대해 비난도 제법 있는 모양인데, 아무튼 최종 마무리에 에밀리 블런트의 손을 맡긴 것은 효과적으로 보인다. 다소 기계신으로 처럼 보이는 사건의 해결책 역시나 이것마저도 M.나이트 샤말란의 [사인]을 닮아 급작스러운 감이 있으니 근..
강동원은 신비의 배우다. 그에게 모처럼 영남 방언 대사를 줘도 그는 그것을 연기답게 소화하지 못한다. 이 정도면 역량이다. 그래도 용서가 되는 것은 그가 동북아시아 대표급 외모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극중 역할도 그런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극중에서 사기꾼이며 그가 눈길을 주면 모든 여성들이 마음에 들어한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도 좀 어지럽다. 문장을 줄이고 싶다) 문제는 황정민 쪽 배역이 더욱 심각하다. 그는 폭력 검사다. 그런 그를 선의 위치, 우리가 구해야 한다고 감정을 이입할 대상에 놓는 것이 온당할까? 작품은 끝에 변명을 하고 정당성을 넣는데 이미 늦었다. 곱게 볼 수 없다. + 넷플릭스에서 봤다. 이렇게 바보 같은 작품을 보고 굳이 글로 기록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한재림 감독의 필모를 흝어 보았다.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 ... 각본까지 맡았다니 그는 인간 개별 군상들의 속내와 크게는 권력에의 탐식을 다루는데 능한 모양이다. [더 킹]도 그 연장에 있다. 이번에는 그는 권력 위의 권력인 검찰로 대표되는 무소불위의 집단을 주시하며, 현대 한국의 역사와 함께 그들의 욕망과 좌절을 드라마로 빚어낸다. 재미는 그냥 있는 편인데 편한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고. 중후반부 가면서 끝내 버리는 못하는 가족의 문제와 결과적으로 '당신들이 더 킹이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시민 사회에 대한 전망과 긍정이라는 해괴함으로 귀결된다. 중간에 함유되는 조폭 드라마의 어떤 애잔함(정말 필요없는 부분)까지 상기한다면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다뤘다 뭐다 이런건 별 소용없게 된다..
갑작스러운 결말은 명확한 위안을 준다. 지근거리에 존재했지만 결코 닿을 수 없었던 디즈니랜드, 영화 시간을 내내 지배하던 사운드와는 전혀 다른 음악이 울려 퍼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우리는 그 세상에 아이들의 발이 닿을 수 없음을 알고 설사 닿더라도 그 세계로 입잡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이 엄연한 가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은 환상을 부여하고 가장 쓰라린 희열을 준다. 이 명확하게 한계를 안겨주는 위안이 그 한계만큼 아프다. + 그 마지막 대목은 아이폰으로 찍어놓은 장면이라 유난히 숨길 수 없는 입자의 거친 면모가 도드라진다. 그래서 더욱 누추한 환상성을 강조하게 된다.
원소스 멀티 유즈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연재했던 같은 제목의 웹툰은 읽지 않았다. 강대국 사이의 틈바구니 안에서 핵의 위기가 고조된 한반도의 현실을 개탄하며, 이 난국을 타개할 - 또는 최악의 선택을 할 - 시나리오로 핵버튼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이걸 남한도 보유하겠다 이거지. 여러 입장 차이가 있겠으나 내가 지지할 이야기의 성격은 아니었다. 아직은 흐릿하지만 남북의 현재 완화 모드에 나름 공명하는 바가 뜻하지 않아 생겨 감흥이 달라진 것은 있지만. 북측 VVIP가 남한에 본의 아니게 머물 수 밖에 없고,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의 키를 쥔 것은 서로 환경도 다르고 대립할 수 밖에 없는 남북 양측의 남자라 이거죠. 일을 크게 벌이는 [강철비]에 비해 유사했던 감상 경험을 이미 [의형제]에서..
등장 인물 중 한 명의 퇴장 이후 뭔가 이야기가 뭔가 분산되고 방향을 잃는 듯해 조금 고개가 갸우뚱했다. 무엇보다 퇴장한 등장 인물의 언어가 남아있는 자의 마음을 개심하는데, 영향을 주고 현 시점의 갈등의 골을 개선하는데는 도움을 젼혀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상한 이중성을 느꼈다. 그게 감상에 있어 뭔가를 방해한다는 기분이 강했다. 그는 화해와 희생을 위해 퇴장한 것이 아니라 어떤 국면 전화를 위해 패들 중에서 제거된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막판에 공동체의 윤리를 등장인물들이 선택(파행일까)하는 장면과 매듭은 어쨌거나 남게 되었다. 배우들의 연기(굳이 말하자면 둘 중 한 명만 상을 탔음 족할 영화라고 생각했다)와 운동성, 파국과 돌진 등 적지 않은 에너지를 내재한 영화.
미소가 서울 시내 곳곳을 전전하게 된 광경을 보니 [멋진 하루]의 두 남녀가 일단 떠올랐다. 하지만 뭔가 일식 풍으로 개량된 [멋진 하루] 안의 예쁜 서울과 달리 미소의 서울은 부동산의 구매를 매개로 결합된 남녀의 결혼제도, 자녀에게 무조건 내리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중산층의 덕목, 자녀 생산을 위해 맺어져야 하는 고부 관계가 강제되어야 하는 곳이다. 담배와 위스키를 사먹을 경제력 정도만 있다면, 거주 공간조차 문제되지 않는 '이상한 존재' 미소에겐 애초에 맞아 들어가지 않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서울 이곳저곳을 스쳐가는 차량 안의 시선은 마치 [한공주]에서 걸어가던 공주를 스쳐가는 카메라가 그러하듯, 미소의 하얀 머리칼을 스쳐간다. 그리고 어쨌거나 현실에 비추어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는 귀결, 그럼에도 등..
동물과 식물로 이원화되는 유기체들이 서로의 차이와 경계가 무너진 채로 한정된 특정 환경 안에서 변이된다. 이 환경을 접한 이들은 모두 실종이 되거나 생존해 돌아오더라도... 이 불가해한 영역의 정체를 규명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 작품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불가해는 불가해, 탄생하는 생명은 소멸, 분리된 유기체는 복제와 열화, 그럼에도 생명체 특유의 의지로 전이와 이동을 통해 어떻게든 자신을 전파한다. 이 과정은 차라리 현대미술관 전시회를 연상케하는 색감과 음악, 조형을 보여준다. 이 영역 안에 발을 들인 다섯 명의 여성은 공교롭게 페미니즘 의제를 가져오는 듯한테, 이 테마를 어깨와 짐에 묵직하게 얹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구멍난 상황의 종결을 위해 제각각 걸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즉 환상의 팀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