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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밤섬해적단의 음악 안엔 애초에 엄숙을 배제해 모두까기인형의 작동원리를 적용한, 자유분방한 가사와 그라인드코어와 펑크를 흡수한 양식 상의 간명함이 도드라진다. 이런 특성 덕에 위악의 제스츄어로 보이는 이들의 가사와 외양 및 퍼포먼스는 오해를 사기도 하고, 최소한의 정치적 공정성의 원리를 적용한 비판이 자연 수반되기도 했는데 덕분에 이것을 학술적이나 연구적 테제로 삼을수록 더욱 우스꽝스러워지는 부가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의 좌충우돌을 담는 것 자체는 영상물에 대한 의욕이 있다면 누구나 탐낼 소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영상물로써의 성취와 이들의 행보에 대한 꾸준하고 거리감을 잘 유지한 부지런함을 겸비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려웠을걸.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완성은 그것을 ..
클래식 1편의 이야기로 다시 가는 '어긋난' 접점이자 클래식 1편이 나온 시대에 대한 예우를 바치는 듯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퇴행하는 인류의 움직임을 대표하는 소녀(노바)의 존재는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다. 신비로움(조디 포스터의 [넬]이 잠시 떠올랐죠)과 교감(의 탈을 쓴 성적 함의가 나올까봐 괜한 걱정을)을 담당하는 이 존재가 '시저 3부작' 이후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궁금하다. 클래식 1편의 역할을 반복하다기 보다는 리부트 1편의 '실종된 우주탐사선'의 떡밥 회수와 함께 인류와 유인원 사이의 달라진 질서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리라. 아무튼 시저는 수고했다. 골룸 이후 가장 성공한 실사영화 CG 캐릭터였고, 앤디 서키스는 골룸으로 2회의 기회를 얻었지만 시저는 3회의 기회를 주었다. 좋은 마무..
[여자들]은 생각보다 소위 홍상수 류와 닮진 않았다. 롱테이크에 목숨 걸진 않았고, 소주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수북한 맥주 캔들이다. 작품 자체의 매력이 깊진 않다. 첫 문장 첫 글귀를 고민하는 젊은 글쓰기 예술 노동가가 주인공인데, 정이 가지 않는다. 고민의 깊이에 동감가지 않고, 그가 한달 간격으로 연을 맺는 여성들과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사들이 부유한다. 아무 의미를 담지도 못하고 다음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감상이 마무리 된 이후에 여운을 주지 않는다. 못 만든 영화다. 보기엔 말쑥하다. 주인공은 자신이 무슨 작가냐 쑥스러워 하다가 다른 대상 앞에선 자신을 작가라 호명한다. 그 속내의 풍경은 뻔한 것이고, 바라보는 쾌감이 없다. '낚시'라는 키워드에 언급과 장면도 ..
귀결에 닿을 때 결국 매달리는 것은 (불교적)구도라는 점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같은 김기덕 본인의 전작을 상기시킨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전작에서 나왔던 몇몇 코드들, 골프채나 권총, 대사없음과 타인의 육체-어깨너머의 남녀의 키스 같은 요소들이 다이제스트처럼 나온다. 무엇보다 근친상간과 종교적 구원/세속적 참혹함 이런 요소들은 아주 탄탄하게 받치고 있다. 누가 처음봐도 알아챌 김기덕의 영화이다. 성공적이라고 하기엔 보기 어려울 듯하다. 논쟁적이라고 하기엔 말초적으로 보일 공산이 크고, 이미 그의 전작들에서 진작에 답을 얻었을 듯한 대목들은 감독 본인이 다시금 문답을 풀지 못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제목 '뫼비우스'마냥 뱅글뱅글 이야기는 수미쌍관의 고리를 돌지만, 김기덕이라는 패턴 자체가 회..
기억의 재현과 꿈과 현실의 아랑곳하지 않고 넘나드는 경계, 장소의 반복 문제는 홍상수 영화에서 익숙한 요소들이다. [그 후] 역시 마찬가지인데, 유독 [그 후]에선 불륜을 둘러싼 날선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게 남들 싸움 구경하는 것만큼 재밌기나 힘든, 삼키기 불편한 대목이 분명하게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말다툼과 날선 대목들은 홍상수 영화에서 언제나 봐오던 진경들이다. 또는 그것에 불과하다. 이 영화에 대한 여러 상찬들은 유럽 평단에 넘기도록 하자. 홍상수는 김민희에 대해서만큼은 언제나 좋은 대목, 예쁜 화면을 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번에도 그 노력은 빛을 발한다. 흑백 화면 안에서 자신이 좋은 연기자임을 입증해내는 김민희를 보는 감정이란 문장으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 [화차]에선 소재와 감독 ..
초인적인 인내를 요구하며 변변찮았던 인턴의 성장을 바라보던 보스의 시선 변화. 당연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정작 원작은 이미 발간된 한국 소설에 있나봐요. 소설 내용은 알 순 없으나 영화로 나온 모양새는 예고편이 주던 인상을 넘지 못하거나 열심히 뒤로 간다. 박보영의 여전한, 그은 선 위에서 충실하게 해내는 연기력. 그리고 정재영의 혈압 폭발 연기가 배합된 좋은 앙상블로 내비치다가 - 전반부는 그럭저럭 웃을 수 있었다 - 후반부 연예계 기획사의 공작 부분으로 넘어가면 침몰한다. 그 내러티브 자체가 이야기를 망친다기보다는 영화가 추구했어야 할 얄랑한 방향(기.자.정.신.!)을 박살내는 SNS의 힘 찬양이라는 요소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에 저렇게 되어버리니 도대체 무슨 소릴 하..
놀란은 평소의 묵직한 연출 톤에 역사를 영화적 방법으로 진실되게 구현하는데 또 한번 심혈을 기울인다. [인터스텔라]에서 보여준 과학적 진경에 대한 노력처럼, 그는 여전한 필름 사랑과 아이맥스의 위력에 대한 신뢰를 보낸다. 이야기 만들기는 시간과 공간의 배열에 대한 영화라는 이름의 효과적 거짓말을 사용하기에 [인셉션]도 떠올랐다. 그것이 잔재주로 내비치지 않는 것은 역시나 역사를 재현하는 톤에 있는 듯하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큐브릭의 비전을 영향받은 것이 놀란 보다 마치 짐머 자신인 듯했던 [인터스텔라]와 또 한 번 톤이 바뀌었는데, 지나치게 부각된 몇몇 톤은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짐머와 놀란 두 사람에게 모두 문제가 되는 대목은 역시나 영국이란 국가 자체에 대한 헌사가 깃듯 후반부 대목들일 것이..
앉은 자리에 간츠:O를 다 보고 말았다. 파이널 판타지의 이름을 빌어 온갖 삽질을 해 온 일본 CG애니메이션의 최선의 결과인 듯.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의 흔들리는 흉부 묘사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천착은 조상이 뜯어 말려도 포기 안할 듯. 제목의 O는 무대인 오사카의 약어이기도 하겠고, CG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오리진을 뜻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시작은 순탄하다. 파이널 판타지의 이름을 빌어 온갖 삽질을 해 온 일본 CG애니메이션의 최선의 결과인 듯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의 흔들리는 흉부 묘사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천착은 조상이 뜯어 말려도 포기 안할 듯하다. 원작이 그러니 이것까지 충실하다. 아무튼 액션이나 캐릭터의 표정 연출은 이제 나름 발군의 경지이다. 게다가 출판본의 초중반까지만 따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