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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별로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없었던 [영화는 영화다]에 이어, 분단이라는 현실을 유사 의형제물-BL로 풀었던 [의형제], 분단이라는 역사를 마치 할리우드 작가주의풍으로 풀었던 [고지전] 등 색채 있고 굵은 작품을 만들었던 장훈 감독. 그런데 입을 떼는 순간부터 무게감에 질식할 수밖에 없는 5.18의 기억을 실화 소재로 빚어낸 [택시운전사]는 배우들의 호연과 현실적인 무게를 지닌 디테일로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설명하기 쉬운 설정의 우려되던 부분을 실현하는 듯하며 다소 하락하였다. 캐릭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울컥함이라는 요소를 연기하는 가장 최상의 이 시대의 비스트로 자리매김한 송상호는 이번에도 여전하지만, 정말 객석과 시청자를 눈물짓게 만들지만, 그렇지만... [택시운전사]가 지금 시대의 사람에게 남..
허무가 도처에 쌓인 눈발처럼 자리 잡은 김훈의 문학엔 권력무상이라는 수사도 사치스럽게 들리는 건조한 면이 있다. 문제는 이 바삭 마른 바닥 위엔 그저 남자들의 비장한 허무함이 자리할 뿐이라는 점이겠다. [남한산성]에 자리 잡은 남자들의 사정엔 격노함까지 발산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스며있다. 인조가 되묻는 시간 내내 서로를 단 한 번도 주목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김상헌과 최명길 사이엔 그저 명분과 실리의 충돌, 겨루기만이 존재한다. 둘이 모처럼 자신들만의 입장을 최종 표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둘은 직선을 그리며 마주하지 않는다. 이 비장함엔 난 오히려 일본 우익들의 서슬 퍼런 공기를 연상케 하는 공기가 있다. 정말 누군가는 할복을 하고, 누군가는 비통하게 운다. 동의를 내릴 수밖에 없는 두 배우의 훌..
감독은 DCEU와 연계한 작품이 아니라는 설명도 했고, 참조한 코믹스가 없다고 말했지만 웬걸 이 정도면 고담 서사에 어느정도 아귀가 맞다. 배트맨 극장판의 서막을 본격적으로 연 팀 버튼 버전조차도 조커가 웨인 부부를 살해했다는 설정이었으니 코믹스 버전에 대한 충성은 새삼 무색한 일이다. 21세기에 들어 히스 레저 버전 조커와의 상호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새로운 조커는 감독의 입장이 어떻든 팬들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자레드 레토 버전의 조커 따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형편이니 더더욱. 감독이 굳이 고담 서사를 빌어 조커를 소환한 것은 로버트 드 니로를 캐스팅한 것과 더불어 찰리 채플린의 영상과 음악을 가져온 것만으로도 현대 헐리우드 역사에 대한 예우와 트럼프를 탄..
제작자 곽경택에게 부산은 우정과 회한의 고장이었던 적이 있었다. 후속편의 잇따른 흥행 실패 덕에 이 가짜 우정 이야기, 폭력 과시 이야기들의 행진곡은 막을 내렸다. 그는 다시 나쁜 범죄들과 그 해결을 더디게 만드는 끈끈한 한국 토양의 지역성으로 부산을 내세우며 작품을 이어간다. 이제 감독이 아닌 제작자의 위치에 선 그는 여전히 김윤석을 캐스팅하여 일견 비슷해 보이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안도하자. 최근 이춘재 사건도 다시금 이런 일들을 새삼 상기시켰지만, 연쇄 범죄자들의 내면을 신비화하며 사건들을 냄새나게 장식하는 노선을 거부한다. 물론 그런 혐의의 기운을 완전히 지우진 못하지만, 그래도 작품이 중점을 두는 것은 나쁜 사람이 언어로 형언하기 힘든 나쁜 일들을 저질렀고 그 내막을 파헤치..
작년에 본 [침묵]에 이어 넷플릭스에 [특별시민]이 들어와 볼 수 있었다. 두 영화 내게 혼동되는 작품이었는데, 마침 이 작품도 일종의 최민식-이수경 배우 부녀 유니버스로군. 두 사람의 충돌이 좋은 갈등의 그림을 만드는데, 합이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특별시민]에선 [침묵]에서 조성되던 그 톤은 형성되지 않는다. 곽도원을 위시하여 좋은 조연 배우들의 격전장 같은 작품인데 등장에서 그려낸 인상을 차차 흐리며 퇴장당하는 인물들에 당황했다. 류혜영과 라미란이 맥없이 퇴장하고, 별 힘도 없는 대사를 뱉으며 의분을 연기해야 하는 심은경에겐 참 난감한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곽도원은 곽도원처럼 연기하고, 문소리는 여전히 빛을 내는 연기를 하는데 캐릭터가 이야기에 기여를 못하니 극은 말라붙어 보인다..
작품에서 이야기하듯이 1994년 여름, 김일성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폭염이 왔다. 여기서 정지될 사적인 94년의 기억인데 [벌새]의 중반부 이후엔 한국의 역사가 기록할 침통할 기록이 하나 더 추가된다. 그 사건으로 인해 밴드 넥스트가 94년에 발매한 음반, Being은 이듬해, 95년 음반 World의 수록곡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로 확장된다. 사적인 역사의 기록에 대한 나의 감상은 이렇게 추가되었다. 강렬했던 시대였다. 이 참혹한 일들에 결부된 이들에겐 지금도 잊기 힘든 멍을 남겼을 것이다. [벌새]는 여기에 대해 공론을 위한 분노 촉발이나 구슬픈 진혼곡의 메들리를 하는 대신, 당시 한 중학생의 시선과 여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주인공 은희는 세상과 외부의 관심과 보듬을 요하며, ..
윤가은 감독의 작품에서의 아이들이 벌이는 양상은 순진했던 추억이 깃든 시절에 대한 회고 취향이나 동심으로 표현되는 감정에 대한 예찬으로 치부할 수 없는 단단함이 있다. 추억과 동심이란 단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가벼운 모욕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 세계관 안엔 가족에 대한 기본 예의를 저버린 가부장이 있고([손님]), 차곡차곡 계단을 밟으며 증폭되는 갈등의 골과 너비가 있다.([우리들]) 다만 그것을 밟고 걷는 아이의 발걸음을 보는 긍정과 리듬감이 있을 뿐이다.([콩나물]) 어떻게 집이라는 테마의 무거움과 가족이라는 진중한 대상에 대한 사려가 가볍게만 볼 수 있는 일일까. 물론 그 해법으로 [우리들]에서의 답변은 “친하게 지내야 해”라는 문장이었고, 그게 굉장히 천진하고 그저 편안하게만 보일 수도 ..
작품 시작 후 바로 ‘외유내강’ 제작사 로고 보고 작품을 보며 실감했다. 조정석이 놀이터에서 성룡처럼 수련하는 장면에서 류승완의 뿌리를 감지하지 않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정작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로 인해 현재 표류 상태이기 하지만... [엑시트]를 채우는 정서는 이런 운동(체력) 예찬과 잠시간의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보다 더 많은 이들의 삶을 살리는 헌신과 긍정의 정신이다. 숭고함이나 느끼한 방향으로 운전대가 자칫 틀어지기 마련이나 그 찰나를 잘 피한다. 조정석과 윤아 듀오가 하룻밤 사이 벌이는 영웅적 행보가 보여주는 온도 덕이 아닐까 싶다.(윤아는 얼굴 유머 개그를 하기엔 역량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지만) 이 한국형 히어로물엔 초반에 일치감치 퇴장하는 빌런도 있고, 조연 방해꾼도 있지만 감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