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영화보고감상정리 (769)
Rexism : 렉시즘
[스타 이즈 본], [시크릿 슈퍼스타]에 이어 일련의 음악 소재 작품들을 보고 오늘 [와일드 로즈]에까지 이르니, 왜 한국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까. 밑바닥에서 위로 상승하는 스타 탄생 이야기와 시한부 인생이 유발하는 눈물, 그리고 부모 관계에 야기되는 천형과 슬픔. 어느 나라에나 통할 정서라 그런 것일까. 그래도 와일드 로즈의 주인공이 가진 개성의 일면은 특기할만하다. 진취적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성취를 제자리로 돌리게 하는 인간적인 실수가 많았고, 평탄화된 부분보다 충돌하는 성격 덕에 삶의 굴절을 짐작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서사와 종결은 위기를 딛고 슬슬 상승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하나 더 작품만의 개성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코틀랜드에서 내쉬빌이 융성기를 조성한 컨트리 음악에의 길을 도모하는 ..
영상 만드는 감독 박찬욱, 박찬경 형제는 그 둘을 합쳐 파크찬스라고 호명하는 모양이다. 이 둘의 대표작 [고진감래](2013)를 볼 수 있었다. 이 기묘한 창작물은 당시 서울시가 공모한 UCC 영상물의 수북한 더미에서 건진 내용물을 68여분에 편집한 작품인데, 그 자체가 서울이라는 복잡하고 이야기 많은 도시를 담은 진경이 되었다. 일체의 내레이션이나 자막의 개입이 없는 이 편집의 결과는 그럼에도 연출자와 화자가 느껴지는 대목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시위하는 서울, 여러 인종이 있는 서울, 젊음과 노후함이 공존하는 서울, 성 정체성의 경계와 분열이 여러 시선의 규제에도 나비 같은 몸짓을 감행하는 서울, 화평과 사색이 있는 서울 등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다양한 도시의 일면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만신]을 연출..
리들리 스콧이 1편을 만들고, 제임스 카메론이 1편을 만든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는 공교롭게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얻어걸린 페미니즘 서브-텍스트'가 된 운명이다. 에일리언의 경우, 미지의 행성에서 괴물체를 조우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차분한 공포의 여정이 수정란 착상과 임신을 비유하게 되었던 점이 그러했다. 여기에 터미네이터의 경우는 성모 만들기 이야기의 비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공교로움이 있겠다. 보다 더 공교로운 점은 리들리 스콧의 예상하지 못한 이 결과물이 2편에 들어서는 '여성 노출 코스츔' 대목으로 인해 페미니즘의 추락을 보여주고 말았고, 그 원죄의 당사자가 바로 당시 감독을 맡았던 아거 제임스 카메론이었다는 점이겠다. 마치 이 죄목을 사하듯 그는 훗날 '미지의..
[황해]에 등장한 타자이면서도 주체를 압도하는 불가해한 정체성과 힘을 발휘한 살인-폭력 기계 면가의 등장 이후, 한국영화는 난데없이 연변 출신 시민과 불법체류자를 중심으로 잠정적인 범죄자 낙인과 캐릭터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를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움직임 중 하나였던 [범죄도시]는 체포-폭력 기계 마동석을 기용함으로써 범죄자 단죄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실로 '강철중의 후계'라 할만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가벼운 범법을 저질러도 된다고 스스로를 용인하고, 대리만족을 위한 폭행 장면을 전시하고 과시하는데 치중한다. 그건 그럴 수 있는데 이 극 중 소개팅 마니아께선 거리 조직의 청탁을 받아 이른바 매음도 하신 듯한데 이에 대해선 별다른 응징은 당하지 않는다. 폭력으로 빚어지고 ..
부권이 폭력으로 누르는 가풍의 지배를 벗어나 신분과 복장을 숨기며 유튜브를 통해 일순간에 유명해진 젊은 아이가 노래를 통해 성공의 길을 연다. 노래 이야기를 다룬 극화에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서사인데, 이야기의 무대가 인도이고 이 단순 명쾌한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2시간 20여분 이상이 걸린다면? 그게 낯설지 않다. 아미르 칸의 역시나 제작을 맡았던 전작 [당갈]에 이은 작품이자 주인공 배우 역시 겹친다면 그 톤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적이고 완강한 질서로 묶인 사회를 움직이기 위해 아미르 칸이 여전히 활용하는 방안은 '쉽게 이해되는 인물들의 움직임과 생각'과 시간을 잘 흘려보내게 만드는 화법과 노래다. [시크릿 슈퍼스타]가 인도 사회 안에서 달라지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동기부여를 위해 발휘하는 설..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는 [경계선]을 파트너의 시사회 당첨을 통해 관람할 수 있었다. 여러 영화들이 떠올랐다. 린다 해밀턴과 론 펄먼의 출연한 과거의 TV 시리즈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하는 분장, [언더 더 스킨]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공기, 무엇보다 이 작품의 원작자였던 작가의 전작 [렛 미 인](아시다시피 역시 영화화되었죠)을 연상케 하는 정서들이 강렬했다. 무시하고 건조하게 흐르는 우리의 일상에 틈입한 미지의 존재가 주는 조용한 위협과 비정하게 다뤄지는 생명 하나 둘의 가치. 그에 대한 질문들. 북유럽. 헐리우드산 [밀레니엄] 시리즈가 서슬 퍼렇고 아슬아슬하게 영상 안에 담았던 복지국가의 이면 - 제도를 이용한 강간 -, [경계선]이 작품 안에서 보여주는 아동성애 ..
단 한 번, 과거의 폭행에도 용납할 수 없는 마음의 균열은 야기된다. 관계의 파국에 대한 결말을 말하기 직전 진정한 파국은 누적된 씽크홀로 인해 극적으로 완결을 보여준다. 씽크홀은 청년 근로환경을 영구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태생적 한계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언제든 삶의 근거를 야기할 재개발과 성장주도 시스템의 아귀 같은 욕심과 매치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무엇보다도 삶과 환경 전반에서 언젠가 모든 것의 진공을 만들 예견된 재난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인권이라는 키워드를 매개로 폭력과 상호 신뢰, 불신 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초반에 불법 촬영을 말하는 대목에선 나를 좀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직군과 비유를 잘못 만났다는 의구심이 확신이 들었고, 작품 전반의 재기 발랄함(이라고 해두자..
김영하의 원작은 [퀴즈쇼]를 통해 얻은 진한 작가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기억한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정황과 사건의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혼미하게 자리할 때, 그것은 내게 세계관을 조성하면서 확신할 수 없는 작가라는 직업군에 대한 다른 형식의 비유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잘 읽히고 좋은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영화화는? 설경구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역시나 90여분을 상회해야 한다는 시간상의 부담으로 인해 부차적인 이야기와 설명이 붙고 그게 만족을 주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붙은 이야기의 정당함이나 영화 매체만의 또 다른 서술 방식, 연출의 묘가 살아있기보다는 그저 부차적으로만 보였다. "내 피 이어받은 아이가 아니라니. 이런 불륜의 혐오스러운 결과여. 아 운명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