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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한재림은 [우아한 세계] 이후 눈물을 짓는 부성의 대표 상징으로 송강호 이외의 대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관상]을 포함, [효자동 이발사] 등에서 울먹이고 시대의 뒤안길에서 울컥하는 부성을 상징하기엔 송강호만한 적자가 없는 모양이다. 그게 어디 한재림 감독만의 공감대는 아닌 모양. 이준익 역시 영남권 어투를 쓰는 기이한 이 씨 조선 영조 역에 송강호를 쓴 것을 보면 송강호 자체가 믿음직한 치트키인 것은 분명하다. 근 몇 년간 [관상]과 유사한 역사와 개인의 딜레마를 표현해 온 송강호에겐 어쩌면 [사도], [택시운전사], [밀정] 등은 - 여기에 심지어 [기생충]까지? - 유사한 맥락의 연속이었을지도? 그래도 모든 작품에서 비슷한 송강호를 반복하는 매너리즘이 분명 존재함에도 한편으로는 그런 매너리..
공교롭게, 아니야 공교롭게가 다 뭡니까. 아베는 실상 출마 후 당선 이후 언제든 그러기 위해서 준비한 사람인양 행했고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이르렀던 사람이었다. 아무튼 아베와 그의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제거한다는 것을 며칠 전 공식화했고, 그 여파는 가히 ‘윈터 이즈 커밍’의 양상을 만들 예정이다. 이 시점에 [주정자]를 관람하였다. 아베와 그들이 만들고 조장하는 곪은 상황은 노골적으로 북동 아시아의 거대한 환부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거대하고 강경한 일본’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 듯하다. ‘반성하지 않음’은 연출자에게 중요한 문제의식이자 현 일본을 보는 유력한 시각이다. 카메라와 인터뷰는 차분하게 다양한 인사들, 정치인, 교사, 활동가들에게 접근하여 입장과 견해를 낚는다. 종합해 보자면..
데이 오브 솔다도는 필연적으로 1편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제치기엔 역부족인 작품이다. 서늘하고 응집력이 좋은 드니 빌뇌브의 연출과 음악, 무엇보다 에밀리 블런트의 지친 표정이 1편의 핵심이다. [제로 다크 서티]에서의 국제 정세의 실리와 조직의 비윤리, 서슬퍼렇고 더러운 남성 위주의 세계관에서 차가운 냉정을 지키던 제시카 차스테인 등이 새삼 떠오르던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와 존재는 1편의 핵이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2편은 결국엔 다른 이야길 할 수 밖에 없었고, 자칫하면 남자들의 뻔한 이야기로 관성으로만 채워질 수 밖에 없을 운명이었다. 그래도 애써 1편의 서슬퍼렇고 비정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총격씬에 자신감이 여전한 연출은 이것이 후속편의 체면을 지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많은 이..
해외 영화계에서의 반응과 좋은 ‘한국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갈증과 별개로 [버닝]이 개봉되던 당시에 흔쾌히 상영관을 찾아갈 결심을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호의를 가지기 힘든 배우 유아인이 주연이라는 사실과 [오아시스]와 [밀양]이 거둔 성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대하는 이창동 감독의 기묘하게 불편한 태도는 이미 내게 피곤하게 누적된 상태였고 - 그걸 생각하면 [시]는 힘겹게 예외상황을 허락한 진정한 걸작 인지도 - 이렇게 수년 뒤에 넷플릭스 덕에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게 참 난공불락의 상태였다. 홍상수의 작품 안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 문성근 배우, [자백] 포스터에서 연출을 담당한 자신의 모습을 [스포트라이트]풍으로 새겨 넣은 최승호(현 MBC 문화방송 대표..
범죄조직에 들어가 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언더커버 캅스, 경찰 조직에 스며 들어가 첩자 노릇을 하는 범죄자. 그리고 그 둘의 뒤바뀐 운명은 마치 왕자와 거지 같은... 이런 이야기에 있어 [무간도]는 레퍼런스라고 하기엔 오히려 쑥스러운 면이 있지만, 한국영화에 있어 [무간도]가 조성한 말쑥한 외형과 공기의 영향력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무간도... 그래 무간도를 수년만에 봤다. 처음 방에선 볼 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넷플릭스에 들어온 김에 보니까 다시 인물들과 이야기가 보이더라. 그래서 본편이라 할 수 있을 3부작이나 관련 작품들도 넷플릭스에 들어왔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없는 게 어떤 의미에선 아쉽지 않기도 하다.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고 묻힌 것들을 파헤치지 않는 그 자체로도 좋은 것 같..
넷플릭스에서 김지운 버전 [인랑]을 시청했다. 빨간망토 모티브의 비극성과 핏빛 시대, 가상 역사로 비튼 실상 현재 역사적 상황에 대한 변주, 유혈낭자하고 집착 강한 총격씬 등등 오시이 마모루 영상판의 원형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이고 그것을 재현하는데 충실하는 듯하고 그걸 왜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원 영상판의 비전과는 다른 한국적 정치와 분쟁의 지형도, 김지운 버전에만 있는 새롭고 모호한 캐릭터의 배치 등 모두 유효한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오시이 마모루 버전의 무력하게만 보인 여성 보다는 한반도 여성이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반발력과 저항의 기운은 괜찮은 듯하지만 한효주의 연기가 좋았다고 보기엔 힘들었다. 그냥 [의형제]의 장훈 감독이 그렇듯, 감독들은 강동원에겐 슬프고 무기력한 마무리를 주기 싫어..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뭐 첨언하는 것이 온당한지 자체가 궁금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그랬듯, 스타워즈가 그랬듯, 터미네이터가 그랬듯 후에 탄생할 수많은 크리에이터들 - 워쇼스키 자매, 코지마 히데오, 피터 잭슨 등등 -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원형들을 만든 작품에 대해 덧붙이는 것은 오히려 게으름 같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먼저 극장에서 관람한, 나이에 걸맞지 않은 역순 관객의 입장에서 그 게으름 발휘한다. 상찬을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고, 새삼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력인 감독 드니 빌뇌브와 음악 한스 짐머들이 오리지널 [블레이드 러너]의 이 원형을 - 리들리 스콧의 연출, 반젤리스의 음악 - 얼마나 디자인 가이드라인 전수받듯 충실히 계승했음을 실감했다. 아트..
[아키라]는 [공각기동대], 지브리 라인업,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등과 함께 불법으로 구운 CD를 상영회라는 명목으로 1000원씩 받아 학교 영화제에서 재생해주던 타이틀 중 하나였다. 격동의 90년대 중후반. 극장에서조차도 [아키라]가 홍콩 애니메이션(제목은 이른바 [폭풍소년])이라는 거짓 변칙 개봉했던 시절이었다. 온전한 상영 환경으로 - 영상자료원 상영 - 관람한 [아키라]는 이렇게 다시 제대로 보는 것조차가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영화였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을 무지막지한 파괴를 향한 에너지가 가득하였다. 그리고 그런 파괴욕이 ‘모든 것을 깨끗이 청소하고 소거해야 다시 재생한다는 생명 예찬’이라는 변명까지 배치하는 당당함이 서려있다. 90년대 중후반 도드라진 성우 팬덤이나 소년소녀 허무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