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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관람 전부터 예상했던 것이지만, 역시나 오크 진영에 더 눈이 간다. 종족의 운명을 핑게삼아 세상을 불지르려 하는 굴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드로탄의 희생과 스랄의 탄생담엔 뭔가 두근거리는 것이 있다. 휴먼 진영에 마음이 가기 힘든 악조건을 더욱 부추긴 것은 캐릭터들의 종잇장 같은 존재감과 연기톤 덕이었다. 블리자드가 게임들을 만들면서 내놓은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훨씬 상회하는 기술력으로 만든, 두근대는 CG의 광경과 캐릭터들이 이것저것 나옴에도 불구하고 자비없고 게산 부족한 편집과 우왕좌왕의 동선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중국 흥행 덕에 속편을 기대할 수 있게 된 현실적 조건에도 가벼운 한숨이 나온다. 관람하지 않은 이들에겐 반지의 제왕 비슷한 무엇이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타락과 협잡의 이야기가 안겨..
부제가 끔찍하다. [빅쇼트]가 휘황한 편집과 다들 적당히 정신질환에 걸린 상태마냥 캐릭터물로 진기를 발휘할 때, [마진 콜]은 48시간이 채 되지 않는 동안 더러운 매혹을 지닌 양복 남자들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기 전의 전조를 묘사한다. 각자의 연기톤의 아우라를 지닌 남성 배우들이 조용히 각축을 벌이는 것도 장관이다. 냉소적인 폴 베타니, 썩은 조직의 꼬랑내에 싸인 스탠리 투치, 선과 악의 영역 안에서 판단 내리기 힘든 이문의 획득자 케빈 스페이시, 무엇보다 보스 제레미 아이언스 등.... 꼬리 잘리는 젊은 사원의 처지에도 쉽사리 동정심은 생기지 않는 비정한 톤은 일품이다. + 왓챠플레이로 시청했다.
빌 머레이 곰이 헤엄치고, 벤 킹슬리 흑표범이 정글을 누비고, 스칼렛 요한슨 뱀이 스르륵 접근하고, 이드리스 엘바 호랑이가 호령하는 영화라면 뭔가 기대하는게 있잖아. 그런데 특별히 그 기대감이 채워지지 않아. 그래도 디즈니산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뮤지컬 넘버가 나오더라. 내 감상은 2D 애니 경쟁 구도에서 디즈니가 한참 잘 나갈 때 드림웍스가 이집트 왕자 내놓고, 폭스가 아나스타샤 낼 때 그 때 보는 기분. 기술이 다이긴 한데 기술이 또 다가 아닌 밍숭맹숭한 이야기 보는 기분이더라.
간만에 모국의 영화로 돌아온 박찬욱의 작품을 보는 감상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렇다. 박찬욱은 영화를 참 재밌게 만든다. 남들이 이렇게 만들었다면 툭툭 끊어진다고 불평을 했을 대목도 박찬욱이 만드니 날렵하게 보인다. 특히 1부가 그렇다. 영화 전반이 일본이라는 거북하고도 실은 매혹적인 기호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하다. 그 안엔 조소도 있지만, 충실하고도 정성스럽다. 이해영 감독의 [경성학교] 같은 영화들이 닿지 못한 곳에 박찬욱은 집착적인 태도로 닿는다. 당연하겠지. 그런데 영화에 대한 호의 태도가 무너지는 대목은 3부다. 1부를 장악하면서도, 결국엔 박찬욱 내러티브의 속임수의 희생자였던 김태리(타마코, 숙희)는 고작 정신병동 - 그래 전작이 상기되겠지. 이건 누구나 하는 소리 - 안에서 고함 한번 지르고..
브라이언 싱어는 극중 언급으로 역대 시리즈 3편 영화를 씹으면서,, 은연중 브렛 래트너를 저격한다. 그런데 [엑스맨 : 아포칼립스] 역시 어떤 의미에선 퍼스트 클래스 3부작의 3부라 하겠다. 그런데 브라이언 싱어는 내심 이 영화를 마지막 3부가 아닌 새로운 1부의 시작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관객들이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통해 역시 브라이언 싱어가 오리지널과 프리퀄의 가교를 잘 이었네요 라고 순진하게 감탄했지만, 이제 싱어는 [아포칼립스]를 통해 기껏 봉합한 시간대를 그가 만들었던 1,2의 시절을 연상케하는 세계관으로 인도한다. 마무리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는 맘껏 더 해보려는 듯하다. 어느 시간선 안에 있든 로건은 언제나 스트라이커에 의해 웨폰X의 실험체가 되어야 하고, 진은 다크 피닉스..
초반 흑백으로 계속 잡히는 통영 바닷가의 모습은 굳이 저런 연출이 필요했을까 싶지만, 되돌아보니 쇠락한 비수기의 횟집 광경만큼 한 청년의 전도유망함이 (자의로)퇴색된 것을 묘사하기엔 충분했다 생각한다. 현재로 돌아와 누구나 메달권으로 들어가기 위해 상승하고 앞지르는 와중에 옆으로 경유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소년을 둘러싼 환상적인 장면은 어여쁘기 그지 없다. 흔한 비유로 보이지만 영상으로 보니 불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누구에게도 쉽게 당신이 옳았다고 말할 수 없는 어른들(과 심지어 아이의 입장)을 보면서도, 아주 조금씩 달라진 이들의 일면에 끄덕할 수 있었다. 여전히 꼿꼿이 서있는 마대와 빗자루들이 제 용도만을 알아가는 그런 나날을 긍정하며,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종교적 텍스트에 대해서 친숙하고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면, 조금 더 풍부하게 보였을 공산이 컸다.(이전 작품 중 [추격자]의 어떤 요소들도 그런 부분이 다분했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 뿌린 개그라고 해야할지 머쓱한 부분들은 [차우]보다 안 좋았고 - 일단 웃기지 않았다 - 이것이 [황해]를 만든 사람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초반의 편집은 딱딱 끊어지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물론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무엇보다 관람 후 다음날에 되려 짙은 인장을 남기는 그 집요한 연출은 여전히 출중하다. 여기에 지옥의 문이 개방되는 곡성의 풍광을 담은 로케의 힘은 크다. 선과 악의 모호한 자리를 오가는 배우들에겐 사투가 느껴지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을 기술진들을 생각하면 여러 풍문과 얽혀 복잡해지는 심산이다. 하지만 이 생경하..
현실화되진 못했던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배트맨 : 이어 원]은 같은 제목의 프랭크 밀러의 코믹스를 고스란히 옮긴 작품이었을까? 꼭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제목을 보자면 배트맨의 탄생과 타락한 도시 고담의 일원들에 대한 전사를 밝히는 이야기의 맥은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확인할 도리는 없고, 어쩌면 그런 흔적들은 엉뚱하게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에서 일부 역할을 수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시빌 워의 이슈도 마찬가지다. 분열과 갈등, 이 맥락을 취하고 현실적으로 부족한 배역진과 제작비, 규모(및 분산되는 내러티브)의 한계는 이런 방식으로 수렴되는게 아닐까. 물론 비판의 맥락은 동감한다. 명분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결국 갈등을 조장하는 핵심 세력이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한 '소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