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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캐서린 비글로우의 [폭풍 속으로]는 걸작이라고는 부르진 않지만, 보고 난 뒤의 잔향이 제법 남는 작품이었다. 보는 이의 육신까지도 축축하게 만드는 듯한 서핑 장면과 두 남자 사이의 행간을 알 듯도 하고 모를 듯한 마음의 문제도 그렇게 남았다. 그걸 리메이크하다가 일이 커지고 방향이 달라진 [포인트 브레이크]는 어떨까. 극렬 환경주의, 익스트림 스포츠 등의 요소가 끼여들고 세계를 누비지만 예상만큼 공허한 구석이 컸다. 게리 부시처럼 중심을 잡아주는 중견 배우의 존재감도 부족하고 -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긴 한데, 결국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 패트릭 스웨이지가 내 마음 속에 제법 평가절하 되었었구나 실감할만치 주역이 약하다. 세계 경관을 누비는 장관과 액션, 이질감이 특별히 없는..
- 원래 픽사의 작품은 단편과 본편의 주제 의식이 일치하거나 공명하진 않는데, 이번에는 웬일로 어떤 정서면에서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단편치고는 액션이 굉장히 강조된 작품이었는데 마지막에 때려주는 코드가 요즘 픽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물론 정치적 함의가 다소 내포된 작품이긴 했다) 확실히 요새 픽사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경향이 어떤 특정 감정과 진행에 치우친게 확실해 보였다. 앞으로 개봉할 [도리를 찾아서] 역시나 이런 귀결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에 더해 [굿 다이노] 작품 자체가 제법 슬픔으로 범벅된 묘한 쓸쓸함이 있었다. 미주 지역 관객들에게 먹힐만한 서부극 코드에도 불구하고, 이내 사라질 것들에 대한 회고적 풍경을 보는 안타까운 시선이 굉장히 도드라졌고 이는 농경문화(!)에 닿은 작품 속 ..
[제로 다크 서티]의 제시카 차스테인과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의 에밀리 블런트는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공무원이지만, 전자는 그나마 거수 경례라도 받지 후자는 머릿수 채우기용 장기말일 뿐이다. 참담한 세상 위에 겨우 서있는 참담한 사람이다. 마른 육체 위에 걸친 브래지어는 민무늬이며, 남자들은 그 여성성을 근심하면서 약점을 알기게 그들의 법칙대로 이용한다. 그녀는 뾰죽하게 세상을 경계하면서 총구를 겨누지만, 난폭한 세상의 법칙은 그녀가 운신에 대한 방향키를 제맘대로 조정한다. 이야기의 서사마저 후반부 베네치오 델 토로에게 기운다. 남성들이 조성한 법칙 위에 군림한 무서운 남자의 위치. 이를 가는 늑대같은 존재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의 그림자 아래 시들지 않고, 파르르 떠는 에밀..
J.J. 에이브람스는 [스타트렉]에서 이미 잘 계승하는 자의 왕관을 쓴 바가 있다. 평행 세계관을 빌어 유산에 대한 예우와 새롭게 시작하는 시리즈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J.J는 [스타워즈]에서 같은 전략을 반복할 순 없는 입장이다. [스타워즈]의 이야기는 ep.6에서 이어져야 하는 내용이며, 평행 세계관을 용납할 수 없으며 제대로 각 잡고 계승해야지 후계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좀 퍽퍽해 보이는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이 덕분에 나는 이 스타워즈가 일종의 [스타워즈 : 카지노 로얄]로 보였다. 작게 시작하고 크게 벌이지 않으면서도, 변주와 인용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도 독창적이어야 한다. 모순 이기기인 셈이다. J.J가 잘했냐고? 잘했다. 익숙한 이야기의 화소..
1) 2014년 12월 1일부터 2015년 11월 30일까지 본 영화 목록입니다.2) 볼드체가 좋았던 영화3) 하단에 '올해 움츠려던 기간' 동안 본 영상자료원 영화들도 따로 있습니다. ==========================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 - [마션] 앞에 붙은 리들리 스콧의 이상한 영화, 그렇다고 [글래디에이터] 반복은 아니고.[갈증] : [고백]을 생각하면 대차게 망하는겁니다. 감독님 그냥 사라지세요.[호빗 : 다섯 군대 전투][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꿈틀대던 구름의 이무기 같은 움직임![아메리칸 셰프] [빅히어로] [폭스 캐처] : 진지하고 무거운 공기[파티51][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 남는건 없는데 트위터 상의 후유증을 보고 놀라긴 했지요.[나이트 크롤러] ..
화려한 군중 씬의 CG는 [썸머워즈]의 Oz 세계관이 보다 내 취향이었고, 소년의 성장과 판단이 준 여운은 [늑대아이]가 내게 더 깊게 박혔다. 인간의 마음 속 어둠, 모비딕, [서유기]와 무협물의 구성을 변주한 듯한 '어르신들 말씀 들어러 가는 여정길' 등의 서브 플롯이 있긴 한데 서로서로 잘 얽히진 않는다. 간혹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을 볼 때 애초에 그런 의도로 만든게 아님에도 마치 시리즈물의 총집판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번 [괴물의 아이]에서 호소다 마모루 작품답지 않게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흥행했다 이런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놈이다]도 [검은 사제들]처럼 한국적인 광경이 나온다. 그것은 무속의 요소이고, 후자에게 있어 그것이 묘한 교집합이자 대립항이었다면 전자에겐 이야기의 단초이자 추동 요소가 된다. 다만 [그놈이다]는 그것을 끌고 간다기 보다는 호러적 장치로 간혹 활용한다는 정도일까, 깊게 파고듬은 부족하다. 그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한국영화에서 (지나치게)자주 나오는 여성 연쇄 범죄와 그를 끈질기게 쫓는 피해자의 근친이 벌이는 사투다. 쇠락한 어촌과 여기저기 기울어진 재개발촌의 풍경은 한국 사회 안의 어떤 서글픔을 건드리기는 하지만 역시나 풍경일 뿐이다. [그놈이다]는 여러모로 집요한 영화였지만, 영화를 둘러싼 세계까지는 이 집요함을 미처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 대중매체에서의 천주교란 양경일의 만화 [아일랜드], 몇몇 독립영화에서의 테마 및 배경으로 익숙할 것이다. 그나마도 자주 언급되는 편도 아니지만... [검은 사제들]은 마치 이 중간 쯤에 위치한 듯하며, 진지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이야길 만드려는 노력이 엿보였다.(그럼에도 초반은 좀 서툴게 보였다.) 한국풍 무속신앙의 현실과 교차하는 연출도 제법 괜찮았고, 천주교 뿐만 아니라 엑소시즘이라는 한국영화의 가장 낯선 풍경을 - 월하의 공동묘지 시절을 마무리하는 듯한 - 집요하게 그려내는 노력엔 지지를 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좋은 앙상블 영화고, 김고은과 간혹 같이 거론되지만 [경성학교]와 더불어 진작에 앞질러가는 듯한 박소담의 존재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