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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인문대학 야외 민주광장에서 심야 상영하던 5.18 다큐는 열화 된 VHS 영상, 외신 자료, 당시 흑백 자료들이 편집되어 시대의 거친 질감이 살아있던 작품이었다. 21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똑같이 518에 대해 질문해야 하는가. 그리고 진실을 위한 규명 노력과 풀리지 않은 채 생생하게 숨 쉬는 질문은 유효한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할 새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안고 의기투합한 시민군을 북에서 날아온 괴뢰로 규정하는 지만원 교수 같은 이들이 버티고 있다면 더더욱. 광주 곳곳에 남아있는 메모리얼을 미처 둘러보지 못한 세대가 새삼 5,18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을 파악하고 정의 내리지 못했기에 역으로 질문지의 목록과 진실 규명에 대한 노력은 더욱 생생하고 힘이 있..
셀린 시아마 감독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만든 적지 않은 반향이 그의 2011년 작품을 코로나 정국 한국영화 시장 안에서의 의미 있는 호출을 만든 듯하다. 그의 대표작보다 작은 작품이지만 의미는 여전하고, 성별에 의거한 양립 기준의 고정성에 질문을 던지는 뚜렷한 자세는 그 뿌리를 짐작케 한다. [타오르는...]이 예술사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심줄 뚜렷한 문제제기였다면, [톰보이]의 자세 역시 그 씩씩함의 근원을 살펴보게 만든다. 배경음악이 초대한 배제한 - 그것을 대신 채우는 것은 연정을 노래하는 경쾌한 프렌치 팝 한 곡의 존재 - 가운데, 내려앉는 햇살과 계급을 짐작케 하는 생활 소음 위에 지속적으로 불어오는 저편 일상의 바람들. 그 컬러와 질감이 두렷하다. 당혹감과 심지 굵은 어린 시기..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후에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만들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가 훌륭한 감독이 아닌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필두로 TV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 [퍼시픽] 그리고 최근의 [1917]까지 할리우드는 현대전의 걸작들을 낳아왔다. 개별 작품들 역시 하나둘의 결점을 가지고 있으니 그 길은 굉장히 다난한 여정인 셈인데, [퓨리]는 오죽하겠나. 음악은 다소 장르적이거나 좀 관습적으로 들리고, 철학적이고 사색적 고민은 애초부터 들어가기가 힘들다. 브래드 피트가 프로듀싱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알겠지만 그의 캐릭터가 아무래도 나치 사냥꾼의 전력을 다시금 연상케 하는 부분도 느껴졌다. 그래도 데이비드 에이어는 단순한 탱크전의 고정된 인상을 지우기 위한 ..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삶을 지탱하는 의지 대신 허무가 차지하게 되고, 간헐적인 죽음충동을 향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액션 장르 안에서 들어오면 그게 굳이 크리스 헴스워스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고, 설사 덴젤 워싱턴이 되거나 제라드 버틀러가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즉 캐스팅이 실상 중요하지 않다. 이런 요소가 나르시시즘과 만나면 그게 [아저씨]의 원빈 사촌 같은 사람이 민들어지는 거니까. 뭐가 그리 중요하겠나. 그래도 스턴트맨 출신 감독이 만든 야심 있는 12분 롱테이크(기법) 장면이 경천동지 할 구경거리를 만들고, 투자자를 흡족하게 하고 시청자에게 만족을 준다. 그럼 넷플릭스로선 만사 오케이 아니겠어요. 그런 작품이 만들어졌다. 작품이 배경을 삼은 정세와 등장인물의 처지는 안타깝게도 장식이다..
이제 판은 조리돌림의 시간이 [사냥의 시간]에게 주어진 모양이다. 가혹하다. 그렇게까지 못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감독의 전작 [파수꾼]의 2인조 이제훈과 박정민의 관계성을 다시 연장시키는 대목들이 있다. 죄책감과 망자의 귀환, 이로 인해 환기시키는 목소리 그리고 예정된 파국, 조성하의 캐스팅 역시 전작의 잔영을 결코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어떤 의미에선 그게 노골적이라 아직 [파수꾼]의 존재가 감독의 성취에 대한 자긍심 같아 보여 좀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문제는 어디서 발생한 걸까. 사운드와 플롯 곳곳에 넣은 긴장의 장치는 출중한데, 이야기의 중심 얼개의 난도가 높지 않았다. 누구나 실패할 것이 명백하리라 판단할 예상된 앞날. 그럼에도 그 길을 뚝심 있게 걷는 등장인물의 행보를 이해하기 쉽지..
냉소와 쿨함으로 가득찬 임상수 [그때 그 사람들]과 실상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그들의 모임이 거짓 우정과 유대로 형성된 협잡의 모임이었고, 일부 인물들이 바꾸고자 한 세상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든 뒤틀려 현재의 망한 꼬라지를 만들었다는 진한 냉소. 그런게 분명 있다. 그러나 감독 우민호의 발전이 다소 드러났다. [마약왕]의 방향 표류가 없고, 소재가 가진 함정에도 불구하고 [내부자들]에서 푹 빠진 여체 전시의 추한 결과물이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들의 평면화된 캐릭터성을 가져왔음에도 그 안에서 "혹시 나의 직장 상사는, 행여 나의 직장 동료의 속내는 이런게 아니었을까" 매초 매분 갈등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 직장남자(ㅎㅎ)들의 고뇌가 가진 입체성이 잘 살았다. 그 입체성이 예상된..
실패를 예견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고통인가. 선대가 물려준 가난이라는 유산, 그리고 겨우 들어올린 인간적 삶의 바탕을 모조리 앗아간 은행 자본.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놓고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애초부터 파탄을 예고한다. 은행 강도라니. 타인의 재산을 획득하고자 내미는 총탄은 다시 자신들의 뒤통수에 돌아오기 십상인 일이다. 불황을 대변하는 담보대출 광고 문구와 이제는 내라막길의 행보로 쇠락한 정유 산업, 이 토양 위에 21세기의 서부 영화 회고가 만들어진다. 결국은 매듭을 지어야하는 마지막 대결도 교과서적으로 보는 이를 기다린다. 이런 장르 어순에 대한 가벼운 변주도 용납한다. 어디까지나 멸망한 총잡이 사나이(들)의 쓸쓸함은 극단적으로 충실히 재현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의 토미 ..
베리 케오간의 '볼빨간 외모'를 보고 [나니아 연대기]의 제임스 맥어보이가 떠올랐다. 실사 영화에서 데미갓들을 묘사하는 유용한 분장은 '볼빨간'이군요. 색조가 확연한 안구와 저이의 연령은 과연 얼마일까 짐작을 계속 하게 하는 마스크. 인간의 세계에 내려와 모호하고도 한계를 내포한 채 권능을 계속 발휘하는 존재들의 느낌은 이렇듯 비슷하구나.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 [더 페이보릿 : 여왕의 여자]는 산소의 질량을 낮춘 방에 초청객을 위해 전시하는 치정극의 외연을 가졌다면, 되돌아보니 그것은 비교적 '쉬움 난이도'였구나. 작품 초반에 생생하게 움직이는 심장의 시각적 전시로 엄포를 주던 작품은 차분하고 차갑게 4단계를 거친 가족 참극의 서사로 치닫는다. 그래도 나즈막한 속도의 단속, 파국을 그리되 작품 속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