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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도입부에 큼직한 오펄을 채취한 제3 국가 인부가 큰 부상을 입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저 큼직한 오펄을 손에 넣은 미합중국 시민이 손에 쥔 욕망을 쥐었다 뺏겼다 다시 쥐는 과정에서 파멸할 것임을. [언컷 젬스]는 전형적인 곤혹함의 연속에 빠진 남자를 다룬다. 불륜의 내연녀와 관계를 가진 부도덕한 인물이고, 그것이 자본이든 약물이 든 간에 중독에 빠져있고 프로농구로 대변되는 열광과 도벽에 영혼이 붙잡힌 사람이다. 파국은 필수인데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숱한 수모와 욕설에 휩싸이고 본인 역시 그것으로 상대방을 동반시키며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정보 값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수많은 대화는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와 집단이 어떤 곳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나 유태인 커..
할리 퀸은 [수어사이드 스쿼드] 극장판의 등장 이후 수년간 핼러윈 파티의 인기 아이콘이었다. 이번에도 그 반향을 연장할 조금 더 다듬은 스타일로 복귀하였다. DCEU의 장기적 고착화와 침체는 큰 과제라 하겠다. 이에 감독진부터 배역진까지 근간의 움직임을 반영한 방향성으로 의욕적인 일신을 하였다. 그럼 개선되었을까? 그렇다고 답변하기엔 어려움이 보였다. [데드풀]을 연상케 하는 심술궂은 어른 맛의 분위기, 히어로물의 조금 다른 노선을 추구했지만 기억날 잘면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액션씬과 편한 대로 쉽고 안이하게 흘러가는 구성엔 만족하기 힘들었다. 이완 맥그리거가 그 해답 중 하나도 되지 않는 것도 명확해 보였고...
내게 [작은 아씨들]의 원형은 TV 애니메이션이었다. 차디찬 얼음 호수에 빠진 자매를 구한 내용, 가난이 이유가 되어 헤어를 커트하고 팔고 와 귀가 후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가족애의 이야기. 그 디테일은 세밀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그 광경들은 원형으로 남아 기억에 남는다. 이런저런 광경이 그웨타 거윅의 손에 의해 2020년에 재현되니 좀 새삼스럽고도 아련한 구석이 있었다. 그게 좀 간지럽기도 한데, 생각해보니 [작은 아씨들]을 요즘 시대에 맞게 현대화 번안하는 것은 실리에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라는 시대를 재현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각 캐릭터들의 상황적 한계와 극복이 보여주는 실감이야말로 제일 극적으로 그럴싸하리라. 그로 인해 조의 이름으로 책이 출간되는 공정이 보여주는 뭉클함은 그야말로 ..
단편작에서부터 [검은 사제들]까지 장재현 감독은 일관되게 한국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이고 오컬트적인 이슈를 적절하게 믹스해왔다. [검은 사제들]이 명동거리 한편의 어두운 공간에서 '그들만이 아는' 일을 그렸다면, [사바하]에선 보다 광범위하게 여러 곳을 오가며 여러 사람들의 입장을 교차시킨다. 보다 더 '그것이 알고 싶다' 풍의 실감 나게 닿는 그럴싸한 설정과 이야기가 깔려 있고, 영화적인 묵직한 거짓말도 섞으며 질료를 채운다. 영화 전체가 불교와 한국적 민간신앙의 역사와 요체를 성실히 공부한 개신교도의 입장 같은 톤이 가득하고, 그로 인한 타입 캐스팅이 도드라진다. 좀 속세의 때를 묻은 목사 역을 맡은 이정재는 마치 이정재의 연기를 따라 하는 이정재 같이 보이고, 유지태의 모습을 보고 괜한 [올..
훗날 장차 [베이비 드라이버]를 만든 감독 에드가 라이트가 워킹 타이틀 속 친구들(특히 사이먼 페그)과 만든 작품 중 하나이다. 매번 입소문만 듣다 넷플릭스 목록 중 이참에 안 보면 볼 기회가 없어질 것 같다는 불길함 덕에 보게 되었다. 포복절도니 하는 전염성은 상영관 환경으로 보는 작품이 아니니 생각보단 덜했지만 나름 즐겁게 봤다. 아주 작정하고 만든 유혈 낭자함은 악동들 작품답게 굉장히 도드라졌는데, 여기에 전통과 노인들의 세상이 만든 반듯함을 작정하고 박살 내는 세계관의 귀결과 맞물려 웃음을 만든다. (그 노인 중 하나가 한때 007이었던 티모시 달튼이라는 것도 은근히 웃겼다) 마틴 프리먼, 빌 나이 등 영국 작품 다운 익숙한 카메오야 그렇다 치더라도 케이트 블란쳇의 카메오, 현재와는 비교도 안되는..
씨네필들이 기억할 전설의 '불쾌한 목록' 중 하나는 아벨 페라라의 [악질 경찰](그나마 이것도 국내에 처음 소개될 당시의 제명이고, 현재는 다르게 불리는 것으로 안다)이 아닐까 싶다. '악질경찰'이라는 제목 아무튼 참 절묘하지 않은가. 사법과 행정 말단에서 시민사회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투혼 하는 특정 직업군. 직업군 명칭 앞에 달린 '악질'이라는 수식은 그야말로 그 자체로 사회의 타락, 개인의 나락을 보여준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베르너 헤어조크의 작품 [악질경찰]도 이런 사정이 마찬가지 아닐까... 네 그런 제목을 '또' 달고 [아저씨], [우는 남자]의 감독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구원없는 세상 안에서 위태로운 여성이 있고, 그 옆에 자리한 때 묻은 남자의 가련한 투혼도 살아있다...
영세한 영업실적으로 인해 무너진 동물원이 있고, 여기에 의기투합해 이상한 영업방식을 통해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 동물원을 다시 회생하는데 필요할 수 있는 최소인원은 어느 정도일까? 마케팅이나 현장 감시 및 진행의 업무를 겸한다 치더라도 수의사, 시설 관리, 수익관리 등 할 일을 생각하자면 4,5인으론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그래도 영화적인 장치로 작품은 관객들에게 '그냥 대충 알아서 속아주십시오.'라고 꾸벅 고개를 숙인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달콤, 살벌한 연인]을 필두로 정말 취향이었던 비정합이 형성되었던 작품 [이층의 악당]으로 독자적인 성과를 보여준 손재곤의 간만의 신작이다. 그의 전작들을 알기에 이런 영화적 장치의 속임수를 용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이상한..
시대가 금기한 제도적 장치에 묶여 사랑과 열정이 예고되었으나 닫힐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라는 예정된 진행 외에 작품이 이야기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을까 궁금해질 때, 작품은 대답을 한다. 그것도 풍성한 주제의 제안과 암전이 내려앉은 객석에서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침묵의 시간을. 예정된 운명의 차원을 넘어선 누군가를 사랑하고 마음을 새긴 후의 항구적인 감정의 영속성. 이 불멸의 문제에서 예술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응시와 창작자와 뮤즈 사이의 권력의 문제, 주체와 객체, 그리고 넓게 보자면 서구 미술사의 한 순간. 무엇보다 여성은 창작사로서의 권능과 입지를 언제쯤 차지할 수 있게 되는가? 그것을 인정하고 허락하는 권력 자체의 온당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