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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상영 끝물에 드디어 챙겨 보았다. 아주 좋았고, 남성 캐릭터들을 주변부에서 뭔가에 미진한 영향 끼치는 수준도 아닌 그 이하로 구석으로 밀어버린 것이 아주 상쾌하고 좋았다. 여성 삼위일체 만능 만세를 외치며 슬슬 느끼해지는 것이 아니다. 각 캐릭터 별로 가진 균열이 서로를 긁고 충돌하며, 서로 간의 미진하고 미약한 부분이 폭로하듯이 노출되며 측은함을 주다가도 그 부족함으로 인한 결여를 파괴하는 에너지와 충동으로 채우시겠다고 그만 나쁜 방향으로 돌진하다 여운 깊은 마무리를 보여준다. 특히나 셋이 있어야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제일 즐거워지는데 이들 중 레이첼 바이즈가 잠시 부재중일 때 극이 좀 처지는 것마저도 이들 캐릭터들이 가진 완성도를 실감하게 한다. 나는 요르고스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몰랐고, 이로 ..
수상 경력은 화려하지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좋은 영화로 기억할 생각은 없다. 편집은 단선적이고, 서사는 평이하고 명곡들의 행렬에 기댄 작품이었고 결과적으로 과대평가다. 그래도 그럴싸한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밥 말리, 레드 제플린, 이 수북한 록의 만신전엔 영상화할만한 이름들의 후보 목록이 가득하다. 이미 진작에 대기의 행렬에 줄 맞춰 기다리는 이름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런 맥락에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선택한 이름 중 하나가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라는 것은 적당히 전복적이고 적당히 도전적으로 보인다. 8,90년대 음악 듣기의 이력이 가장 풍성했던 일부 사람들에게 머틀리 크루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하면, 악몽판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그럴싸한 문구 정도 만들 수..
팀 밀러와 데이빗 핀처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그 애니메이션 앤솔로지가 넷플릭스가 지난번에 등록되었다. 이런 형식의 애니메이션은 정말 수년도 아니 말이 수년이지 정말 옛일처럼 오래된 [애니매트릭스] 이후 참으로 간만이다. 그 당시엔 그 시간대 기준으로선 나름 신경을 쓴 CG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서구의 뫼비우스, 일본 시장의 디렉터들이 참여한 셀 애니메이션 등이 나름 다양했는데 지금 [러브 데스 + 로봇]이 보여주는 기술적 성취는 놀랍다. 언제나 문제가 되었던 CG 캐릭터들의 안구 처리와 주름 등의 디테일은 점점 실사에 가까워져 가고 있고, 유수의 게임 대작 시네마틱 트레일러들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액션과 연출을 드라마 형식으로 옮기는 야심들도 볼만하다. 데이빗 핀처야 그렇다 치더라도 팀 밀러에게 이 프로젝트가..
코믹스 바깥으로 나와 상영관 안에서 묘사된 히어로들은 때론 책보다 더 쿨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걸 DC 보다 마블 쪽이 조금 더 잘 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자주 하니까 회수가 잦은 것이고, CG의 단점을 극복하는 생기라는 영역이 그걸 강화하는게 있다. 가령 [캡틴 마블]도 그렇고 앞으로 개봉할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도 CG 면에서 취약하기 그지 없는데, (가령 스크럴 분장은 CG로 묘사되었던 랜턴 군단들을 보는 것보다 더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들이 여전히 승산이 있는 것은 인물들의 생기와 ‘잘한다고 칭찬 받으니 더 신나서 칭찬 받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부인하기 힘들 듯하다. [저스티스의 시작]이 묘사한 배트맨과 슈퍼맨의 그 뻣뻣하고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둔한 모습..
엔딩 크레디트를 제외하고는 상영 시간을 꽉 채운 흑백 화면과 취급하는 인물에 대한 사적 흐름과 관계없이 작품의 흐름에 꿰맞춰 생전의 윤동주의 시구와 낭독을 깔아주는 연출 등은 소멸한 문예영화의 흐름을 계승하는 듯 보인다. 여기에 보태서 다루는 인물과 이야기 그 자체로 마치 문청들을 위해 준비한 듯한 인물 대비(운동이냐 고결한 예술 정신의 지킴이냐!), 향토와 서슬 퍼런 세상의 대조는 한동안 잃었던 어떤 투명한 영혼을 바라보는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부끄러움, 그렇다 작품 전반이 다루고 있는 윤동주의 마음속 풍경이자 시적 테마의 요체인 그 부끄러움이다. 그 부끄러움의 근본엔 동무가 이룬 성취에 대한 열등이 근원에 자리 잡고 있고, 종내엔 시대 앞에 쟁투해야 할 청춘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고뇌와 파국에의 연..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는 장률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큰 3가지의 양상, ‘거의를 노래’하는 작품이다. 과문한 나는 이를 크게 3가지 단어로 쪼개 키보드를 통해 옮기고 기록한다. 경계(지우다) 장률의 작품이 드러내는 삭막하고 비의에 젖었던 정서들은 2010년 이전 작품에서 도드라진 것들이었다. 여기엔 여성을 유린하는 남자들이 있고, 이런 서슬 퍼렇고 흉한 일들이 변방의 풍경 바깥 이들에겐 은폐되고 있었다. 작품명이기도 한 [경계]는 신나고 휘황한 남한의 영역과는 다른 연변이나 탈북이라는 바삭하고도 건조한 단어와 어울리는, 장률이 그린 세상에 어울리는 영역을 대변하는 단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우리와는 ‘상상과 구상 이외’의 곳에서 그들을 선 긋게 만드는 영토 또는 집단의..
송강호는 부침이 없는 사람이다.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 반론의 이유가 ‘너무 자주 나와서’라는 매너리즘의 영역이라면, 당신이 오히려 송강호가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권역대 안에서만 영화를 봐온 것이 아닌가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리멸렬하다고 손을 저어도 막상 접하는 작품 속 송강호의 모습은 초 단위의 이상한 저릿함과 감명을 줄 때가 있다. 지울 수 없는 영남 방어체를 써도 대놓고 영남 방어체를 써도 그가 울어도 그가 웃어도 그가 화를 내어도 그가 말을 제대로 맺질 못하고 단어를 뚝뚝 발바닥 밑으로 흘려도 그는 같은 순간을 만들 생각이 애초에 없는 사람인양 이번에도 무적을 발휘한다. [변호인], [밀정], 지금 잠시 말하려는 [마약왕] 모두 부족함이 하나씩 이상 있는..
[트루맛쇼], [MB의 추억], [미스 프레지던트]라는 필모를 보면 정말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거짓말하는 사람들, 속이는 사람들, 나쁜 사람들, 속이 구린 사람들의 세상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연출자로선 칠곡에 거주하는 ‘늦게라도 한글을 배우려는 할머니’들 이야기에 혹할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순수하고 뭉클한 테마 아닙니까. 여기에 할머니들이 지은 시와 문장, 크레파스 그림들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세계의 청명함은 세상의 탁함에 비할 것들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뒤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열 입곱살이에요~’의 배경음악이 흐른다. 여기서부터 나에겐 작품이 글렀다는 인상을 준다. 유감입니다. ‘가시나들’이라는 표현이 주는 지역성 기반 표현이야 견딜 수 있지만, 굳이 아이들 재롱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