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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공동정범]의 초반에 있는 영상 중 하나는 살랑이는 바람에 아스라이 흔들리다 일어나는 수풀의 움직임이다. 이것은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에서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말하는 배우의 나래이션과 함께 나오는 그 수풀과도 닮았고, 정성일의 [백두 번째 구름]이 담은 자연의 모습과도 좀 닮아있다. 이 산란하고도 적적한 녹색 황량함의 장면은 영화 도입부 자료화면 속의 외면하기 힘든 농성 진압 장면과도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다큐가 진행되고 후반부가 돼서야 알아챈다. 그곳이 바로 2009년 1월 20일 경찰의 용산 철거민의 망루 농성을 진압하고 화재 발생 후 벌어진 참극 이후의 현장, 수년간 그렇게나 세운다고 한 거대 빌딩이 들어서지 않는 녹색 황량한 용산 바로 그곳이었음을. 공동 연출을 맡은 이혁상 감독이 그토록 공..
스포츠 매니지먼트 세계관 안에서의 개인 위상의 추락과 극복, 부활, 종내의 해피엔딩. 이 분야는 이미 [제리 맥과이어]에서 관객들을 만족시킨 바 있고, 사실상 이 직종에 대한 허튼 낭만성을 불어넣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세계관의 무대가 NBA 판으로 이동하고 - 실제 종사자 선수들의 인터뷰도 삽입해 있다 - 각본가가 [문라이트]의 작가라면? 어떤 것이 나올까 조금은 궁금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기세있고 의욕 충만하게 일하던 젊은 에이전시 소속 주인공이 어떤 시장 안의 불합리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는데... 이런 이야기 아무래도 스티븐 소더버그가 날렵하게 이야길 잘 들려줄 수 있는 장기의 대목이 아닐까. 끝내주는 농구 경기 장면이나 음모를 이겨내는 절체절명의 순간보다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제재 중 하..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취향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레고 무비] 1편은 두근거리는 작품이기도 했지만, 부계 전승이라는 점에서 좀 찝찝한 구석도 있던 작품이었다. 이제 이것은 남매애와 가족 사이의 유대라는 것으로 확장된다. 다만 ‘남자 아이들의 취미’를 방해하는 ‘여자아이의 존재’라는 위험한 발상이 들어있는 듯해 우려가 된 대목도 있긴 했다. 물론 작품 전체의 흐름이 이런 우려를 종식 시켜주긴 하였다. 레고가 모든 구성원의 유희라는 점을 엔드 크레딧에서 더욱 강조하고 있고, 여전히 즐거운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기상천외한 액션의 자유로운 발상과 웃음의 빈도는 전작 보다 도드라지게 감소하긴 하였다.
정말 제임스 카메론을 가만히 놔뒀으면 그의 손으로 [총몽]이 영화화가 되었을까? [스파이더맨]의 표류를 생각한다면, 매번 ‘이것을 실현할 때까지 기술의 완성도를 기다리는’ 그의 성향을 상기한다면 [총몽]은 지금보다도 더 지연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그는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CG 캐릭터이길 바랐던 사람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다지 실현 불가는 아니었겠지만, 그게 90년대 중후반 이야기라...) 게다가 [아바타] 시리즈에 푹 빠져있는 그를 생각한다면, 다른 감독이라도 잡은게 천만다행이라는 결과론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위축이 되었는지 이 영화를 심오하게 만드는 것도 재밌게 만드는 것도 실패한 듯하다. 힘을 준 프로젝트였지만 평이한 액션과 간혹 지루함을 ..
몇년 적의 작품이었지만 여전히 지금의 기준에서도 출중했다고 여겼던 [드래곤 길들이기 2]의 비행의 즐거움과 물의 표현은 여전하다. 아니 더욱 강력해졌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날 감탄하게 만든다. 언제나 더 발전하고 더 놀라운 결과물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상 결국 마법과 용의 이야기는 황혼처럼 저물고 언젠가는 사라질 구성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관객들에게 희망을 남겨줘야한다. 왜냐면 그게 암묵적이니까 ㅎㅎ 모두가 동의한 암묵적인 사실이다. 용의 역사는 퇴장을 예정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주인공과 용은 각자의 세상을 위해 이별을 해야하는데, 그들의 인연은 끝나지 않는다. 우정은 영원히... 2019년은 관객들이 재밌는 판단을 할 수 있는 한 해다. 예정된..
호소다 마모루의 전작 [괴물의 아이]에서 큰 실망을 한 나는 지지를 철회하려던 철회든 재회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상영관을 택하였다. 궁극의 꿈공장 지브리의 경지엔 닿지 못하지만, 그래도 유아 아이들의 몸짓과 아이의 자전거 연습을 돕다 넘어지는 성인 남성의 액션 등 만화와 실사 사이의 활기있는 움직임을 담아낸 노력의 결정체들이 보인다. 물론 [썸머워즈]에서 이미 기미가 보였던 CG의 적극적인 활용 역시도 익숙한 모양새다. 그런데 유아 아이의 본능적인 몸짓과 욕구, 고민을 극화로 옮기기엔 뭔가 설정상 무리한 부분도 분명 있는 듯하고, 가족사 안에서 극복과 달라진 시대상의 단초를 보여주기 위해 전범의 역사를 피할 수 없었다는 점에선 어쨌거나 유감이다. + 몇몇 부분에서 일본 사회 안의 ..
다음주 3편 관람이 예정되어 있어 넷플릭스에 마침 있기에 시청하였다. 몇년 전에 상영한 작품이지만 여전히 비행과 활강, 용을 타는 그 간접적인 기운을 잘 전달하는 작품이었다. 바이킹 족이라는 설정상 애니메이션 안에서 빠지기 힘들었을 물의 묘사도 출중하고, 녹슬지 않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장애라는 설정을 한계와 약점으로 잡지 않고 언제나 이것을 자연스럽게 껴안고 그 위에서 뭔가를 성취한다는 뜨거운 구성은 여전하다. 2편의 시작은 ‘아임 유어 파더’가 아닌 ‘아임 유어 마더’라는 의외성으로 시작하는데, 이 신규 캐릭터가 주는 신비함이랄까 그린 피스적인 성격 부여가 흥미로웠다. 정말 그럴싸하고 이게 난 좋았는데, 이것이 흔들어지는 것이 결국엔 ‘사랑하는 여자 / 온기를 발휘하는 모성’의 한계를 결국 크게 벗..
경건한 흑백 화면 안에서 씬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게 흘러가는 테이크들의 연속. 뚜벅뚜벅 걷는 등장인물의 움직임에 음악 없이 개입하는 주변의 소리와 풍경과 빛들, 그리고 개인과 역사가 다른 레이어를 펼치면서도 간혹 레이어 합치기를 하거나 한 쪽 레이어가 반투명 상태가 된다. 그리고 나즈막히 흐르고 흐른다. 이 경이로움을 넷플릭스로 시청하게 되는 유사 씨네필의 경험. 헌신적인 모성 예찬으로 쉽게 보일 수 있으나 좋은 작품이 그러하듯 복잡한 심사를 부추기면서도 생에의 질문을 던진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좁고 짧은 Adore가 아닌 길고 깊은 adore를 말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엔딩까지. 그 adore는 영화라는 매체에도 해당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