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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이름이 영희다. 우리 시대엔 교과서에 실린 흔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그 흔함으로 인해 웬만해선 한 집안의 딸에겐 붙여주지도 않을 옛된 이름이다. 그 이름을 붙여준 의미는 짐작이 된다. 특별하지 않음, 개성을 부여하고 애정을 불어넣지 않을 대상이라는 규정. 이런 영희에게 보내는 작품 속 사람들의 시선은 기준선 자체가 그랬고, 그 가혹함은 극이 진행될수록 수위가 올라간다. 얼굴에 멍이 부었어도 실종되었다 발견된 동무의 장례식에서 그 얼굴로 조문을 해야 한다. 그간 발로 걷어차이고 밟히고... 자 그렇다면 가혹한 여학생 수난사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고통스러운 장면의 전시로 끝났다면, 애초에 관람을 주저했던 나는 끝까지 후회했겠지만 이후의 국면이 작품을 다른 것들과 구분짓게 한다. 누구도 애정을 주기..
[로보캅] 이후 승승장구하던 폴 베호벤의 시절이라는 것이 있었다. [토탈 리콜]도 그랬고, [스타쉽 트루퍼즈] 당시의 폴 베호벤에겐 블럭버스터라는 대상은 표현 방법론에 있어서 제한의 문제를 따지지 않았던 것 같다. 유혈낭자하게 그가 SF 대가들의 원작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현하던 당시에 그는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다가 [할로우맨]의 지나친 표현방식으로 평론가는 그들대로 관객은 그들대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닜었을까 기억에 의존하는 사실엔 일단 그러하다. 어쨌거나 폴 베호벤이 유혈낭자하고 튀어나오는 동공을 거리김 없이 표현하던 [토탈 리콜]의 시각적 세계관은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걸 굳이 건드려서 리메이크하는 사람이 있다. 하긴 오리지널의 샤론 스톤이 맡은 역할은 인상..
김종관의 [더 테이블]처럼 크지 않은 카페에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또다른 새로운 사람을 손님으로 들인다. 그럼에도 극의 무대가 제법 활력있게 이동한다. 꼭 카페가 아니어도 좋고, 밥집 및 술도 되는 밥집 등으로 이동한다. 그래도 갑갑하고 한숨을 주는 것은 정갈한 김종관의 공간과는 다른 홍상수 세상의 사람들과 그들이 뱉는 언어들이다. 유사한 문장들의 반복, 새롭게 태어나다/예쁘시다/얼굴이 좋아보인다/어디 여행을 가려 한다/너 때문이다/그리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발악발악. 그 여전함들. 유독 더 짧은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참 꽉 차있어 상대적으로 체감하기엔 더 길게 느껴진다. 이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대격전엔 죽음의 기온이 도사란 덕이다. 죽음의 기억이 있고 죽음의 경험치가 있고 그들은 남탓도 하..
원작 단행본을 본 사람이든 어떻게 보면 원작보다 더 전설 취급을 받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등을 그래도 어떻게든 쫓아가긴 한다. 홍콩 도심의 수많은 간판과 기호의 물결을 일본문화를 바탕으로 재현한 미래상, 궂은 날씨, 그리고 인간 신체 본연의 철학적 고민을 극단적으로 넘나드는 기계 신체들의 비주얼 등 아무튼 흉내는 흉내지만 자본 덕에 충실히 재현한다. 그래도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다. 당장의 블레이드 러너 속편의 쓸쓸함 재현도, 공각기동대 원전들의 흔적 자체도, 무엇보다 스칼렛 요한슨 최고의 SF인 [언더 더 스킨]의 배우 본인의 캐릭터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성 비서 둘이 서있는 집무실에서 일하는 기타노 다케시라는 꼴사나운 광경이나 감당할 관객들. 무슨 죄인가. + 넷플릭스에서 시청했다.
서부란 무대는 무엇인가. 작금의 젊은 사람들에겐 게임 타이틀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무대이자, [오버워치] 에피소드 중 하나의 원형으로 더 익숙할 듯하다. 주로 이들은 게임 안에서 총을 들고 비정한 삶의 파국 안에서 휘감기고 있지만, 코엔 형제에게도 작품 [브레이브]에서 이미 짚어 오며 경험한 영토이기도 하다. 그래도 좀 부족했을까? 자료와 이야기 수집의 재주꾼들 답게 조금 더 이야기들을 푼다. 코엔 형제의 이 옴니버스 신작이 넷플릭스 코리아에도 올라와 덕분에 볼 수 있었다. 전반적인 평은 코엔 작품치고는 실망이라는게 우세인 분위기인데, 코엔 형제가 무슨 매번 걸작 생산기도 아니고 원래 코엔 작품은 이처럼 들쑥날쑥하다. 덕분에 이런저런 반응들이 순진해 보이고 내겐 좀 이상했다. 총 6개의 에피 중 에..
두기봉의 원작을 바탕으로, 이해영 감독의 달라진 경향 및 한 배우의 타계로 화제가 되었던 [독전]을 얼마전 네이버를 통해 (관람이 아닌)시청을 하였다. 영화가 마약계를 둘러싼 묵직함과 배우들의 독기서린 연기를 내세운 덕에 초반부에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분위기와 음악으로 누른다는 기운이 강하다. 그런데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배우들의 역량보다 타이밍상 조금 앞서는 이 분위기 몰이가 무리수로 보이는 것이 참 공교로웠다. 사람들이 이래서 전작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의 톤과 맞지 않아 고개를 저은 것인지도. [불한당]과 닮았다는 사람들은 영상매체에 대한 접촉이 낮은 것을 왜 그렇게 민망하게 내세우는지 알 수 없다. 서로 다른 성격의 개체들이 뜻하지 않게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서의 시간 후 형언하기 힘든..
20세기 폭스사 로고를 활용한 재치, 그다지 훌륭하지 않는 CG가 영락없는 브라이언 싱어 영화다. 브라이언 싱어가 프레디 머큐리에게 준 비중과 여러 성적 정체성에 관련한 이슈와 성스러움과 개인사의 덜컹거림을 둘러싼 교차들은 감독이 이 실존인물에서 무엇을 투사하려 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완만한 영화의 흐름이나 평이하게 보이는 연출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의 수훈은 퀸의 음악 자체이며 라이브에이드를 비롯한 중요한 이벤트를 충실하게 재현하려 한 기술적 집착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집의 시간들]은 독립잡지 계열에서도 여러 도서를 낸, ‘서울 서민’들에게 의미깊게 다가온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스토리를 담고 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재건축이라는 일 자체보다 이곳에 길게 또는 잠시라도 연을 맺었던 주민들이 집이라는 공간에 담았다 남기고 가는 여러 마음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들려준다. 즉 여기서는 보상금과 이사라는 스트레스 쌓이는 진통, 경제적 가치와 정서의 상관관계들이 끼여들지 않는다. 각각의 톤은 다르지만 둔촌주공으로 대표되는 아파트라는 공간의 특이성, 성장과 삶의 변화를 경험한 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특별함이 이곳을 빌어 토로한다. 특히나 인터뷰 대상자들의 얼굴이 아닌 목소리로만 들리는 여러 사연과 멀리 잡힌 아파트 전반의 스케치는 차분하게 울림을 준다. 드높은 나무 숲으로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