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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축구에 이어 술이다. 둘 다 여전히 관심이 없는 분야이며, 음유한 적이 없는 바깥 취향의 주제다. 예비대학에서 형편없는 실력을 발휘한 학교 밴드의 노래를 듣다 검은 토사물을 분출하게 한 맥주도, 별반 마땅치도 않는 애교심을 강요한 과내 축구 시간에 마신 쓰레기 같은 막걸리의 뒤끝도, 요즘의 술자리에서도 술이란 것은 그 자체로 별로인 존재였다. 그래도 이번에도 구매해서 읽었다. 김혼비의 책을 사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책에서 좀 더 명확해졌다. 글을 잘 쓴다. 술을 모르니 술자리엔 비유를 못하겠지만, 맨밥과 냉수 하나 있는 식탁 위에서도 젓가락이 자주 가는 김치를 집어서 씹는데 그 맛이 그럴싸하게 남는 식사와 흡사하다. 잘 쓴다. 잘 쓰니 자신이 ‘배추’라고 자칭하는 학창 시절의 그의 일화에 부담스러운..
블럭버스터 시장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영상화해 시리즈로 만든 본격적인 전범이었던, 엑스맨 시리즈는 그 역사만큼이나 부침도 많았다. 시리즈의 몰락을 만들 참이었던 야심작이었던 [라스트 스탠드(최후의 전쟁)]나 함량 미달의 평이 지배적이었던 첫 번째 울버린 극장판의 슬픈 역사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준 [퍼스트 클래스]를 필두로 그야말로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무엇보다 가장 독자적인 히어로물의 위상을 보여준 [로건]까지 이르면 이 역사는 결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포칼립스]는 이런 의미에서 또 한번 들이닥친 완성도 면의 위기를 준 듯도 하고, [다크 피닉스]의 제작 완료까지 일어난 과정들이 준 불안감도 참으로 컸다. [라스트 스탠드]에..
[기생충]의 초반은 봉준호의 복귀작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이한 한국영화 속의 광경처럼 보인다. 관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는 와이파이 신호 잡기 장면과 비롯한 가벼운 웃음을 나오게 하는 장면들의 유머들이 그렇게 타율이 좋진 않았고, 박서준이 등장할 땐 내가 한국 영상물에서 느끼는 따분함이 극도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던 작품은 가족 하나둘이 조여정과 이선균의 집안에 슬슬 틈입하던 대목들에서 슬슬 [플란다스의 개] 당시의 리듬을 상기시켰다. 데뷔 시절부터 꾸준하게 한국 사회의 권태로움에 균열을 내며 자신만의 리듬감으로 세상없던 광경들을 만들던 그 재능의 시대 말이다. [괴물]의 뉴스 장면에 나온 감염 위험성 경고처럼 송강호 가족들은 위태롭게 계급의 주제조차 망각한 채 ‘선을 감히 넘어 들기’ 시작했..
웹진에서 글을 씁니다. / 별점은 이상한 제도죠. [링크] == 에이비식스 「Breathe」 워너원의 약속된 해산과 한때 지하철 역사 화장품 매장의 광고 포스터에서 자주 본 엠엑스엠의 두 명까지 생각하면,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이 법정에 남긴 짤 “다 아는 얼굴이구먼”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전웅까지 합치면 브랜뉴뮤직의 새 아이돌 그룹이 탄생한다. 미세먼지라는 소재 덕에 스텔라장의 「미세먼지」(2019)와 함께 저 명사가 최근 몇 년 간의 한국을 설명하는 주요한 단어가 되었다는 탄식을 지울 수 없었으나, 정작 곡은 새 아이돌 그룹을 소개하기 좋은 청량과 영롱함을 구비한 딥 하우스 넘버다.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센터 역할을 시작으로, ‘곡을 만들고 주도하는 캐릭터성’을 내내 강조하던 이대휘의 지분이 확실히..
블럭버스터 중의 블럭버스터, 썸머 무비 중의 썸머 무비, 그것을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가 실현한다. 비록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트랜스포머였어”라고 실토하는 소음 수집 블럭버스터 [트랜스포머] 시리즈 뺨치는 책임감 없는 고대 역사 빙자 헛소리로 가득하고, [엔드게임]의 타노스 못지않게 논리의 기본도 없는 멍청한 등장인물이 사고 치는 광경도 유사하지만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는 근사하다. 튀밥 가루들처럼 우르르 몰려 뭔가 팝팝 구르고 터트리지만 신통치 않은 인간들의 사정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괴물들은 탄생하고 서로 싸우고 인류가 성실하게 쌓은 것들을 와르르 부숴대기 바쁘다. 할리우드 기술진들이 이 요란한 파괴 쇼 안에서 얼마나 장엄함만을 새기려 노력했을지, 도덕적 눈치보기 없이 파괴에만 집중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