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8화 본문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아이돌들이 슬슬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이승환의 또 하나의 역작 [Cycle]이 발매되었고 넥스트는 해체와 마지막 앨범, SES는 데뷔. 세상이 바뀌려나?
98년 3월말에 제대하였다. 속시원한 제대였다. 같이 제대하는 동기가 인자했던 전임 대대장이 발령 나간 사단에 잠시 들르자고 했을 때, 잠시 원망스러웠다. 대대장은 아주 좋았던 분이었지만, 그러기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도 인사하러 갔지만 들을 수 있는 말은 '자네는 앞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것이야'라는 뻔한 거짓말 정도라는건 알고 있었다.
가지고 나온 쇼핑백 안엔 스키드 로우와 메탈리카, 신해철의 테이트 등과 넥스트, 스매싱 펌킨스 등의 CD가 한데 있었다. 2년 간의 흔적 중 앨범 같이 쓸모짝 없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음반만은 몇개 남았다 싶었다. 내 목록엔 없었지만 군대에서 들었던 앨범 중 제일 좋은 인상의 팀은 업타운(Uptown)이었다. 지금은 슈퍼스타K 시즌3의 '듣다보면 답답함이 밀려오는' 심사평을 한 윤미래이지만, 당시엔 한 명의 근사한 외계인이었다. 윤미래를 필두로 한 이 4명의 보컬 그룹은 1집도 좋았고, 2집도 좋았었다. 2집 '내안의 그대'를 비 오는 병영 안에서 들으면 참으로 청승의 싹이 트는 것이 좋았었다. 업타운은 활동을 하긴 하지만 지금의 진행으로 봐서는 어떤 '빛바램'의 영역인 듯 하다. 현재를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과거에 그랬다로 적는게 어울리는...
제대 후 제일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컴퓨터학원(!)에 등록한 것이었다. 남들이 PC 통신 안에서 이야길 나누고 만나서 연주도 하고 음반도 만들던 세상인데, 그런 것도 몰랐다. 지금 회사 사업자등록증을 보니 사업종목에 '온라인정보제공'이라고 적혀 있다. 참 사람일이라는게 웃긴다. 남들이 애플II니 코볼이니 뭔지 이런 별나라 세상의 컴퓨터를 할 때 나는 타자는커녕 부팅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웬종일 PC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니 원. 아무튼 한글타자도 하고(하하), 윈도우95 사용법도 배웠다(눈물). 사실 가장 결정적인건 인터넷을 했다는게 아닐까. 당시의 야후 검색창, 알타비스타(!) 검색창에 숱하게도 에반게리온 아니면 신해철이라는 검색어를 넣어서 팬사이트들에 접속하였다.(네이버니 하는 것들은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고, 한미르 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아 비비안 슈라는 검색어를 넣었다가 비비안 슈의 헤어누드 샷을 보고 혼비백산 창을 끈 적도...
넥스트 해체 후 신해철의 영국발 안부편지 [Crom's Techno Works]가 더블 앨범으로 나왔다. 휘황찬란 락을 하던 사람이 일렉을 한다고 돌아오니 광팬들이 좋아할리가 없다. 죽치고 살던 팬사이트에서 방어전을 했다. 신해철은 원래 솔로 때부터 이런 경향이 있었다고. 우습게도 그 팬사이트 게시판에서 닉네임 란에 본명을 적은 것도 기억이 난다. 닉네임을 적어도 되는줄 몰랐다. 두번째 게시물에서부터 '렉스'라고 적어넣었다. 게시물 작성 시점에 [쥬라기공원]이 떠올라서 그랬다. 세상의 숱한 닉네임들은 그런 식으로 그냥 만들어지는 것일테다. 아무튼 뭔가 성전을 치르듯 방어전(요새 말로 '키배'라고 하겠다)을 치르고, 팬사이트에서 인덕을 얻었다. 그리고 수년 후 그 팬사이트 운영자는 모 팬카페를 운영하다 내게 시삽 자리를 이양하려 했고, 내가 거부하자 내 닉넴 도용(이글루스 내)을 하며 악성 사이버 범죄를 저지른 인물로 변모한다. 법적 문제가 오고가기 직전, 그 양반이 제딴에 사연을 말한다는게 '요새 취직이 안되고 그래서...'였다. 취업은 중요한 문제인 듯 하다. 잘 먹고 사는가 모르겠다. 내 소망은 그 친구의 비명횡사이긴 한데 말이다.
서태지의 귀환 앨범은 일명 '980707'이었다. 지금도 기억할 수 있는게, 7월 7일이라는 발매일도, 98년이라는 제대년도도 외우기 쉽기 때문이다. 꼬마 신세경이 눈물 흘리는 포스터와 예약구매라는 방식 등 나름 소란을 떨었지만, 좀 뜨악한 구석도 있었던 앨범이었다. 앨범 속지의 이상의 [오감도]를 영타로 옮긴 '허세'가 당시에 좀 웃겼다. 얼터너티브 현상 자체가 마땅찮았던 기질 탓에 이 앨범에 '얼터너티브'라는 단어를 박은 몇몇 평가도 그냥 그랬다. 그냥 락이 굉장히 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 정도만. 고등학교 때 굉장히 특별했던 의미를 가진 몇몇 이름들이 이제 목록 안의 평범한 이름으로 하나둘 변모하고 있었다.
98년 2학기 시즌에 복학을 하였고, 10개월에 65만원이던가 하던 자취방을 구했다. 그리고 그동안 사놓은 테이프들 상당수가 방 안에 수납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취향에 점점 근접하는 목록들을 사듣기 시작했다. 마를린 맨슨의 [Antichrist Superstar]는 당시 유명해서, 콘(Korn)의 [Follow the Leader]는 군 시절 동기가 '요즘 바깥에서 콘 이야기만 해!'라고 했던게 생각나서 구매했던 것들이다. 1집부터 구매하지 않고 '이빨 빠진 상태로' 구매하는 취향은 못 버린 상태였다. 일일이 사들을 돈은 없었기 때문이었지. 확실히 메탈에 수혈받은 음악들인데 다른 메탈반들이었다. 툴(Tool)의 [Ænima]는 당시 구매 목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홍보 포스터들이 군 휴가 때 눈에 밟히더라니 - 디페시 모드의 [ULTRA]도 그랬다 - 훗날 이 앨범을 당시에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렇게 취향이 이어지고 굳어지게 된다. [111116]
19화에 계속 [국내반 이미지 출처 : www.maniadb.co.kr / 사이즈 편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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